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 - 중세의‘화려한 반역아’,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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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권과 하권 통합 리뷰입니다.


역사 소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잡지에서 데뷔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연재하던 시절부터 언젠가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 쓸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45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펴내게 된 책이 바로 이 정직한 제목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한 역사에 빠진 유명 작가가 쓰고 싶어했던 역사적 인물이고, 또 십자군 전쟁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도 성지를 되찾았다는 업적에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지 나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는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인 이야기>와 달리 역사 소설이 아니라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에서 (그래서 작가의 견해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라는 실존 인물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써내려간 평전이기 때문에 재미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읽어나간 책이다.

프리드리히가 성이나 대저택이 아닌 작은 마을의 광장에 설치된 천막 안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태어나는 시작부터가 그러했다.
(프리드리히의 아버지 하인리히보다 어머니 콘스탄체가 열한 살 연상이었고, 프리드리히도 후에 자신보다 열 살 연상이며 어머니와 같은 콘스탄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 등 비교적 사소해보이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프리드리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아버지 두었고 어머니로부터는 시칠리아 왕국을 물려받을 금수저 중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몸이니 풍족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 같지만,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품을 떠나 공작 부인에게 맡겨져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아버지는 세례식 때 한 번 만났을 뿐이었으며 어머니는 프리드리히가 세 살이 되어서야 다시 만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시칠리아의 왕이었던 하인리히가 급사해서 콘스탄체가 아들 프리드리히를 데려와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시켰던 것인데,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콘스탄체가 병상에 누워 프리드리히가 네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병상에서 콘스탄체가 홀로 남을 프리드리히의 후견인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대대로 교황은 한 사람이 신성로마제국과 시칠리아 왕국을 모두 다스리게 되는 것을 경계한 데다 인노켄티우스 3세는 “로마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인물로, 통치자가 될 프리드리히의 교육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귀공자에게 필수적인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프리드리히 자신이 원하는대로 탐구할 수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이런 교육 상황이 그의 군주로서의 면모를 형성하는 데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풍족한 환경에서 철저하게 미래의 통지차로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보다 멋져 보이고 말이다.

또 사고 안 치고 건강하게 잘만 자라주면 아버지가 앉았던 세속의 최고위자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는 세습이 되었던 반면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는 선제후들의 선택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는 일찍이 신성로마제국의 넓은 지역을 위험을 무릅쓰고 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로부터 세습되어 통치권을 가진 시칠리아 왕국도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켜 근대 군주국으로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그 모든 일을 이야기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서평에서는 프리드리히가 어떤 군주였는지를 알 수 있는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프리드리히 2세는 유럽 최초의 국립 대학인 나폴리대학을 세웠다.
당시 유럽에 다른 대학들이 있기는 했지만 신학이나 교회법을 가르치며 성직자들을 길러내는 장이라고 할 수 있었던 데 반해 나폴리대학은 처음부터 세속인을 위한 대학을 목표로 하여 그리스도교 필터를 배제하고 모든 과목을 가르치고자 했고, 국비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프리드리히는 대학 수업료를 무료로 했을 뿐만 아니라 학업 성적에 따른 장학금 제도도 확립하고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저금리 학자금 대출 제도를 만들었으며, 나폴리 시내에 집을 빌려야 하는 학생을 고려하여 임대료 상한까지 정해두었으니, 나폴리대학은 당시 다른 대학보다 시작은 늦었으나 여러모로 최초인 대학이었다.

나폴리 대학은 분명 8백 년 전 중세의 대학인데도 이런 점을 보면 지금의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 프리드리히 2세는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또 상당히 앞서 나간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라센 문제를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센은 유럽의 그리스도교도가 이슬람교도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이슬람교도가 유럽의 그리스도교도라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건 프랑크인이라고 불렀듯 말이다)
시칠리아에는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공존했는데 어느 날 시칠리아 농촌 지대에 사는 이슬람교도들이 일제히 봉기했고, 시칠리아 왕국 전체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프리드리히 2세는 봉기에 가담한 인물과 그 가족을 시칠리아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강경책을 폈다.

