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1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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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어왔던 때가 있었다. 책이고 티브이 프로그램이고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넘쳐났다. 그런 책이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살기 바빠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다시 꺼내어 보자, 좀 느리게 해보자, 하는 식의 이야기를 했고 언제나 푸른 하늘과 초록색 이파리와 산에 들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작은 들꽃 같은 그림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도대체 인문학이 뭘까? 생각해 보면 참 모호한 개념이다. 검색해 보니 인문학이란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이란다. 그렇구나. 우리는 인간에 대해 배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한 번쯤 멈춰서 돌아봐야만 하는 무언가가 된 시대에 살고 있나 보다.

 

 

그간의 열풍을 타고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출판된 책이 얼마나 많을까? 나도 이런저런 책을 읽어봤지만, 막상 뭐 되게 기억에 남거나 마음에 쏙 들거나 한 책은 별로 없었다. 너도나도 <인문학>이란 걸 표방하길래 그래 사람 좀 돼보자 싶어 읽어봤지만 막상 다 읽고 보면 학문을 기반으로 한 자기 개발서 내지는 실용서의 느낌?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런 게 진짜 인문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자가 한 대학교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신영복의 <강의> 도 강의록이어서 교양수업 연강 듣는 느낌. 게다가 이전 책은 동양 고전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 책은 (라틴어에 관한 이야기니까) 서양에 대한 이야기를 연달아 보게 되었다.

 

 

제목이 <라틴어 수업>이라 라틴어라는 언어에 대한 문법과 쓰임 같은 것에 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라틴어 표현 하나에 얽힌 로마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문을 던져 생각을 유도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이 있지만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생소한 라틴어라는 주제와 연결해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입시에 치여 생각 한 톨 할 겨를도 없이 대학에 들어가 또 취업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강의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강의 당시 수강 신청 경쟁이 치열했고 타 대학에서 청강까지 왔었다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언어 공부라면 이제 신물이 나는 나도 라틴어가 뭔지 몰라도 한 번 배워볼까?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좀, 책에서처럼 이렇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 학생들이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밟아 나갈 수 있게.

 

언어는 그 자체의 학습이 목적이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서의 목적이 강합니다. 앞의 강의에서 말했듯이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틀입니다. - P64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P66


Postquam nave flumentrasit, navis reliqencda est in flumine.

포스트쾀 나베 플루멘 트란시이트, 나비스 렐린 쿠엔다에스트 인 플루미네.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 P73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 P101

공부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P138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는 것, 그것이 결국은 힘이 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일 겁니다. - P143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난 뒤부터 신을 경배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158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 P161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 겁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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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개정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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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 놓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열 몇 권의 이북을 한 번에 결제하고는 이북에 담아두고 좋아했던 책 중 하나다.

김연수 작가의 책이라면 예전에 한 권 본 적이 있었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 때 순천인가 군산인가 아무튼 조선의 곡창지대 어딘가에서 태어나 광복 후 일본으로 돌아가 살며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지라 읽으면서 참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이 책 속에서 전 세계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겪었던 희한한 일들과 만났던 그 수많은 사람과 또 그 한 명 한 명의 특이한 이야기도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도대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뭘까 궁금해하며 봤던 책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책도 추천을 통해 접한 책이었다. 이전에 봤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또한 주인공 카밀라는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입양을 가 자라다가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 그중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라는 고장으로 돌아와 자신의 뿌리를 찾아다닌다. 진남은 그런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진심을 잘 이야기하지 않고 의뭉스럽다. 자신을 낳았을 때 열일곱이었다는 엄마 정지은의 이야기를 물으면 속 시원한 대답 대신 열녀 비니 검모래니 하는 곳으로 주인공을 데려가서는 알아서 보고 느끼라는 식이다.

이야기는 엎치락뒤치락 한다. 카밀라는 본인의 원래 이름이 정희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진실에 점점 가까이 가는 듯하지만 알게 되는 사람들마다 진술은 엇갈리고 앞서 나왔던 진술은 너무 쉽게 뒤집어지고 속 시원한 결말 없이 이야기는 끝난다. 어릴 때 입양된 주인공이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다닌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에,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서정적인 문체가 마음에 들어 홀린 듯 끝까지 보기는 했으나, 전에 봤던 작가님의 책과 마찬가지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감은 잡히지 않는다. 마지막 작가님의 말에서 '부디 독자들이 본인이 쓰지 않은 곳까지 읽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셨지만, 여백이 많은 이 이야기가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알면서도 모르겠다. 주인공 정희재가 만나게 되는 인물과 각 인물들의 그 많은 사연도, 다는 모르겠다.

