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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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쑤퉁'은 국내에 10여 종의 소설들을 쏟아내며 나름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다. 그와 함께 중국문학의 기수로 꼽는 작가 '위화'는 굵직한 작품들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로 대표된다면, 여기 쑤퉁은 그 스펙트럼이 다소 넓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사소설부터 해서 섬세한 필치로 그린 여자의 이야기, 가열하고 비루하고 잔혹한 가족사, 그리고 그 시절의 청춘 이야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레시피를 얹어 놓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다. 그리고 이번에 접하게 된 쑤퉁의 작품은 바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쓰린 유년시절을 떠올리듯, 우리시대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성북지대> 소설이다. 그런데 이 청춘의 이야기가 그냥 교과서적인 룰을 따르는 게 아닌, 이야기의 파괴성을 보듯 청춘들의 잔혹사를 그리며 읽은 이로 하여금 또 다른 기분이 괴어오르게 했다. 과연 성북지대에 올망졸망 모여사는 인간 군상들, 특히 여기 청춘들의 가열했던 봄날은 어떠했는지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먼저 제목 '성북지대'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중국 강남 유역의 작은 도시 한구석, 전작과 같이 '참죽나무길'이 있는 그곳의 하늘엔 잔뜩 화학 공장의 매연으로 휘감은 듯 도시를 감싸고 있지만, 그 특유한 향을 머금은 공기가 지배하며 올망졸망하게 모여사는 작은 소도시다. 그리고 이곳에도 어김없이 인간 군상들이 있다. 특히 책 표지에 나와 있듯이 네 명의 10대 소년들이 주인공이다. 먼저, '리다성'은 자신이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는 바람에 아비를 교통사로 잃고서 엄마 '텅펑'과 살고 있는 소년 가장, 아니 무람없이 가오만 잡고 사는 못 된 녀석이다. 그리고 '선쉬더'는 엄마 '쑤메이'와 아빠 '선팅팡'과 그럭저럭 사는 녀석이고, '장홍치'는 엄마 '쑨위주'와 사는데, 이 녀석이 한 여자애를 강간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닉네임 '쩔룩이'라 불리는 녀석은 아비 '왕더우'의 나름 총애를 받으며 나중에 이 소설 속에서 제일 잘 풀린 케이스의 인물이다. 이렇게 이들은 성북지대에서 잘 나가는 소위 '껌 좀 씹어봤다'는 '나쁜 녀석들' 4인방이다.

'나쁜 녀석들' 4인방의 청춘잔혹사 <성북지대>, 쑤퉁 최고의 청춘소설

그렇다면 이들의 일상은 어떨까? 그전에 이 녀석들은 10대 중반에서 후반을 넘어가는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앞만 보고 질주하는 망아치처럼 천방지축 무람없이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요, 모두 다 학교에서 제적을 당할 정도로 그들에게 공부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렇기에 여기선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일체 없다. 해뜨고 해가 질때까지 그냥 동네를 싸돌아 다니면서 작당이나 하는 그런 부류들이다. 그러니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도 애가 타면서도 그들 나름대로 생활전선에 있다보니 이들은 방치된 채,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하릴없이 성북지대를 거닌다. 그러다 큰 사고가 터진다. 홍치 녀석이 낚시꾼골목에 같이 사는 '메이치'라는 소녀를 강간한 거.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욕정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욕보인 것이다. 바로 동네는 난리가 났다.

당장 홍치의 엄마 쑨위주는 아들 구명에 나서고, 메이치의 엄마 정웨칭은 이런 사태에 너무나 당황해 이 동네를 떠나려 애쓴다. 그러는 사이, 착하고 가녀린 소녀 메이치는 이런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강물에 투신해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원귀가 돼 여기 성북지대를 유령처럼 떠돌게 된다. 홍치는 이미 교도소에 들어가 있지만, 마을 사람들 눈에 가끔 그리고 여기 소년들과 엄마들 눈에 가끔씩 나타나 원혼을 달래려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홍치가 강간 사건으로 쇠고랑을 찬 사이, 선쉬더는 같은 유리공장에 다니는 젊은 유부녀 진란과 바람을 피고, 심지어 쉬더의 아비 팅팡까지 그 여자를 탐한다. 이를 알게 된 쉬더가 다성이랑 눈에 쌍심지를 키고 칼을 들고 나서며 두 연놈을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소위 지애비도 필요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두 부자가 한 여자를 놓고 거시기한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이에 부인 쑤메이는 창피해서 얼굴을 못들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결국 아비가 죄값으로 사상교육대에 보내지게 된다. 쉬더는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젊음이 좋긴 좋은가 보다.