시오노 나나미는 때가 십자군 시대였던 만큼 프리드리히가 이교도에게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강요했더라면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 교회의 칭찬을 받았을 거라고 했는데 프리드리히는 그러지 않았다.
봉기에 가담한 이슬람교도들을 강제 이주 시키기는 했지만 산간벽지가 아니라 왕궁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곳을 사라센인 마을로 정하고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으며 생활 수단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니 시칠리아에 사는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다시는 없었을 만하다.

또 중세하면 십자군 원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교황에게 이교도로부터 성스로운 수도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일은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에 프리드리히도 계속해서 십자군 원정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았고, 결국에는 십자군 원정을 떠나지만 놀랍게도 피 흘리는 일 없이 성지를 탈환하는 업적을 달성한다.

그동안 속세 최고위자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그리스도교 교회의 최고위자인 교황은 이교도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동안 교황이 몇 번 바뀌었음에도) 서로를 쭉 견제했고, 교황이 프리드리히를 몇 번이나 파문하며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지만 프리드리히는 이에 굴복하지 않아 더 빛을 발한다.

이렇게 군사력도 자금도 없었던 젊은 프리드리히가 통치권 확립하고 부지런히 나라를 탈바꿈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소설의 주인공 같은데, 프리드리히는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며 그의 업적도 실제로 달성되었으니 평전임에도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고 지루하지가 않았다.
이런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가진 매력에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이 더해져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를 읽으면서는 프리드리히 한 명의 생애를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세라는 시대를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서양 중세에 관심이 있었다거나 이 서평을 읽으며 프리드리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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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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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에게 마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에서 사악한 여왕이 변신한 노파였고, 그 다음으로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만화 속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또래 여자아이였고, 또 그 다음에는 아름답고도 위험한 매력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마녀사냥의 역사가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으며, 마녀는 여성혐오와 여성억압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페미니즘적 의미가 추가되었다.
그래서 내가 마녀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마녀를 그려낸 작품들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령의 여인

처음에는 아버지, 그 다음에는 남편의 보호 아래 놓였던 중세의 여성은 과부가 된 후에야 약간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노파들이 가진 자유와 오랜 연륜에서 비롯된 지혜는 여성을 감시받아 마땅한 존재로 치부했던 남성을 공포에 떨게 했다. 노파들은 곧 마녀사냥의 훌륭한 먹잇감이 된다.

p.20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는 미술문화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해시태그 아트북 두 번째 책으로 마녀를 그린 40여 점의 작품을 수록했다.
(마녀로 분장한 사람이나 마녀로 오해받은 인물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마녀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여기에서는 통틀어 ‘마녀’라고 하겠다)

본격적으로 마녀를 그려낸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예술에서 마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갔고, ‘꼭 봐야 할 작품들’로 열여덟 점을, ‘의외의 작품들’로 스물두 점을 소개하고 있다.