주인공 카밀라 혹은 정희재는 본인이 엄마의 진실을 캐고 다닌 걸 후회한다고 책 중간에 이미 선언을 했었다. 그녀가 마주한 정체성 혹은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연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고 난 나의 감상은 카밀라의 마음처럼 혼돈 그 자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주인공 엄마는 꼭 열일곱에 아이를 낳은 설정이어야만 했을까? 정말 지겹다. 사회적 약자로 몰린 어린 소녀들이 성적으로 능욕당한다는 설정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게. 마치 그런 상황에 처한 어린 여자아이들은 그런 일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듯이.

 

이쯤 되니 남자 작가 이야기는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의 편견인가. 


양모인 앤이 죽은 지 채 이 년도 지나지 않았다. 한 남자의 삶 속에서 아내라는 존재가 그토록 빨리 잊히다니! 그 사실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 P11

"평생 앤이 가장 사랑한 사람이 너였으니까." - P12

그러므로 ‘어머니‘의 두번째 정의는 ‘날마다 한 번은 떠올리는 여자‘야. - P79

지나가면, 우리는 조금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 조금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겠지. - P130

진실은 과연 그토록 중요한가? - P182

지훈은 등으로 너의 존재를 고스란히 느낀다. 인간은 가여운 존재라 끊임없이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게 설사 아무런 표정도 느껴지지 않는 등이라고 해도. - P191

왜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을 하는 것일까?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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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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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탓이다. 그때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너무 좋았다. 시대를 날카롭게 뚫어보는 시선을 따뜻한 문체로 표현한 게 좋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기로 한 게 화근이었다. 주변의 추천도 있고 해서 그럼 다음 책으로 읽어보자 선택한 책이 이 <강의>라는 책인데, 덜컥 읽기 시작하고 보니 세상에 600쪽이 넘는다. 게다가 이 책은 성공회대에서 동양 고전에 대해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아이고, 딱 걸렸네. 꼼짝없이 공부하게 생겼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니나 다를까 어려운 말투성이다. 공자님 맹자 님부터 시작해서 묵자 법가까지. 중국의 사상을 다룬 내용이니 한자도 필수인데다 강의하는 분의 사상은 또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이 더 심오하게 느껴져 난감 또 난감. 그런데 책을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의 식견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의 일환으로 동원된 우리 주변의 수많은 예시들만 읽어도 뭔가 피가 되고 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가슴이 뜨끔, 무릎을 탁, 하는 순간이 있기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려운 내용이다 보니 다 읽을 때까지도 이거 뭔 얘기야 그냥 읽고 땡 쳐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표시해놓았던 부분을 살펴보니 역시나 배울 점이 많다. 그저 그렇고 그런 '공자님 맹자 님'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만큼은 못 되지만, 그런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배움은 고통스럽지만 언제나 즐거운 법인가 보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

서양 문화는 그 자체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문화 일반의 준거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문화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변적 위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서양의 시각에서 동양문화가 조명되는 구도이지요. - P25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악여정통‘이라는 것이지요.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오늘의 서울에 와서 음악을 듣고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 P62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P94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P109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 P156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 P170


사실 나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업슨 확대 재생산과 대량소비의 악순환이 자본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당연히 욕망 그 자체를 양산해 내는 체제입니다.
 - P325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 P327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 P351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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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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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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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 제인 오스틴의 책 제목 한 번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영문학 전공한 사람 중에 제인 오스틴의 팬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 둘 다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제인 오스틴님의 열렬한 팬이다. 작품이라고는 <오만과 편견>밖에 안 봤지만. 영화와 책으로 주구장창 봤다. 그녀만의 발랄함과 설렘에 짜릿짜릿 즐거워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인 <설득>과 <이성과 감성>은 옛날 옛적에 드라마로 봤다. 우리나라 사극 보듯, 의상과 소품 하나하나를 신기해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설득>은 발랄했고 <이성과 감성>은 다소 어둡고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허나 작가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드디어 <이성과 감성>을 보기로 했다.

배다른 남동생 가족과 함께 살던 대시우드 가족은 아버지의 사망 이후 다른 친척의 초대로 바턴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아버지는 배다른 남매 존 대시우드에게 주인공 가족을 섭섭하게 대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지만, 어찌어찌 딱 섭섭하지 않을 정도만의 유산만을 나누어 주게 되고 어머니, 큰 딸 엘리너, 작은 딸 메리앤, 그리고 막내 마거릿은 바턴에 자리를 잡는다.

