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십육일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4·16재단 엮음, 임진아 그림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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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매월 16일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4·16재단에서 연재해 왔다. 작가, 뮤지션, 배우, 시인, 정치인, 활동가란 이름이 아닌 그 사태를 목도한 평범한 시민들이 '4월 16일'을 실감나게 그려내 읽는 내내 2014년 4월 16일, 사건 당일이 생각났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국사 교양 강의를 듣고 있던 참이었다. 친구가 화들짝 놀라며 뉴스를 보라며 책상 밑으로 기사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걸 받아 읽던 차가운 공기가 선연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안도했던 순간과 그것이 오보라는 기사가 연달아 터졌을 때, 나는 TV 앞을 떠나지 못하고 왼쪽 생존자 수의 숫자가 하나라도 늘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10월 29일도 같았다. 이젠 성인이 되어 일하고 있을 때, 이태원에서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고, 생존자들의 증언은 처참하기에 그지지없어서 10년 전,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고 말았다. 그때와 달리 되도록 보지 않았고, 그저 속으로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나라이니 당연히 괜찮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진실이 기억하는 느린 진심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어 있다. 우리는 떠나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낸다. 삶의 반복 속에 닳아가듯 지쳐갈 때에도 이런 슬픔은 페달을 밟는다. (p. 15)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 의미는 퇴색되어 '아직도 거기에 몰두해 있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묵음 처리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억이 되길 바랬는데 사회는 냉혹했고, 생활은 잔인하게도 흘러갔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대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날이 되면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은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일상에서 그런 참혹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이 사회는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어떤 마음을 아는 데 필요한 것은 꼭 '같은' 경험이 아니라 그 마음에 다가서고자 하는 마음임을 내게 알려 준 사람이 있다. (p. 135)


누군가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으면 좋겠다. 일상과 예술에서 계속해서 이야기가 되풀이되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잠시 우리가 겪은 아픔이 누군가에겐 몇백 배는 더 처절하고 뼈저렸음을 알았으면 한다. 노란 리본 대신 노란 인덱스를 붙이면서 기도한다.


애도의 다음 단계는 그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간직하는 방식이다. 그 사람이 내게 주었던 가치들, 그 사람이 살고자 했던 삶, 그 사람이 가치 있다고 믿었던 것을 내가 실현하며 사는 삶이다.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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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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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 소설들은 이민자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사실 모두가 집에 가는, 집에 가고 싶은, 집에 가려고 하는 이야기였다.

p. 316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단편소설을 오랜만에 읽어본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데도 그의 색채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전해졌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고잉 홈’이 누군가에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지만, 또 다른 이에겐 도피하고 싶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작가는 그 접점을 명석하게 짚어내며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의도된 방황의 시작이자 도피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표제작 <고잉 홈>을 포함해 화자들은 집에 가는, 집에 가고 싶은, 집에 가려고 애쓴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처럼 피곤한 톤이 곳곳에 얼룩져있다. 모두 헤매는 데 거침없다. 내면에 불안한 어린아이를 끼고 끝까지 질주해 닿은 곳은 내 나라, 내 고향, 나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벗어난 곳에선 정착할 수는 없다. 정착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도피는 다른 결말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두 사람에게는 정착할 곳이 필요하므로. p. 309


미국은 개척을 상징한다. 박혜진 평론가의 말처럼 슬픈 운명을 개척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건 달콤 쌉싸름한 믹스 커피의 익숙한 맛이다. 


보통 소설집이면 두각을 드러내는 한두 작품이 머릿속에 남기 마련인데, <고잉홈>은 한편 한편 읽어 내려갈 때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여정의 느낌이 났다. 역시 시차 때문일까.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갈 때마다 갱신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몇 소설을 꼽자면 잃어버린 딸,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인 ’크리스마스 캐러셀‘과 ’우리들의 파이널컷’이다. 끝을 향해 달리다가 마주한 그 사람의 남루한 진실이 보여주는 안도감, 허탈감, 부끄러움, 아쉬움, 미안함 그외 복잡한 감정이 두루 얽힌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리긴 쉽다. 되찾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헤매고 방황하는 미로 속에서 어떤 것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까. 모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길, ‘그곳’과 ‘이곳’은 같다는 걸 작가는 말하려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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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쌓는 마음 마음의 지도
윤혜은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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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채 어긋난 기록은 뻔한 나로 살아낸 하루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하루가 되므로, 일기를 밀려 썼다기 보단 아주 짧은 이야기를 쓴 것 같다.


'마음의 지도' 두 번째 책 <매일을 쌓는 마음>은 작가가 기록을 통해 나를 마주하고 너와 함께 우리로 나아가는 시간의 퇴적과정을 다뤘다. 되고 싶은 나, 되지 못한 나, 선망하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애틋한 사람, 애증으로 가득한 사람. 여러 인간 군상을 솔직하게 담아내며 일기로, 책으로, 가사로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28살부터 쓴 10년 일기장이 어느덧 2칸 밖에 남지 않았다는 작가는 일기를 빈틈 없이 채워간다. 나도 두툼한 일기장이 여러권 있지만, 매일을 쌓는 그의 기록에 비하면 빈칸 투성이로 남겨둔 게 많아 다소 초라하게 느껴진다.