마녀를 그린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과 설치 미술도 포함된 마흔 점의 작품들은 시대순으로 수록되었고, 책을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에는 작품에 대한 글을 싣고 오른쪽 페이지는 해당 작품으로 채워서 되도록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지 않아도 되게끔 했는데, 책을 읽기 편하게 하는 이런 배치는 물론이고 작품 사진 자료의 인쇄 품질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 책을 손에 들고 넘겼을 때 내지를 만져보고 이 책은 안 좋은 인쇄 상태로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겠구나 했는데 정말 그랬다.
한 페이지를 모두 작품을 보여주는 데 할당하고 그것도 모자라다고 판단한 몇 작품은 다음 장에서 두 페이지를 꽉 채운 큰 그림으로 만날 수 있게 한 데다, 이미지가 흐릿하거나 모자이크마냥 깨지는 일 없이 선명한 편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단, 작품 사진 자료는 (네 개의 원형화로 구성된 <마녀들이 있는 장면> 같은 그림을 제외하고) 글에서 소개하는 주요 작품 하나만을 수록했기 때문에 글에 등장하는 다른 작품은 따로 찾아봐야 하는데, 만약 언급된 작품 모두의 사진 자료를 넣었다면 분량도 많아지고 지금처럼 글을 읽으며 그림을 보기 편하게 배치하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다.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를 읽으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마녀 키르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속 마녀들, 중세 소설 <아서왕의 죽음>의 삽화로 그려진 마녀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엔돌의 마녀, 러시아와 동유럽 동화 속에서 아이들을 잡아먹는 노파 바바 야가를 비롯한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마녀들을 볼 수 있었고, 17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 <마녀의 언덕-세일럼의 순교자>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했음에도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에 처해졌던 잔 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을 그린 <잔 다르크>에서는 역사 속 마녀(정확히는 마녀로 오해했던 것이지만)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허공의 마녀들>과 칠도 메이렐리스의 설치 미술 <마녀>였는데, 이 두 작품은 각자 판이한 느낌으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날아오른 세 마녀들이 한 남자를 생포했다. (...) 머리에 쓴 뽀족모자는 작은 뱀들로 장식되어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종교재판 때 죄인에게 씌웠던 모자 코로자coroza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포르투갈어로 ‘이단자 처형’이라 불렀던 공개 처벌 의식에 쓰이는 모자로 악명이 높았다. 고야는 종종 이런 장면을 그려서 종교재판에서 벌어지는 가혹 행위를 고발했다. 다만 마녀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코로자와 달리 가톨릭 주교가 쓰는 거대한 주교관, 미트라mitre처럼 중앙이 갈라져 있다. 여기서는 오로지 종교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 강조된다.

p.34


이렇게 다양한 마녀를 담아낸 작품들을 보고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뒤의 배경 이야기와 감상을 읽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 안에서 마녀의 이미지는 어떠했는지와 과거에 실제로 행해졌던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세일럼 마녀재판이 한창이었던 1692년으로 가 보자. 그해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청교도 마을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두 아이가 여자 셋을 마녀로 지목한 이후 온 마을에서 비방과 고발이 뒤따랐고, 투옥이나 교수형이 선고됐다. 마녀 혐의를 받은 자가 몇 달 만에 100명을 넘어갔다. 그중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남자도 몇몇 있었다. 처음에는 혼혈이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음해하다가 나중에는 나이가 많든 적든, 독실하든 아니든, 도움이 되든 안 되든 가리지 않고 아무나 고발했다.

p.40


그러자 내 눈에 마녀가 더 다채롭고 풍부한 이미지로 보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마녀라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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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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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소설을 몇 권 접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적은 경험이나마 바탕으로 하여 생각해보았을 때 퀴어소설, 정확히는 남성끼리의 사랑을 다룬 소설은 나와는 안 맞나보다 싶었는데, 한 소설이 내 안의 퀴어소설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간질거리면서도 끈적한 퀴어소설 특유의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주의 체제하의 폴란드라는 특별한 상황이 깊이를 더해주고 두 사람의 관계와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하는 소설을 만난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이고, 미국 뉴욕에서 주인공 루드비크(애칭으로는 루지오라 불린다)가 과거를 회상하며 ‘그’라고 부르는 야누시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래 남자아이에게 마음이 동했던 루드비크는 공원에서 만난 중년 남자에게서 동성애자의 현실을 보고는 다시는 남자를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대학 마지막 학기를 막 마친 여름에 참가한 농촌 활동(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농촌 활동에 강제로 복무해야 했다고 한다)에서 야누시를 만나버린다.

처음 보자마자 야누시에게 끌렸던 루드비크의 시선은 훈련소에서 숙박하며 비트를 수확하는 농촌 활동을 하는 내내 야누시를 좇았고, 어느 날 루드비크가 홀로 산책을 하다가 강가에서 수영을 하던 야누시를 만나면서 말을 트고 둘이 가까워지다가, 루드비크가 읽던 <조반니의 방>을 나눠 읽는 것을 계기로 사이가 급 진전되었다.