엘리너와 메리앤은 각각 정인이 있다. 엘리너는 이복 남매의 부인의 남동생인 에드워드 페라스와, 메리앤은 바턴으로 이사 후 우연히 만난 신사인 윌러비와.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자매는 연애도 성격대로 한다. 언제나 열정적이고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메리앤이 보기에는, 침착하고 언제나 감정을 숨기는 엘리너와 그의 연인 에드워드의 관계가 민숭맨숭해 보이고 나중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언니가 자기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엘리너는 엘리너대로 자중하지 못하는 동생이 걱정된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으니까, 두 미녀의 연애담은 곧바로 주변인들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만과 편견>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성 강한 조연들이 등장하는데, 주변의 젊은 남녀들을 엮어주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제닝스 부인을 필두로 돈은 많은데 별 할 일이 없어 매일 저녁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인 존 미들턴 경, 남편이 초대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부 받는 것이 즐거운 그의 부인 레이디 미들턴, 주인공 자매의 이복동생 부부의 좁디좁은 배포를 볼 수 있는 대목 등이 제인 오스틴 특유의 익살맞은 표현으로 전개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 중간중간에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설명을 하거나 정리를 하는 대목이 꼭 나오는데, 그 때문에 이 오래된 이야기가 방금 나온 신간처럼 느껴진다.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도 들고. (실제로는 그녀는 낭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소설을 시작했을 때는 제인 오스틴 표 사랑 이야기, 이 작품은 뭐가 그리 특별하려나? 그런데 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뭔 책이 이렇게 두껍나 했는데, <오만과 편견>과는 다르게 등장인물도 훨씬 많고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도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며, 게다가 각 인물들이 사랑의 결실을 맞는 과정이 엎치락뒤치락, 이건 무슨 추리소설도 아닌데 계속해서 상황이 뒤집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제인 오스틴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라면 지금 당장 열 손가락을 한 번씩 접고도 남을 정도로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점을 첫째로 꼽고 싶다.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렇지만, <이성과 감성>에서도 사랑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 앞으로의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기한다.

<오만과 편견>이 좀 더 발랄한 이야기였다면, <이성과 감성>에서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자매의 심리 상태가 변하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있어 설득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파란만장한 일을 겪으며 울고 웃고 성장하되, 결말만큼은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가 행복해야 해! 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결말 또한 촘촘하게, 그 어떤 인물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그 인물이 누릴만한, 그리고 누려야 마땅한 (좋은 쪽으로든 그렇지 않은 쪽으로든) 상황에 처하며 끝을 맺는다.

명작은 어느 시대에서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지만, 요즘 나의 상황과도 딱 맞아떨어져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맞아맞아를 연발하며 이 무거운 책을 들고 주인공 자매와 함께 울고 웃고 했다. 결국 엘리너와 메리앤은 이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했겠지만, 에휴, 그때나 지금이나 연애가 어렵기는 마찬가진가 보다.


29

엄마, 세상을 알면 알수록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영 못 만날 거라는 생각만 더 들어요. 원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요.


51

그녀에게는 딸만 둘 있었는데, 둘 다 괜찮은 가문으로 시집을 잘 갔다. 그래서 이제 그녀가 할 일이라고는 나머지 세상 사람들을 결혼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77

그렇지만 젊은 시절의 편견에는 무언가 사랑스러운 것이 있어서 그걸 포기해버리고 좀 더 일반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는 합니다.


116

사실 메리앤한테 에드워드와 언니의 재회는 노어랜드에서 전에 두 사람이 서로 종종 보여주던,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덤덤함의 속편에 불과했다.


125

너무 진지하고 하는 일마다 너무 열심이고, 때로는 말도 많고 늘 생기가 있지만, 정말 명랑한 적은 흔치 않아요.


222

"그러니 우린 처지가 비슷해. 우리 둘 다 말할 게 없는 거지. 언닌 말을 하지를 않고, 난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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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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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춘향이와 이몽룡, 향단이와 방자가 나오는 <춘향전>. 예전에 <홍길동전>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만 생각해 보니 <춘향전>도 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싶어 중고서점 갔다가 냉큼 집어왔다.

책에는 2편의 춘향전이 실려 있다. 하나는 배경이 숙종 시대, 다른 하나는 인조 시대로 되어있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약간씩 다르지만, 나머지 설정은 비슷비슷하다.

춘향이는 올해 십육 세 된 남원 기생의 딸이다. 기생의 딸이나 기적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기생이 아닌 평범한 규수다. 그냥 규수가 아니라 예쁘기로는 소문난 규수다. 게다가 당시 고전을 두루 익히고 응용까지 할 줄 아는 배운 여자다.

이몽룡은 남원 사또의 아들로, 춘향이와 동갑이다. 인물이 빼어나고 지혜롭고 문장력도 좋은 데다 글씨까지 잘 쓴단다. 둘 다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들이다.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학문에 정진하고, 춘향도 춘향 나름대로 책도 보고 바느질도 익히고 당시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가 운명처럼 마주친다. 먼저 반한 건 역시 이몽룡이다. 단옷날 좋은 계절에 그네 타는 춘향이를 보고 한 마디로 "뿅 간" 그는 그날로 춘향이와 춘향이 모친에게 구애를 한다. 그러나 국법이 지엄하다. 장가도 안 간 양반의 자제가 첩부 터 들인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이몽룡은 진심이다. 둘은 그날부터 연인이 된다.

