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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너랑 덮은 한 이불 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어. 이 시집이 고단하고 슬퍼서,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라서. 끊임없이 지나가는 동시에 반복되는 생들 속에서도 어떤 사랑은 자꾸만 기억이 난다는 게, 기억이 나서 울음이 난다는 게, 꼭 전생에 그래봤던 것처럼 이해가 되었어. 그리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일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빛이 되는 슬픔도 있는지 보자고,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게 가장 좋은지 찾자고, 그런 소망을 담아서 네 등을 오래 어루만졌어.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긴 산책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현미경에 처음 눈을 댔을 때처럼.
낯선 나라의 결혼식을 구경했을 때처럼, 어제의 철새와 오늘의 철새가 어떻게 다르게 울며 지나갔는지 알아차릴 때처럼.
커다란 창피를 당했을 때처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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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케밥가게 주인이 내 다리를 보고 그러더군요. 나를 위해 알라에게 기도하겠다고, 고맙다고 했어요. 알라가 있다면 그의 기도는 들어 줄 거예요. 사실은 안 들어 줘도 상관없어요. 

신은 없어도 돼요. 나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무기력한 신보다 기도라도 해 주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더 믿어요. 그래요. 그거면 나는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 알라를 무시했다고 또 테러의 대상이 될까요? 두 번은 싫은데, 그럼 편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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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옥타비아 - 2059 만들어진 세계 활자에 잠긴 시
유진목 지음, 백두리 그림 / 알마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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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9년이라는 가깝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그린 잔잔한 SF장르의 독백소설. 흥미진진한 이야기와는 좀 거리가 멀고, 1인칭의 독백과 감정 나레이션에 많은 할애가 되어있어 약간 늘어지는 감은 있다. 먼 미래를 살고 있는 작가의 수필집을 읽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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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순조롭게 흘러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불행은 나를 찾아오지만 행복은 내가 찾아가는 것이다. 삶은 그것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불행은 정확히 나를 찾아서 온다. 하지만 불행이 나를 찾기 전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불행이 나를 알아볼 수 없도록, 행복도 그렇다. 행복도 매번 다른 형태로 다른 곳에 있다. 내가 누린 행복을 다시 한 번 누릴 수는 없다.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쁜 일은 어쨌든 생기거나 안 생기거나 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먼 훗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살아오는 동안에는 태어날 때 내 몫으로 주어진 불행을 감당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뒤에는 없어도 좋을 나쁜 일들이 나를 찾아왔다. 불행은 행복이 마련해둔 빈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글을 쓰다 말고 고개를 들어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앞에 살아 있고, 그는 그대로 내 곁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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