약혼녀가 있는 데이비드가 파리에 있는 게이 바에서 조반니를 만나면서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루었다는 <조반니의 방>은 비인가도서(불온서적)로, 루드비크에게 의미가 남다른 책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짐작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누시에게 그 책을 빌려주었다는 것은 루드비크에게 야누시가 특별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야누시도 그런 <조반니의 방>을 빌려 읽으면서 루드비크에게 확신이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어딜 가는 건지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다가 딱히 왜인지는 몰라도 멈춰 섰다. 물속에서 뭔가 거대한 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 헤엄치고 있었다. (...) 내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그 형체는 벌써 방향을 틀어 내쪽으로 헤엄쳐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태양을 등지고 있단 나는 물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형체는 이 길쭉한 응달을 헤엄쳐 지나자마자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
“안녕.” 네가 말하는 투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듯했다. 너의 상체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너의 몸은 늘씬하고도 강인했고, 가슴과 배에는 저만의 중력의 법칙에 따라 선이 그어지고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안녕.” 나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너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했다.
너는 눈을 찡그리고 손날을 눈썹 위에 대어 내 등 뒤에서 비추던 햇살을 가렸다. “나랑 같은 작업반에 있는 애 맞지?”
나는 끄덕였다.
“나는 야누시.” 너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거기 선 너는 거의 무례할 만큼이나 태평스러워 보였다. 발가벗은 기분이 드는 쪽은 나였다.

p.63-64


그렇게 농촌 활동에서 처음 만나 가까워지기 시작한 둘은 농촌 활동 직후 여행을 떠나 숲속 호숫가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며 함께 수영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온전히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지만, 영원히 그렇게 지낼 수는 없는 법, 둘의 관계는 비밀로 부쳐두기로 하고 도시 바르샤바로 돌아온다.


“이렇게 돼서 좋다.” 이렇게 말하자 내 목소리의 울림과 몸속에 퍼지는 그 잔잔한 진동에 기분이 좋았다.
“나도.” 너는 내게 고개를 돌렸고, 그러는 너의 눈빛은 밝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 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가 도착한 첫날 네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부터. 너는 읽기 쉽거든.”

p.97


호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아침에 우리는 짐을 싸고 텐트를 해체했다. (...)
“우리 둘 다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너는 주머니를 조여 닫으며 갑자기 진지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뭘?” 나는 물었다. 뭔지 정확히 알았으면서도. 배 속이 수건처럼 비틀려 짜지는 것 같았다. (...)
너는 내게 은밀한 눈길을 던졌다. “이거 말이야.”
나는 괜히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호수 쪽으로 던지고는, 나뭇가지가 날아가다가 허무하게 떨어지며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네. 얘기하면 안 되겠네.”

p.111-112


만약 그저 이런 이야기일 뿐이었다면 조금 간질거리는 퀴어소설 그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의 배경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폴란드이기 때문에 (주요 시간적 배경은 1980년이다) 소설에 전체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당시 폴란드의 분위기가 묻어난다는 점이 다른 퀴어 소설과 차별화 되는 부분인데, 루드비크와 야누시의 사회주의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 더욱이 이 소설을 흥미롭고 특별하게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밖에서는 절대 말해주지 않는 이면의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며 절대로 알고 있다고 시인해서는 안 되는 진실을 어렸을 적 건네받은 (루드비크는 이를 독이 든 선물이라고도 했다) 루드비크와 교육을 받을 때에도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데에도 당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야누시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갈등하는데, 불온서적으로 분류되는 <조반니의 방>을 함께 읽었던 야누시는 그런 책들을 검열하는 언론통제국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사회주의 체제에 편승한다.

그렇다고 루드비크가 강경한, 사회주의 체제의 전복을 부르짖으며 행동하는 영웅적 인물은 아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반하는 인물이라는 낌새가 보이면 잡혀가는 시대였으니 루드비크는 겉으로는 다른 인민들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며 눈에 띄지 않게 지냈고, 그런 스스로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속 아이처럼 진실을 보았으나 동화 속 아이와는 달리 직언하지 않고 진실을 보지 못한 체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경멸했다.

또 체포 위기를 몸소 겪고 나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고 몇 위기를 겪고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체제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루드비크의 신념이 흔들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인물의 입체적인 면이 현실적이어서 실제로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루드비크나 야누시가 있었을 것만 같았다.