그러나 그 어떤 연인에게도 위기는 있는 법. 몽룡의 아버지가 서울로 부임하게 되면서 급하게 떠나게 되고 몽룡은 과거 급제 후 춘향을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바삐 떠난다. 춘향이는 그날부터 수절하기로 한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변 사또라는 양반이 오자마자 열 일 제쳐두고 기생부터 불러들이더니, 다짜고짜 춘향이를 찾는다. 춘향이는 기생의 딸이지 기생이 아니며 전임 사또의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래서 지금 몽룡을 기다리며 수절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도 안하무인이다. 벅벅 우겨 춘향을 끌고 와 수청을 강요하나, 춘향은 완고하다. 그러자 세상에 그런 수절이 어디 있냐며 춘향이를 몸이 상하게 고문한다. 자기의 수청을 들라고.

이런 이야기 하나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두 편의 춘향전을 읽으며 당대의 사람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게 뭔지는 알겠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신분제 사회에 대한 불만","여성의 정절 강조" 같은 것도 있었지만 "세상에 천한 여자도 이렇게 정절을 지키는데 남자라고 달라서야 될 쏘냐" 같은, 정치인으로서 두 임금을 섬기지 말라는 의도도 있었다.

꼴 보기 싫은 장면도 있었다. 두 번째 춘향전에서 춘향이 옥 중에 있을 때 지나가는 장님 점술사에게 점을 치기 위해 불러들이자 춘향을 더듬는 장면은, 그때 시각으로 봐서는 우스운 장치였을지 모르나 2019년을 사는 내 시각에서 보자면 명백한 성추행이며 지금 같았으면 '#미투' 같은 걸 달고 각종 SNS를 통해 확산 재확산 됐을 만한 추태로 보였다.

여하튼 이몽룡은 다행히 서울에서 장원 급제를 하고, 남원으로 암행을 오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춘향의 소문을 듣고 현 남원 사또를 급습하기 전 날 춘향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만나보기도 한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몽룡은 당연히 변 사또 급습에 성공하고, 수절을 지킨 춘향은 임금님께 '정렬부인' 칭호를 하사받고 몽룡도 승진하여 둘은 부부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내가 읽은 춘향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 다 하는 굳건한 심지를 가진 여성의 이야기'로 보인다. 사랑하는 남자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청만 들면 어쩌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 게다가 변 사또는 자기를 고문까지 하고 있다. 옥중에 큰 칼 차고 갇혀 어찌 될지 모르는 답답한 상황에서도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을지 모른다'라며 꿋꿋하고, 매를 맞아 살이 터지고 선혈이 낭자한 데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상하게, 그리고 기개있게 다 하는 춘향이의 모습이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절개 있게 보였다. 오 요고 봐라? 이 언니 할 말 다 하네. 그래 봐야 열여섯 살짜리가. 그 정도는 되어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임금님께 "정렬부인" 칭호도 받고 양반가의 남자의 정부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나 보다. 재미는 있다. 해석 또한 읽는 사람 마음일 테고.

덧) 표지가 참 마음에 안 든다. 아무리 춘향전의 <사랑가>가 이야기의 절정이라고는 하나 그림이 뭐 이래? 그림의 구도 봐라. 몽룡이 뒤에서 옷을 벗기는 춘향의 옷 고름이 풀어진 모습에 눈이 가게 그려 놨다. 여성의 대상화는 이런 데서도 보인다. 어쩌자는 건지.

 

 

요즘 소설과는 다르게 구어체인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보이는 것이 다 춘향이라. 보고지고. 칠 년 큰 가뭄에 빗발같이 보고지고. 구 년 홍수에 햇빛 같이 보고지고. 달 없는 동쪽 하늘에 불 켠 듯이 보고지고. - P197

백옥 같은 다리에 솟아나는 것은 유혈이라. 보는 이 뉘 아니 가련히 여기리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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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석 같이 수절하는 춘향이 수청 아니 든다고 엄히 다스려 옥에 가두었지만 구관의 아들인지 개아들인지 한 번 떠난 후 내내 소식이 없으니 그런 소자식이 어디 있을까 보오? - P230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호의호식하며 살고, 어떤 사람은 사주가 험악하여 일신이 난처한가? 빈부고락 들어보세." - P248

비록 장부라도 임금 섬기는 자는 반드시 두 마음 먹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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