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지도책을 꺼내 본다. 책과 영화, TV에서 나온 지명을 손으로 집어가며 찾는 일은 즐거운 놀이와도 같다. 지도 속을 헤매는 일은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은 삶을 경험해야 함을 깨닫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그중 캐나다와 미국, 알래스카가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이민자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전까지 인간과 늑대가 공존하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던 <토요명화>에서 방영한 서부영화로 접한 광활한 평야의 풍경은 원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제약 없는 상상력으로 펼쳐 보이는 무대였다. 이 상상력의 시발점이 된 영화는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관람한 영화 <늑대와 춤을>(1991)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인디언 사회에 동화 되어가는 백인남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 존 덴버 북군 중위가 눈밭에서 늑대 한 마리와 장난을 치고 노는 장면이었다. 이로 인해 존 덴버는 인디언들 사이에서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조금 알게 되면서 나는 뒤늦게 존 덴버 중위가 늑대와 어우러지는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그것은 늑대사냥으로 표상되는 인디언학살에 대한 유럽정착민들의 뒤늦은 반성문이었다. 폭력으로 그 땅을 정복한 승자의 입장에서 그려진 지극히 진정성 없는 반성문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늑대는 백인이 그 땅을 발견하기 전까지 이 대륙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윌리엄 그릴의커럼포의 왕 로보는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의 모습은 어떠했나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는 지도책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볼 때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아주 현명한 존재를 마음껏 상상할 것만 같다. 책은 영화<늑대와 춤을>과 동일하게 남북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뉴멕시코주 커럼포 일대를 지배하는 늑대 무리의 왕 로보와 로보를 사로잡은 늑대사냥꾼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의 실화를 개성 넘치는 글과 그림으로 담고 있다. 그중 로보가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늑대사냥꾼들을 유유히 따돌리는 장면이 책의 백미에 해당한다. 익살스러운 그림들 사이사이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하고 있어 그림에 의미를 더했다. 텍사스에서 온 늑대사냥꾼 태너리는 29마리의 사냥개로 로보를 잡으려고 시도했다. 로보 무리는 텍사스와 달리 골짜기가 많은 커럼포 지형의 이점을 살려 사냥개 무리를 거의 몰살하다시피 했다. 당시 로보에게서 살아남은 사냥개 수는 고작 여섯 마리뿐이라고. 이듬해인 1863년에는 늑대 왕의 가죽을 얻으려는 사냥꾼이 두 명 더 나타났다. 캐나다에서 온 랠로시는 독약으로 로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늑대 왕은 그를 비웃듯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또 한 명의 사냥꾼 캘론은 잡으라는 로보는 못 잡고 그 지역의 다른 늑대들을 100여마리나 잡아 죽였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행동은 늑대학살이었다.

 

 

 

 

 

 

화가이자 늑대사냥꾼인 시턴은 집요한 추적과 인내 끝에 로보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막상 시턴의 덫에 걸린 로보의 모습은 커럼포 일대를 공포에 떨게 만든 늑대 왕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로보은 인간에게 광활한 초원은 물론 동족의 생존권마저 빼앗긴 늙고 지친 거대한 회색늑대에 불과했다. 지난날의 영광을 떠올리듯이 평야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서히 죽어가는 늑대 왕의 최후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 또한 재설정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로보과 그를 사로잡은 사냥꾼 시턴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늑대보호운동의 계기가 됐다. 시턴은 로보의 이야기를 출판했고 다양한 활동으로 늑대보호에 앞장섰다.

 

왜 인간들은 늑대학살을 멈추지 않았을까? 늑대는 인간이 만든 신화와 전설 속에서 그 자체를 상징하거나 악당으로 곧잘 등장했다. 빨간 망토, 아기돼지삼형제, 늑대인간 등, 늑대에 대한 오해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로보를 잡으려했던 사냥꾼 캘로시 또한 로보를 늑대인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난 늑대에 관한 이 모든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킬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다.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미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커티스(1868~1952)의 사진 한 장이 그것이다. 에드워드 커티스는 북아메리카대륙의 마지막 인디언들을 사진에 담은 작업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내가 본 사진에는 한 인디언 남성의 옆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밝은 색깔의 콩팥을 의미하는 아푸요토크시 인디언 부족원이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쓰고 있는 인디언 전통모자(워보닛)이다. 모자는 늑대가죽과 독수리 깃털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늑대가 우리의 편견과 달리 북미 인디언들에게는 힘과 권력, 그리고 존경을 상징했음을 의미한다.

 

북아메리카는 늑대의 땅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존중하면서 공존의 삶을 선택한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반면 유럽정착민들에게 늑대는 인간의 적으로 간주됐다. 인간(유럽정착민)과 늑대, 갈등의 중심에는 바로 땅이 있다. 늑대의 사냥터, 즉 늑대 영역을 유럽이주민들은 목초지로 개간했다. 인간에 의해 갑작스레 사냥터를 잃은 늑대는 인간의 가축들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로 인해 늑대는 유럽정착민들에게는 자신들의 가축을 도륙하고 훔치는 악당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악순환은 늑대를 악으로 묘사하는 유럽의 신화와 전설까지 더해져 늑대학살로 확대되어갔다. 책의 저자 윌리엄 그릴은 로보의 이야기 안에 이와 같은 이야기들까지 함축 요약해놓고 있다.

 

다음 날 아침, 태양은 다시 떠올랐지만 로보는 여전히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늑대 왕의 강한 힘과 영혼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늙은 늑대 왕 로보는 죽었다.

-p.64

 

저자 윌리엄 그릴은 늑대 왕의 죽음을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새떼로 표현했다. 한 시대는 그렇게 마감됐다. 그 땅의 주인은 이제 그곳에 없다.

 

 

 

 

 

 

로보의 죽음을 계기로 사냥꾼 시턴은 동물보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공격적인 늑대학살은 그 뒤로도 미국에서 100년 가까이 자행됐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늑대가 북미아메리카대륙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턴의 늑대보호 정신을 이어받은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현재 북미아메리카에서 늑대 개체수는 약 9천 마리로 추산되고 있다. (참고도서 늑대의 숨겨진 삶출판사 글항아리) 사실 늑대 왕 로보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벌어진 무척이나 슬픈 이야기인데 슬픔을 넘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인간과 늑대의 공존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선사한다는 데 있다.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독특한 그림체 또한 슬픔을 극대화하기보다 희망을 떠올리게끔 도와준다.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개인적으로 꼽아보라면 페이지 50~51쪽까지, 두 페이지에 걸쳐 밤하늘을 배경으로 초원을 달리는 늑대 왕 로보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그 무엇도 로보를 구속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촌스러운 해석일지 모르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의 땅 위에 세워졌음을 작가는 의연 중에 드러내고 있다.

 

눈밭에서 늑대와 춤을 추던 존 덴버 중위는 학살과 정복으로 얼룩진 백인문명사회를 버리고 깊은 산속으로 떠나버린다. 이는 마치 인간이 진정 살아야 할 곳은 여기 문명사회가 아닌 저기 깊고 넓은 자연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비록 사냥꾼에게 잡혔으나 왕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았던 늙은 늑대 로보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윌리엄 그릴의 글과 그림은 동물과 생태계를 해치는 것보다 그들을 보호함으로써 친절과 존중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운다. 말 못하는 짐승이 아닌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 존재로써 그들을 대할 때 우리는 문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시 지도책을 꺼냈다. 로보이 누볐던 그 땅을 손으로 가만 짚어본다. 그 광활한 땅에서 늑대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꿈을 꾼다. 늑대와 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