(...) 나는 호수를, 텐트를 자꾸만 돌이키곤 했다 ?아직은 가늠이 되지 않던 무언가가 탄생한 근원이라도 되었다는 듯 강박적으로. 나는 사임과 같은 너의 몸에서 내가 있을 곳을 찾았었다? 너의 허벅지와 유두라는 둔덕 사이에서, 네 겨드랑이라는 동굴 속에서. 그러나 너라는 지형은 갑자기 도시의 그것처럼 명확해져, 피부는 다세대 주택의 벽돌처럼 달궈졌고 몸의 굴곡은 끊긴 데 없는 일직선처럼 바뀌었다. 대로의 일직선, 전차 선로의 일직선, 길바닥에 격자무늬의 그림자를 드리우던 뻣뻣한 철책의 일직선처럼. 일견 견고해 보이지만 체중을 실으면 떠밀릴 수도 있어서 너무 오랫동안 기대고 있으면 삐걱거리던 것이 금방이라도 자동차가 득실한 번잡한 타르 포장도로로 튕겨 나갈 것만 같던 그런 철책의 일직선처럼.

p.113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표현에 공을 들였음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작가가 힘을 주고 쓴 문장은 때로는 부담스럽거나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문장은 그게 아니라 표현이, 문장이 좋아서 여러 번 읽게 된다.

위 인용문은 야누시와 함께 숲속 호숫가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둘의 관계를 비밀로 하기로 하고 도시 바르샤바로 돌아왔을 때 루드비크의 심정을 자연의 곡선과 도시의 직선으로 대조하어 표현한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책표지의 이미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강가에서 헤엄치던 야누시와 루드비크와의 만남이나 숲속 호숫가에서 수영하고 사랑을 나누며 둘이 함께 보낸 나날들을 비롯하여 여름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고, 또 그 이미지가 강렬하기에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여름날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그러니 올여름에는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와 함께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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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매틱스 2 - 유휘, 히파티아 편 매스매틱스 2
이상엽 지음 / 길벗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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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같은 고대 그리스 지성들의 모습을 담은 <아테네 학당>에 그려진 유일한 여성, 남성들의 기록이라고 불릴 만큼 여성의 이름이 드문 역사에 뛰어난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이름을 남긴 여성, 따르는 자가 많았으나 종교의 공격을 받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여성, 히파티아의 죽음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학문의 중심이라는 명성을 잃었다.

이러니 내가 히파티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에 <매스매틱스 2>를 읽게 된 이유도 히파티아가 8할, 아니 9할은 차지했다.
때문에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편인 <매스매틱스 1>은 건너뛰고 유휘와 히파티아 편인 <매스매틱스 2>부터 읽게 되었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서연이 에피소드마다 다른 시간대에 살아가는 인물의 삶에 덧씌워지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가 어느 정도 독립적이어서 별 불편함 없이 읽었다.
서연이 그렇게도 찾는 ‘그’처럼 1권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2권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2권을 읽으면서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기본 설정은 짐작할 수 있었고 말이다.

<매스매틱스 2> 유휘 편에서 서연은 지금으로 따지면 촉한의 국무총리 자리에 있는 제갈량 밑에서 일하는 강유 장군의 여동생 설이의 삶에 덧씌워졌다.
때는 삼국시대, 전란의 시대여서 설이가 된 서연은 오라버니 강유를 따라 병영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제갈량을 만났고, 설이가 가진 수학적 지식을 눈여겨 본 제갈량이 설이에게 국경을 넘어 위나라의 영역 안에 있는 북해에 가서 유휘를 데려오라는 임무를 맡기면서 여정이 시작된다.

유휘는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학 내용이 집대성되어 있는 <구장산술>을 어린 나이에 통달하여 열아홉 설이 또래의 나이에 주해본까지 쓰고 있을 정도로 수학에 능통한 자로,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제갈량이 그를 촉한 관리들의 교육자로 모셔오려는 것이었다.

