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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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최근 문학계를 휩쓸고 있는 SF 열풍이 어린이 문학에도 역시 불고 있어요.

여러 좋은 어린이 문학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우주, 우주인, 사이보그, 지구 멸망 등의 SF 소재를 빌려

진정한 휴머니즘을 빼어나게 그린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에요.

<반짝이는 별먼지>

머나먼 우주에 닿듯이, 우주보다 어쩌면 더 멀지도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 가 닿는 것,

<타보타의 아이들>

인간의 모습을 학습한 로봇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마음까지 학습하여 새 생명을 키워내는 것,

<달로 가는 길>

인간이든, 로봇이든 소멸의 시간이 오는 것은 필연이라는 것,

<들어오지 마시오>

작은 생명을 구하려는 착한 지구 아이와 익살스러운 외계 종족의 동행,

<지나 3.0>

인간의 마음이 인간됨을 의미하는가, 육체가 인간됨을 의미하는가,

하는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들입니다.

신비로운 소재와 단정하고 간결한 글솜씨, 따뜻한 파스텔톤의 삽화가 한데 어우러진

어린이 문학의 양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네 번째 <들어오지 마시오>였어요.

어린 길고양이를 지키려고 반 아이들의 괴롭힘에도 꿋꿋이 버티는 착한 아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겨서 읽으며 웃음이 비어져 나오게 하는 무아무아족의 콜라보로

길고양이는 아름다운 오드아이를 얻었고

착한 아이는 길고양이의 친구가 되었어요.

무아무아족은 언어의 경제성을 극대화하여

모든 의사 소통을 '무아무아'라는 말로 할 수 있어요.

정말 기가 막힌 상상력 아닌가요?

무아무아족이 정말 있으면 좋겠어요. 만나보고 싶어요.

곤경에 처해 간절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최소한 한 번쯤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게 길고양이든 못된 아이든. (114쪽)

주인공 현우가 무아무아족이 달라붙어 발버둥치다가 차에 치이기 일보직전인

괴롭힘의 주동자 지호를 향해 하는 생각입니다.

어른인데도 마음이 찡하고 눈물이 왈칵했지 뭐예요.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던 어른들은 감시카메라에 기록된 현우의 착한 마음을 모두 알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공상과학으로만 그렸던 AI(인공지능)이 우리 눈앞에 실현되고 있는 지금,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SF 작품이 나오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다움의 미덕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빌려

인간 아닌 존재가 연출해내는 진정한 인간성의 미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내면의 휴머니즘의 씨앗이 소멸되기 전에

'보보'라는 작은 생명체를 키워 꽃피워낸 로봇 티티처럼

우리도 다시 인간성을 꽃피워내면 좋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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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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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최인호 작가님의 자전적 소설 같은 에세이집을 읽었습니다.

살아생전에, 대중문학, 지극히 대중적인 문학이라는 비판도 받으셨다고 하는데

한국 문학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를 문학의 형식을 빌어 역사 사료로 남겨두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한 획을 그은 작가님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에세이집에는 인간적인 작가님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는데요.

1990년대 중후반, X 세대라 불렸던 저희 세대에 한번 유행했고

최근 묘하게 선풍적인 인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시 유행하는

MBTI 유형을 상상해 보건대, ENFJ나 ENFP 같은 유형이 아니셨을까 싶어요.

어디까지나 "감"에 의한 것이지만,

천성 자체가 밝고 명랑하시고 성격이 살짝 급해보이면서도

사람을 깊이 관찰하고 애정이 넘치는 분 같았어요.

J인가 P인가는 확실히 모르겠는데 내용을 보니 아마 집필 의뢰가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하루에 거의 A4 3장 분량을 쓰셨던 것 같더라고요.

영어 단어 외우는 빽빽이도 아니고 글을 A4 3장을 날마다 채운다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걸 J 같은 타입이셔서 하셨는지 P이신데 상황에 떠밀려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렇게 하셨더라고요.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님의 인생 찬가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사모님을 너무나 뵙고 싶더라고요.

"누나, 집사람이 아침마다 내가 아파트에서 벌판을 가로지를 때까지 손을 흔들어요."

"경사 났구나."

"그것도 빠이빠이 하는 게 아니라 컴 온 컴 온 하는 식으로 손을 흔들어요."

"열녀 났구나."

...

아들 녀석을 장가보내고 아내와 단둘이 남게 된 요즘 나는 아내에게서 옛날과 같은

애틋한 작별인사를 받고 싶다.