이후에 사건은 계속된다. 주인공 격인 리다성이 '돌아온 탕아'를 꿈꾸며 나름 무술 연마를 위해서 고수를 찾아다니고, 엄마 텅펑의 아버지인 뱀꾼 텅원장이 20여 년만에 딸을 찾아왔지만, 그는 소싯적 딸을 버렸다는 원죄로 문전박대를 당해 추운 겨울 다리 밑에서 동사하고 만다. 죽은 뒤 후회막급에 한움큼의 눈물을 쏟아낸 텅펑, 하지만 다성은 그 어떤 감정도 없다. 그냥 죽었구나다. 한편 쉬더와 팅팡 두 부자가 진란과 불륜질한 게, 항상 깔끄장했던 쑤메이는 목욕탕에서 진란을 개패듯 패주며 화풀이를 한다.

그리고 여기 네 명의 멤버 중에 쩔룩이는 문제아 대표로 뽑혀 학교 적응기 교보재 식으로 다시 학교로 복귀했는데, 수업시간에 선생 리팡과 삿대질에 대판 싸우고 다시 쫓겨난다. 그러는 사이 아들 홍치의 구명을 계속 하던 엄마 쑨위주는 이젠 거의 지쳤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법원 앞에서 그만 급사하고 만다. 이 여인네의 죽음을 계기로 성북지대의 사람들은 하나 둘 죽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피부병이 창궐하고, 왕더우의 큰 딸 '진홍'이 밤길에 깡패들에게 맞아 살해되는 등, 이것이 메이치 원혼의 복수라 할 정도로 성북지대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아들과 함께 한 여자와 바람까지 펴 완전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선팅팡은, 아내 쑤메이가 왕더우랑 부절적한 관계임을 의심하다가 어이없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의 거시기를 자해하는 등, 진풍경이 벌어진다. 참 대단한 동네가 아닐 수 없는데, 결국 그 진란이 산달이 다 돼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누구의 씨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네에선 아들 쉬더쪽이라는 분위기에 진란은 그래도 쉬더에게 애정을 쏟는다. 그리고 그녀는 쉬더와 함께 몰래 밤기차를 타고 이 성북지대를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이젠 남겨진 청춘은 두 명 중 하나, 쩔룩이는 학교에서 다시 쫓겨난 뒤 이 마을에서 열심히 폐지 줍는 캉씨를 '군통'(국민당 정부의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 스파이로 잡는 공을 세우며 선진인사로 나름 위명을 떨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다성이는 '돌아온 탕아'를 꿈꿔왔듯 다른 동네 구두장길의 돼지머리파와 그 전설의 17:1 아니.. 10:1 패싸움을 벌이다 장렬히 저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어미 '텅펑'이 아끼던 자명종 시계와 같이 묻히면서. 그리고 텅펑은 아들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오늘 날이면 종이우산을 든 채 거리를 미친년처럼 배회하며 말한다. "이봐요, 우리 집 자명종 못 봤어요? 쇵마오표 자명종인데, 혹시 못 봤나요?"



예의없는 청춘들의 불온한 이야기, 그 시절은 그렇게 쓰리고 그리운 거.

이렇게 이 소설은 어느 것 하나 착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강간, 자살, 자해, 살해, 폭력 등 사회 일면을 장식할 내용들로 여기 네 명의 소년들이 중심이고, 이 예의없는 청춘의 인사들을 화자로 내세우며 가족사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전작에서 읽었던 <쌀>과 <화씨비가>처럼 여기에도 가열한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 거. 그렇기에 중심에 있는 이들 4명은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먼 절대 모범생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채 거리를 배회하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이른바 '나쁜 녀석들'이다. 절제되지 않은 욕정으로 강간을 저지르고, 어미와 아비에게도 욕지거리를 퍼붓고, 무술을 익혀 오로지 짱만 먹겠다는 심산에다, 다 큰 처자와 바람을 피고, 학교 선생에게 대드는 등, 이런 캐릭터는 우리가 보통 TV 뉴스에서나 보는 '막장급 청소년'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쑤퉁은 이들을 통해서 그들의 그런 모습 뒤에 감춰진 이면과 무모하기까지 한 그들의 언행을 통해서 그 어떤 사회적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즉, 막 청춘기에 접어든 이 소년소녀들은 이미 위태롭고 불안하고 불온한 모습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소외되고 방치된 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음을 견지하게 된다. 이것은 1970년대 말 문화대혁명의 풍파를 겪은 지난 세대의 은원이 가시지 않은 듯, 그대로 담아내며 이 예의없는 청춘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직관적으론 '나쁜 녀석들'의 불온한 이야기지만, 절대 이야기는 나쁠 수가 없는 바로 그 시절의 청춘의 현실과 이상, 그 속에서 쑤퉁은 유년시절을 상념하듯 섬세하면서도 잔혹하게 꺼내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이야기는 스스로 말했듯 자전적 소설로써 '쑤퉁 최고의 청춘소설'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대표적 작품이다. 그것은 여기 '성북지대'에서 보여준 이야기들이 누구에게나 한 때 불온했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추억케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춘스케치'라고 다 좋을 순 없는 것이다. 나쁜 것일수록 추억은 오래 가는 법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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