전시에 국경을 넘어 위나라 영역으로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제갈량의 계책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었으면 좋으련만 설이는 위나라 병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유휘를 찾아가는 여정 중 남루한 행색을 한 남자 하나를 만나는데, 그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지 유휘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소설을 읽다보면 책장이 그냥 휘리릭 넘어가버린다.

내가 앞서 말했다시피 이 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거의 히파티아 때문이었으므로 유휘 편은 그렇게 기대를 안 했었는데 유휘 편이 재미있어서 <매스매틱스> 시리즈는 앞으로 계속 읽게 되겠구나 했다.

소설은 궁금증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재미만 잡은 것이 아니라, 수학적인 면에도 충실해서 (옛날에는 동양이 서양을 앞섰다더니) 유휘 편을 읽으면 동양의 수학 또한 동시대 서양의 수학보다 앞서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수학적 무지 때문에 관리들에게 고혈이 짜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수학 교육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구고현의 정리처럼 동양 수학과 내가 학교에서 배워서 익숙한 서양 수학이 서로 같은 면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고 말이다.


“(...) 토지를 구획하든 물건을 나누든 거대한 건설 작업을 하든 곡물을 교환하든 그 어느 것 하나도 수학적인 사고 없이는 결코 합리적일 수 없어요. 왜 나날이 배고픈 백성의 수가 늘어날까요? 전란의 시대라서?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배부른 관리의 수도 똑같이 줄어들어야 맞는 거겠죠. 그런데 오히려 그런 관리들은 더 많아지고 있어요.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리 풍요의 시대가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일단 그 즐거움은 둘째 치더라도 끊임없이 수학과 마주해야 하죠.”

p.86-87


바른 성품과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설이를 누나라 부르며 따르는 귀여운 유휘, 그리고 유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남자와 설이, 이렇게 수학으로 이어진 셋의 관계성이 좋아서 서연이 지금의 삶을 떠나 또다른 삶에 씌워지기 전에 찾아오는 증상인 두통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속으로 이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생각했다.
고작 110여 페이지만에 등장인물들에게 정이 들었는지, 히파티아 편 때문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히파티아 편을 앞두고 유휘 편을 계속 읽었으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글은 잘 써지니?”
“하아. 그게요, 누나. 제 성씨가 세운 나라에서 막상 귀빈 대접받을 생각을 하니까 집중이 잘 안 돼요. 어쩌죠?”
“후훗. 머리에 든 지식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직 영락없는 애네.”
“에이, 누님. 말은 바로 해야죠! 제가 애인 게 아니라 누나가 너무 애늙은이인...”
찰싹!
나는 유휘의 등짝을 시원하게 한 대 때렸다. 아무래도 한 대로는 모자라려나?
“아악! 미안, 미안! 누나 때리지 말아요! 글씨 망가져요! 아야!”

p.89-90


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찾아오고, 주인공 서연은 설이의 삶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사라의 삶에 덧씌워져 알렉산드리아 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눈을 떴다.
유휘 편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히파티아 편은 처음부터 내 정신을 빼놓았는데, 유휘 편에서 나왔던 미스테리한 인물을 이번에는 서연이 놓치지 않고 딱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서연이 내내 애타게 찾던 ‘그’(내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서연도 이름을 알지 못해 ‘그’라고 부른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흥미진진해졌다.


“거기 서! 너! 혹시 ‘그’와도 연관이 있는 거야?”
“뭐?”
“‘그’도 너랑 똑같아!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다른 건 다 기억나도 도저히 이름만은 기억이 나지 않아! 마치 애초부터 이름이 없었던 것처럼. 꼭 너와 같이!”

p.137


사라의 삶에 덧씌워진 서연은 알렉산드리아 대학 최고의 수학 권위자이자 사라가 듣는 기하학 수업 담당 교수인 히파티아의 눈에 들어 히파티아의 곁에서 신임받는 조교로 일하며 수학을 배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첫만남임에도 마치 사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아손을 만나게 되고, 강경한 기독교 근본주의자 키릴로스 대주교는 히파티아를 압박해오는데...