왜냐하면 작별인사를 나눌 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무사히 일을 끝내고 어서 돌아오라고 독특한 손짓을 하던 아내여,

언젠가는 그대가 돌아오라는 작별인사를 한다 하더라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일이 머지 않았으므로

내가 아파트 복도를 지날 때까지만이라도 문밖에서 나를 지켜봐주구려.

(124~126쪽 발췌)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고 소녀처럼 순수하신 분 같아요.

손을 옆으로 흔들어 빠이빠이 하면 헤어지는 인사 같으니,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빨리 와 하는 식으로 인사하셨다는 일화에

최인호 작가님은 문자로 글을 쓰셨고

사모님은 인생으로 글을 쓰셨구나,

작가님의 영원한 창작과 열정의 원천, 작가님의 뮤즈셨구나 싶더라고요.

요즘에는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끼는 장년, 아니 청년에 가깝게 인식이 되는데

작가님이 연세가 드시고 자녀들이 장성하여 둥지를 떠나 빈둥지가 된 삶에 대해 많이 쓰셨어요.

인생을 한탄하고 세상을 비판하고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노래하고 인생에 찬사를 보내는 글로 독자의 마음을 환히 밝혀주시네요.

개인적으로 너무 현학적이고 머릿속에서 사고 실험을 하는 것처럼 사변적인 글,

미사여구가 휘황찬란하여 자신의 어휘력을 자랑하는 듯한 글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개그 본능을 발휘하여 막 웃어줘야 하는 마음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글도 좋아하지 않는데

작가님 자신의 천성이 밝고 재미있으시다 보니 큭큭 웃고 있다가 또 찡해서 울다가 그랬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옛날의 선비들은 꽃이 피면 꽃잎에 사연을 적고

가을이 오면 편지 속에 낙엽을 동봉해서 화신을 보내곤 하였다.

편지야말로 워싱턴우체국에 새겨진 명문처럼

지친 우리들을 달래주는 위로자이자 감미로운 사탕이며 칭찬이 아닐 것인가.

한 잔의 커피보다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격무에 지친 내 아들의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영양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5쪽)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오고가지 않는 마음,

내 쪽에서 애써 노력해야 유지되는 관계에 지쳐

어느 순간 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차가운, 어찌 보며 쿨한 사람이 되었어요.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마음,

다가오는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나누고

그러다 멀어지면 그런가 보다, 사는 게 원래 그런가 보다 싶더라고요.

최인호 작가님이 문자메시지라는 신문물을 접하시고

지인분들께 문자 편지를 많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올 가을, 최인호 작가님이 시원시원, 서글서글한 문장,

따뜻하고 환희에 넘치는 인생 찬가 속에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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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
로절린드 스톱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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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으로 연대하고 살인으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 70대 할머니들의 성장소설이자 혈육이 아닌 마음으로 연결된 가족소설이에요. 개성 있는 캐릭터가 인상적이고 나쁜 무리에게 쫓기는 듯한 심장 두근거리는 스릴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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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
로절린드 스톱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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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인을 결심한 건 그를 알게 된 지 이틀 만이었다."(9쪽)

소설은 이렇게 파격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함께 필라테스를 다니며 알게 된, 그리 교류가 깊지 않은 세 할머니가 차를 마시고 있던 카페에 행색이 초라하고 위급해 보이는 한 소녀가 달려와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독자를 단번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소설 기법으로 예전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요즘 특히 등장인물들의 관점(POV:Point of View)으로 다양한 앵글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이런 형식이 유행인 것 같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각자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따라 가며 이해하기가 쉽고 저자 입장에서는 잘만 활용하면 서술 트릭(저자와 독자의 정보 불균형을 이용한 트릭)을 구사할 수도 있으니 양쪽에 나쁘지 않은 기법인 듯합니다. 저는 대단히 선호하는 편이고 재미있게 읽은 영어 원서들 중 여러 권이 이런 형식이었어요.

이 소설에서는 메그, 대프니, 그레이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소녀 니나 이렇게 네 명의 관점으로 서술됩니다. 이들의 공동의 적은 인신매매와 매춘 알선, 폭력을 일삼는 두꺼비 같은 남자 팻이에요. 책의 뒷날개에 소개된 인물은 아래와 같습니다.