교정지를 하나하나 톺아보며 누군가의 기록에 밑줄을 긋고, 그 옆에 다시 기록을 쌓아 나가는 과정은 특별했다. 어릴 적 꿈에 다가선 건만 같은 설렘이 글을 읽는 내내 살랑살랑 마음을 간질였다.


기록보다 기억하려는 노력에 더 시간을 쓰는 밤을 보내고 싶다. 기억의 부피를 내 안에서 키울 수 있도록.


일기는 거대한 세계다. 개인이 일군 역사이자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보면서도 히죽 웃는 모습을 상상하면 단지 내가 된다는 건, 그저 나이길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건 포기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그저 온전히 내 몫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그를 통해 배운다.

삶은 무겁게 느껴졌는데, 하루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작가 덕분에 깃털처럼 한층 가벼워졌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가볍고 경쾌하게, 그리고 기록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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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나의 1년 2023-2024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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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도 채 남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이 시점에,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올해가 '두달이나' 남았다고. 제겐 이번 한해가 너무도 깁니다. 여름 무렵부터 저를 괴롭히는 몇몇 사건들 때문이에요. 

붕 뜬 야구공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제 생활도 평범함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와 또 다른 자신이 마주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라는 문구를 따라 나의 '오늘', '내일' 그리고 '미래'를 적어봅니다.

올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정에는 회의감이 묻어나지만, 꼭 무언가를 이뤄야만 '의미 있는 1년'이 되는 건 아니라는 홍성향 코치의 말에 잠시 짙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무거운 숨 속에 숨은 짐은 계속되는 질문에 가둬두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올 한해 그래프는 계속 하강하지만 아직 한달이 남았다는게 위안으로 다가오는 건, 여전히 희망을 바란단 뜻이겠지요.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인지, 오늘 여러번 질문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나 자신에게 오늘의 감정은 어땠는지, 친절하게 물어봐 준 적은 없더군요.

하루를 정리하며, 한 해의 페이지도 마감합니다. 기록하는 지난 1년 속엔 아직 부정적인 언어가 가득하지만 토해내면 숨겨진 긍정 언어가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2023년 나만의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 오늘도 차분히 써봅니다. 나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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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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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기 전, 첫 책을 마주하는 설렘은 여전하다. 김금희 작가의 엽서와 함께 도착한 <크리스마스 타일> 가제본은 체온에 녹아버릴까 소중히 간직하던 눈송이 같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연작소설로,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 수록된 '크리스마스에는' 이야기가 시작점이 됐다. 그렇게 <첫눈으로>의 소봄, <은하의 밤>의 은하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소설은 겨울이면 떠오르는 특별한 기억이 있는 인물들의 사랑과 이별, 노동과 상실을 그린다. 거리 곳곳이 밝은 알전구로 가득 차 빛나는 연말연시의 반짝임은 내밀한 속마음을 비추는 배경이 된다. 방송국을 중심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다음 편에 지인으로, 가족으로, 옛 연인으로 등장하며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의 시간을 궁금하게 한다.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일자리를 잃거나 방황하기도 하며, 사랑하는 가족 또는 반려견, 연인과 헤어진다. 그들은 빈자리를 대체할 타인을 찾기보다 오롯이 공허함을 느끼며, 찬 공기를 더욱 내 곁으로 끌어모은다. 충분히 애도하는 기간은 편하게 보내주기 위한 과정처럼 느껴졌다.


🎄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작가의 말' 中)



인물 간의 관계만큼이나 방송국이란 거점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도 재밌었다. 좌천된 아나운서의 말에서 시작된 프로그램부터 피디 '지민'의 전애인 현우을 '맛집 알파고'로 다시 마주하는 에피소드 등이 말이다. 인생의 소란이 작은 연결고리가 되어 다시 근황을 묻게 되는 과정이 현실에서도 있을 법해서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작가의 말처럼 크리스마스는 진짜를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다. 불쑥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며, 살기에 바빠 놓친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여기 있는 모두는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안녕을 빈다. 미안하고 원망스럽지만, 한때는 소중하고 애틋했던 그들의 겨울이 더는 춥지 않도록.


"죽어서도 아프덜 말고 살아서도 아프덜 말고"('은하의 밤'), "너무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 말라"('데이, 이브닝, 나이트')는 말들을 건네면서. 



🎄 그렇게 해서 정말 어떠한지를 곰곰히 따져보는 이 밤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은하의 크리스마스였다. (「은하의 밤」, p. 64)


🎄 영화관을 나와 할머니와 손을 잡고 걸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음의 국면들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될까 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붙들고 걸었을까. (「데이, 이브닝, 나이트」, p. 102)


🎄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버렸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  (「월계동(月係洞) 옥주」, p. 133~134)


🎄 소봄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그날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첫눈으로」, p. 219)



-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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