<매스매틱스>를 읽다보면 서연이 왜 그리고 어떻게 시대를 넘나들며 다른 사람의 삶에 덧씌워지는 것인지나 서연이 그리워하는 ‘그’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히파티아 편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또 흥미롭게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더는 넘길 수 있는 책장이 없어지자 다음 권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수학자를 비롯한 등장인물과 수학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유휘 편과 히파티아 편 각각 소설을 끝맺은 뒤 주요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 그리고 소설에 등장한 수학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다루는 부분이 있는 것이 좋았다.
또 수학을 다루는 소설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가 속도감 있고 흥미로워서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읽었고, 수학적인 면도 고등수학정도를 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며 뒤에 소설에 나오는 수학을 모아서 소개하는 부분도 참고하니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 <매스매틱스 2>를 반도 읽기 전에 내가 왜 <매스매틱스 1>을 놓쳤을까 싶었고, <매스매틱스 2>를 다 읽고나니 <매스매틱스 3>가 기다려졌다.
이렇게 내가 챙겨봐야 할 시리즈가 하나 더 생겼는데, 일단 아직 읽지 못한 <매스매틱스 1>이 다음 권이 출간될 때까지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줄 테지만 역시 금방 읽어버릴 것 같으므로 작가와 출판사는 조속히 <매스매틱스 3>을 출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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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강아지 이 음식 먹여도 될까요? - 반려견 맞춤 식재료 바이블
박은정.유승선 지음 / 길벗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먹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치 않는 선에서) 강아지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양한 맛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 먹거리에 신경을 쓰고있다.

그래서 사료를 먹이고는 있지만 우리 강아지의 식사 반 이상은 자연식(화식)이며 간식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준비하기 때문에 강아지가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는 하는데,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검색 결과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동물병원이나 강아지 간식 업체 같은 곳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내가 검색한 음식을 강아지가 먹어도 되는지 알려주는 글을 올린 것을 점차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그렇게 검색해서 섭취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어서 영어로 구글링을 하기도 했다.

강아지가 한 가족으로 자리하는 지금은 나처럼 강아지 먹거리에 신경쓰고 직접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강아지가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 줄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 <선생님, 우리 강아지 이 음식 먹여도 될까요?>의 가장 큰 특징은 반려견을 위한 식재료에 대해서 반려동물의 영양을 관리하는 펫 영양사와 한의사, 이 두 전문가의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한의학의 조합은 낯설 수도 있을 테다.
나도 오래 전에 잘 걷지 못한 강아지를 데리고 침을 맞으러 다니며 지극정성으로 돌본 결과 많이 회복되었다는 일화를 보고 한방치료를 진행하는 동물병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동물에게 먹일 수 있는 한약재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해서 신선했는데, 이런 동물 관련 한의학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이 책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요소가 되었다.


반려동물에 왜 한의학 얘기가 나올까,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동물병원이 없던 옛날에도 사람들은 동물을 키웠고, 당연히 키우는 동물이 병에 걸리면 치료하거나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병원도 의사도 없으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나 음식으로 병을 치료한 것이지요. 모든 동물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동물은 몸이 아프면 스스로 특정 약초를 찾아 먹어 자가 치료하는 일도 있습니다. (...)

실제로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수의사 2675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 수의사 중 약 4분의 3이 동물 치료를 위한 여러 영역에서 한방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답니다. 그만큼 한의학이 반려동물들의 치료와 건강에 새롭고 효과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의미지요.

p.29


펫 영양사의 말에 따르면 화식, 가열식이라고도 불리는 자연식의 장점으로는 반려견에게 포만감을 주며 소화 흡수력이 빠르고, 원재료 자체의 수분 덕분에 수분 공급이 원활해지고(음수량은 건강에 중요하지만 물을 잘 마시지 않아 따로 챙겨줘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식을 먹이면 건사료를 먹였을 때와 소변량이 달라지는 보인다), 원재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안전하고 신선하며, 반려견이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고,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을 낮춰주며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자연 치유력도 생기게 된다는 것들이 있다.

