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분
쑤퉁 지음, 전수정 옮김 / 아고라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기수이자 그 중심에 서 있는 작가 '쑤퉁'이 펼쳐낸 장편소설 '홍분'은 그 제목의 의미처럼 봄처녀가 봄내음을 물씬 풍기는 듯하다. 마치 여성 특유의 분내음으로 마음껏 치장한 이 이야기에는 바로 '여자'들의 삶과 인생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서 담고 있다. 분명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려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섬세하면서도 우아함을, 때로는 질퍽하면서도 깔끄장한 잔인함까지 드러내며 여주인공들을 동전의 양면처럼 담백하게 생생히 그려낸다. 그렇기에 쑤퉁을 여성 소설의 대표 작가라 손꼽기도 하는데, <이혼 지침서>에서 나온 '처첩성군'의 이야기도 그렇고, 여기 <홍분>에서 그려낸 3편의 단편도 바로 '여자'들의 이야기다. 과연 그녀들의 일상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냈는지 잠깐 정리해 보자.



1편 '부녀 생활'은 얼추 제목만 보고선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바로 여자의 3대 이야기인데, 여기서 말하는 '부녀'는 그 부녀가 아닌 한자어로 이 '婦女', 즉 부인과 여자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여성을 뜻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 이야기가 딱 들어 맞는다. 바로 '씨엔의 이야기'와 '즈의 이야기' 그리고 '씨아오의 이야기'까지,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여자들의 3대 이야기다. 그렇다면 장편으로 다뤄도 부족한 여인네들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여기선 100여 페이지에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담백하게 담겨 있다. 1930년대 영화배우로 활약할 기회를 놓친 18세의 '씨엔'이 영화사 멍사장에게 이용당하고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면서 이들의 인생은 시작된다. 그 애가 바로 '즈'였고, 즈는 그런 엄마 씨엔을 무척 싫어했다. 그러면서 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저우지에'와 결혼을 했지만 평탄지 못한 신혼살림에 힘들어하며 우울증까지 걸린다. 데려다 키운 양녀 '씨아오'는 그런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샤오우'와 결혼해 산다. 하지만 그녀 또한 삶이 순탄치 않고 매 일상이 불안하고 짜증의 연속이다. 이들 삼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여자의 운명이 생명의 잉태라면 씨엔도 그렇게 그려진다.

3편의 여자들 이야기, 덧칠하지 않고 일상과 인생을 담백하게 그려내다.

2편 '홍분'여기 표제어와 같은 제목의 이야기다. 바로 여성들의 치장한 맵시나 그 자태를 일컫듯이 바로 1950년대 기녀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대약진운동'이라는 위명하에 노동력 착취와 정신개조가 한창이던 그 시절 중국의 이야기로, 여기 기녀들은 성병을 검사한다는 명목하에 단체로 끌려갔다가 강제적으로 노동 훈련을 하게 된다. 그 중심에 있던 기녀 둘은 바로 '치우이' '샤오어', 하지만 치우이는 그 현장에서 도망쳐 도피생활을 하면서 '라오푸'와 부부행세를 하다가 때려치고 절간에 들어가 비구니가 된다. 그리고 노동 훈련소에 마대 만드는 일로 허송세월했던 샤오어는 그 어려운 노동을 간신히 버텨내고 지낸다. 그리고 그런 정신개조가 모두 끝났을 때 사회로 나온 그녀가 이번엔 라오푸와 결혼을 하게 된다. 지주 계급으로 몰려 한순간에 몰락한 라오푸 집안에서는 어디서 창녀를 끌어들여 결혼하느냐고 난리지만, 이들은 굴하지 않고 결혼해 산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요 어려워진 살림에 남편 라오푸가 회사 돈을 횡령해 쓰다가 총살 당하고, 샤오어마저 떠나면서 그들에게 남겨진 아이는 치우이가 키우며 갈무리된다. 물론 그 아이는 치우이를 엄마라 부른다.

3편 '또 다른 부녀생활' 편은 앞선 1편과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인데, 여기는 3대가 아닌 바로 '자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찌엔샤오쩐' '찌엔쌰오펀'으로 불리는 '찌엔'자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이 두 자매는 힘들게 살지만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녀들 아버지가 일궈낸 간장 가게가 국영으로 넘어갔지만 그 가게 2층에서 살아온 거. 그러면서 간장 가게에서 일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들 나이가 솔찮이 된 아줌씨들도 '리메이씨엔', '항쑤어위', '꾸야시엔'까지 이들 셋은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등 제대로다. 특히 항쑤어위가 공격 대상이 되는데, 그녀의 화냥년 기질이 결국 화근이 돼 남편 송씨에게 죽는 참극이 벌어진다. 한편 찌엔 자매는 아래 간장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무관하게 '방콕' 인생처럼 사는데, 특히 동생인 샤오펀은 여리고 남자도 모르는 쑥맥으로 나와 까칠한 언니 샤오쩐에게 매 혼나기 일쑤다. 이 집안 내력이 그렇기 때문인데, 하지만 샤오펀은 꾸야시엔이 중매로 소개해 준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고, 이를 못마땅해하며 점점 정신병을 앓더니 언니 샤오쩐은 그로테스크하게 2층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여기 세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여성들 즉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그렇기에 은근히 따스한 시선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여기 이야기는 소위 뷰피풀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질퍽한 것도 아니다. 1편의 부녀생활을 보듯 여성 3대의 이야기지만, 이들 여자는 서로 보듬고 도와주는 존재가 아닌, 서로가 걸리적거리는 존재로써 대한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영위해 나가는데만 신경을 쓴다. 하지만 2편 '홍분'은 두 기녀를 통해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그런 관계 설정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면서 한 남자를 두고 결혼까지 한 그녀들의 상황을 묘사하며 사회적인 약자로 내몰린 여자들을 그려낸다. 3편은 피는 같지만 성정이 전혀 다른 두 자매와 그런 자매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간장 가게 세 아줌마의 반목을 통해서 여자들의 일상을 담백하게 다루고 있다.

이렇듯 간단히 보더라도 여기 3편의 이야기들은 그 제목의 의미처럼 여성 소설로 대표되지만 여기 이야기 속 여성들은 그렇게 착하거나 가슴을 울리듯 따스하지는 않다. 매우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편협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천박하기도 한 모습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면서 여기 이야기 속 여주인공들은 휘두를 만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분위기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몰리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천생의 약자들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쑤퉁'의 '홍분'은 꽤 와닿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마치 공주병에 빠진 듯한 환상의 이야기가 아닌 결코 우호적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반감은 물론, 결국 그것을 극복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허위허위대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서 그 지점에서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과 인생을 만나게 된다. 비록 아름답지는 않지만, 죽지 못해 사는 여인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다. 역시 쑤퉁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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