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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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아든 순간을 떠오른다. 생각보다 큰 부피와 묵직한 상자에 ...상자를 열었을 때 보여준 이 녀석의 비주얼에 얼마나 놀랐던가? 얼마 전에 읽은 문익환평전과 맞먹는 두께, 표지에서 풍기는 고급스러움에 기함했다. 한 순간에 기가 죽었더랬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고는 그 모든 편견을 떨쳐버렸다. 흔히 우리는 신사의 정형으로 영국 신사를 떠올린다. 이제 영국신사보다 모스크바 신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아질거다. 이토록 은근하게 매력을 뿌리는 신사라니.......우리네 선비와는 사뭇 다른 그의 멋스러움에 빠져들었다. 서평마감일에 쫒겨서이긴 하지만 단 700쪽을 이틀에 끝내다니...마지막 날은 거의 500쪽을 ...딱 2시간 자고 밤을 지새웠다. 그만큼 모스크바 신사는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어린 시절 대공에게 들은 인생을 지배하지 않으면 인생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말을 기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러면서도 타인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니 이런 신사는 나이를 먹어도 그 멋스러움이 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스위트룸에서 묵고 있던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내무 인민위원회에 출두한다. 귀족이라는 출신 성분때문에 총살을 당해야하는 입장이지만 젊은 시절 발표한 혁명적 시 한 편이 그의 목숨을 구한다. 단, 조건은 메트로폴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이른바 감금형이지만 내가 생각했던 조그만 방에 유폐된 것은 아니었다. 호텔 안에서 만큼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고 원하는 물건을 사고 호텔 안의 사람들과 말하고 생활하는 것들은 포함되었다. 그렇다. 오직 호텔안에서만큼은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쌓은 그의 우정들이 아름답다. 어린 니나와의 추억, 그녀의 딸과의 생활, 호텔 식당 3인방의 조화, 이 모든 것이 로스토프 백작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덕에 가능했다. 그 누구보다 우울할 수 있는 현실에서 그는 전면에 미소를 띠고 세상을 바라볼 줄 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자신의 역할을 다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은 충분히 보상받았다. 신사란 무엇인지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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