<선생님, 우리 강아지 이 음식 먹여도 될까요?>의 본문은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식재료가 나오기에 앞서 반려견의 건강과 영양에 대해 다루며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반려견의 생애주기에 따른 먹이 조절, 중요한 영양소, 건강 상태에 따라 보충해줘야 하는 영양소와 식재료, 주의가 필요한 식재료, 대변상태로 알아보는 건강 상태(동물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변 상태 확인은 중요하고 또 많은 도움이 된다), 각 장기가 나빠지면 생기는 증상, 반려견에게 한방 천연물(한방 재료)을 활용하는 법, 한의학 용어, 한의학적 관점의 반려견 건강 상태 체크리스트와 건강 상태별 추천 식품, 혈자리 마사지... 이러한 유용한 정보를 간단하게 다룬것이다.

2장은 이 책의 주요리라고 할 수 있는 장으로, 반려견 영양 식재료 100가지를 소개하는데, 채소류 / 생선류 / 알류 / 고기류 / 유지류(유제품과 기름) / 해조류 /버섯류 / 곡류 / 콩류 / 과일류 / 천연물(인삼이나 오미자 같은 한방재료) 이렇게 분류해서 색깔별로 필요한 식재료를 찾기 쉽게 한 것이 편했다.

그런데 잠깐! 이 책에 수록된 식재료라고 무턱대고 먹여서는 안 된다.
2장에서는 각 식재료의 영양 성분과 효능뿐만 아니라 각 식재료를 적절한 때에 가장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맛과 성질, 재료 고르는 법과 음식 궁합도 알려주며, 무엇보다 식재료를 섭취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적어두었으니 꼭 읽어보고 강아지에게 급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버섯류는 반드시 가열해서 먹여야 하며 의이인(율무)는 변비가 있는 반려견은 주의하고 임신한 경우에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래에 위치한, 각 식재료에 대한 펫 영양사와 한의사 두 전문가의 의견이 식재료의 이해를 돕는다.

2장에 있는 100가지 식재료만 잘 활용해도 강아지에게 다양한 맛을 선사할 수 있을 텐데, 100가지 식재료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독자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군더더기 없이 핵심 정보만을 전달하며 내부 디자인과 편집에도 신경을 쓴 것이 느껴졌다. (이는 1장을 읽으면서도 느꼈다)

3장에서는 반려동물 특식 레시피 40가지를 볼 수 있다.
이 레시피들은 주식이 아닌 특식으로 주 1회 제공을 권장하는데, 각각 관절, 근육 / 체중 조절 / 면역력 / 구강 건강 / 피부 관리 / 모질 관리 / 장 건강 / 위 건강 / 안구 건강 / 호흡기 관리 / 생리, 출산 등 어디에 좋은 요리인지에 따라 분류되었으며 효과를 상승시키는 한방재료가 함께 소개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효과 상승 한방재료는 극소량만 사용해야 하고 넣지 않아도 된다)

3장의 레시피로 요리를 할 때 2장에 수록된 다양한 식재료 중 비슷한 다른 재료로 대체해서 요리하면 같은 레시피여도 또다른 영양소와 맛을 가진 요리가 탄생할 테니 그렇게 응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사료는 강아지 체중과 활동량별로 얼마만큼먹이면 되는지 적혀있지만 자연식의 경우에는 요리마다 얼마만큼 줘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신경 쓰이는데, 책의 앞쪽에 우리 강아지가 하루에 몇 칼로리를 섭취하면 되는지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식재료별로 칼로리가 적혀 있으니 이것을 활용하면 된다.

3장의 레시피는 9세 이상 노령견(5kg)이나 중형견(9kg)을 기준으로 한 재료양이 함께 기재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일부일 뿐이고, 기본적으로 5kg 소형견 기준으로 해서 재료를 얼마 만큼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궁금한 점이 참 많았지만 먹는 행위는 매일 하고 또 먹은 것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생각에 강아지가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찾아본 적은 특히나 많았는데, 나처럼 “우리 강아지 이 음식 먹여도 될까요?”라고 물어보고 싶어던 적이 많았던 독자에게 이 책은 24시간 집에 상주하며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해줄 든든한 전문가가 되어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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