Beginner 1 메그

자기 그림자에도 놀라는 심약한 성격.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는 편. 런던 도심의 멋진 집에 살지만 왠지 시골 할머니 분위기를 풍김. 오랜 세월 자신을 학대한 남편이 마침내 죽었으나 여전히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고 있음

Beginner 2 대프니

컬러풀한 패션감각의 소유자. 다양한 걱정 전문가. 화려한 외양에 비해 소심하게 웃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예의를 지킴. 아시아인 모친과 백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

Beginner 3 그레이스

매사에 확실하고 자신감이 넘침. 고향 자메이카를 떠나 런던에 와서 교사로 일했음. 웃음소리가 호탕함. 교사 시절에 자신이 한 학생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늘 괴로워함.

The Target 두꺼비 남자

어린 여자들을 납치해 온갖 악생을 저지르는 죽어 마땅한 인간. 평범한 세 할머니가 살인 결심을 하게 될 정도로 아주 악질이며 무자비함

세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는 소개를 보고 몇 년 전에 나왔던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주인공인 유쾌하고 즐거운 코지 미스터리의 진수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를 생각하며 당장 끌리기도 했고, 영국의 권위있는 미스터리상인 골드대거상 2022년 후보작이기도 하여 무척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코지 미스터리로 분류하거나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분류하기보다는 그 형식을 띤 페미니즘 소설, 혹은 노년여성들의 성장과 연대에 관한 서사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뒷부분에서 심장이 살짝 쫄깃해지는 면에서 스릴러 소설의 요소도 살짝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씁쓸하고 심각한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세 할머니가 여태까지 삶을 꾸려온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오는 그 모습이 인간은 언제까지나 성장할 수 있다는 찡한 감동도 줍니다.

각 등장인물의 관점으로 장을 구성하며 현재 사건의 진행과 함께 70평생을 살아온 각 사람의 속마음을 많이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런던 중심부에서 필라테스를 즐기는 유복하고 우아해 보이는 부인들이지만, 각자 기구하고 박복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메그는 남편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남편이 죽은 후에도 남편의 눈과 입을 늘 의식하기도 하고, 대프니는 대학 때 남들이 다 선망하고 동경하는 멋진 남자의 구애를 받았지만, 그 진실은 거의 매춘부로 취급하고 성병을 옮아 평생 아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레이스는 가장 현실적이고 똑똑해보이지만, 딸을 자메이카에 두고 돈을 벌러 왔다가 병으로 딸을 잃기도 했고 교사 시절 참사가 벌어질 강한 예감을 가지고도 막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었지. 지금이야 그 인간이 수차례 나쁜 짓을 하고 다녔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잘 몰랐어. 좋은 점만 보려고 했지. 어머니에게 매주 일요일마다 전화를 건다거나, 언젠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줬다거나, 그런 것들... 그후 깨달았지. ... 사람들에겐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심지어 나쁜 사람에게도 말이야." (200쪽)

이런 그들에게 누가 봐도 성 착취를 당하고 있는 어린 소녀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 숨이 넘어갈 듯한 다급한 모습으로 카페로 뛰어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딸이라며 찾는 불쾌한 남성. 70평생을 살아온 이들은 이것만으로도 일목요연하게 상황을 짐작합니다. 자신들의 불행했던 삶을 소녀에게 투사한 걸까요? 또 잘은 모르지만, 동류라는 것이 느껴지는 서로서로에게 연대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이들은 진짜로 가족처럼 두꺼비 남자에게 쫓기는 니나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아끼지 않습니다. 마치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사명인 것처럼요. 하지만 이들은 책의 제목처럼 초보자입니다. 그리고 나름 고용한다고 고용한 청부 살인업자들도 어째 미덥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정의의 신이 이들의 선량함과 의로움의 편을 들어준 걸까요? 공공의 적인 두꺼비 남자를 처치하고 니나, 그리고 니나와 함께 매음굴에 있었던 니나 친구 로니를 구해냅니다.

이 과정에서 세 할머니는 여태까지 자신이 알던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신선함을 느낍니다. 그야말로 알을 깨고 나오는 듯한 통쾌한 모습이죠.

여성이 억압받던 시절의 이들의 모습이 마음에 얼얼하게 남기도 했고 아주 조금만 유머로 양념을 쳐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상처입은 작은 새 같지만 내면은 다부지고 총명한 소녀 니나를 통해 이들이 연대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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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시간의 법정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천감재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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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다운 법적 논리와 짜임새 있고 탄탄한 구성, 깔끔한 문제 해결과 함께 SF적인 타임슬립의 조화가 절묘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심판자의 자리에 서야 하는 진지한 고뇌와 문제의식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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