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지침서 (양장)
쑤퉁 지음, 김택규 옮김 / 아고라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는 '위화''쑤퉁', 이 둘은 나이도 비슷하게 60년, 63년생 아직은 40대 후반의 젊은 문인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 선봉파(전위파, 아방가르드파)의 기수로 서구 문학의 자양분을 흡수하고, 중국 전통 문학의 에너지를 되살려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던 이들은, 90년대 이후 상업문학 조류의 발맞춰 작품의 문학성과 대중성을 결합시키는 전향적 작업을 진행시키며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인기 작가들이다. 그래서 중국 현대문학을 접하는 사람치고 '위화'와 '쑤퉁'을 빼놓고는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위치는 현재 철옹성처럼 확고하다.

이에 강호는 '위화'의 중단편집은 물론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인기 작품인 <허삼관 매혈기>, <인생>, <형제>를 접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쑤퉁을 읽고 있다. 첫 번째로 가상의 역사 공간 속에서 소년 제왕 '단백'을 통해서 인생무상을 이야기한 <나, 제왕적 생애>를 끝내고 두 번째로 읽게된 <이혼 지침서>, 이 소설은 장편이 아닌 세 편의 이야기를 모은 중편집이다. 물론 여기 작품들로 쑤퉁의 대표작으로써 아직도 인기가 많은 소설들이다. 과연 이 세 편의 이야기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간단히 정리해 본다.



1. <처첩성군>, 희생된 여인네들 운명에 바치는 조사(弔飼)

배경은 1930-40년대 현대적 결혼 제도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부인 넷을 데리고 사는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중심은 남자가 아닌 그 집의 네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서 살게 된 20살의 젊은 첩 '쑹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즉 네 명의 처첩을 둔 천씨 가문을 무대로 축첩제도의 현실과 그 속에서의 여성의 정체성의 변화를 담아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 네 명의 여인네들의 삶과 운명이 각기 개성을 발휘하며 '보여주기' 식으로 이들의 운명을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비판을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우선, 첫 번째 본부인 '위루'는 이제는 늙은 퇴물이 됐지만 정실의 권위로 젊은 첩들을 호령하려 든다. 그래서 그녀의 장성한 맏아들 '페이푸'는 이런 어머니를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과 연배가 비슷한 '쑹렌'에게 눈이 돌아간다. 

두 번째 부인 '줘윈'은 외면적으로 중후하고 사람좋게 굴지만 그 웃음 속에 칼을 감추며 남편 천춰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셋째 부인 '메이산'은 경극 단원 출신답게 타고난 정열과 자유 분방함의 소유자로 '쑹렌'과 죽이 잘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 '쑹렌'은 한때 대학까지 다닌 '신여성'으로, 천씨네 첩으로 들어와서도 그 상큼하고 풋풋한 기질과 때론 당찬 구석이 많았던 젊은 첩이다. 하지만 위의 부인들과 대면하며 지내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 안의 감춰든 정체성에 변화를 보이며 앙칼진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하고, 위루의 아들 '페이푸'와 친하게 지내며 궁지로 몰리는 등 스스로 운명의 골을 파고 만다. 이렇게 네 명의 여인들이 천씨네 집안에서 살면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자살한 전 부인들의 '우물의 전설'이 장치로 깔려있고, 마지막에 그 우물에서 큰 사건이 일어난다. 과연 '쑹렌'은 어떻게 됐을까? 그 우물 앞에서 그녀들의 운명을 빌 뿐이다.

2. <이혼 지침서>, 현대적 삶의 애환이 담긴 결혼과 이혼에 대한 우화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양보', 부인은 '주윈', 이들 부부는 풍족하지 못하게 다소 구차하게 살며 피폐된 일상에 찌든 모습으로 서로가 데면데면한 상태, 이에 남편 양보는 부인에게 강력히 호소한다. 우리가 이렇게 살 바에는 이혼하자고, 하지만 부인은 요지부동이요, 콧등으로도 듣질 않는다. 도리어 남편을 위협한다. 처가집에 온 남편에게 오빠들을 시켜 이혼 못하도록 몸둥이 찜질을 시키는가 하면, 스스로 창가에 뛰어내려 자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남편 양보는 매번 당하기만 하고 확실하게 이혼을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매 항상 '구역질 나'를 입에 달고 사는 젊은 애인 '위츙'이 있다. 즉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인데, 양보는 그것보다는 우선 현재 부인이 귀찮고, 혐오스럽고, 무섭고, 밉고, 가증스럽기까지 해 도저히 같이 못 산다는 것이다.

이에 부인은 이혼할려면 2만 위엔(한화 250만원)을 요구하는데, 양보는 그래서 소싯적 친구 '다터우'를 찾아가 굴욕적으로 돈을 빌린다. 하지만 이 돈마저도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대학 시절 선배 '라오진'을 찾아가 그가 썼다는 책 '이혼 지침서'로 도움을 받으며 마지막 이혼 도장에 방점을 찍으려 하는데, 어떻게 양보는 자신의 의지대로 이혼을 결행했을까? 아니면 물에 술탄 듯 술에 물 탄듯 행동을 보인 양보는 그대로 살게 될 것인가? 이렇게 이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투영시킨 '현대의 우화'라는 점에서 기실 와 닿는 점이 많다. 여기 주인공 양보는 나약하면서도 여전히 이상주의를 못 버린 지식인으로 나와 세속적인 도덕의 화신인 그의 아내 주윈과 매번 부딪히지만, 그렇다고 그는 아내나 애인에게도 저항할 힘조차 부족해 보인다. 그로 대표되는 값싼 엘리트주의와 나약한 이상주의의 현실을 목도하며 때로는 희극적으로 변모된 그를 통해서 우리네 삶의 오랜된 숙면을 보게 된다.

3. <등불 세 개>, 전쟁통에 한 소년과 소녀의 슬픈 동화 속 소극(笑劇)

위의 두 편이 이야기가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라며 이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같이 소년과 소년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의 분위기적 배경은 가히 동화적이지 않다. 국공내전이 펼쳐지고 있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어느 한 마을에서 소년과 소녀의 짦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 마을 촌장 '러우샹'은 전투를 피해 피난길에 오르기 바쁘다. 동네 사람들을 일일히 챙기는 과정에서 마을의 오리치기 소년 '비엔진'이 보이질 않는다. 자신들도 살아야기에 우선 마을을 떠났지만, 그 마을에는 잃어버린 자신의 오리를 찾겠다고 헤집고 다니는 비엔진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소년은 아픈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기름 등불을 구할려는 소녀 '샤오완'를 만나게 되고, 그 소녀와 만남과 대화 속에서 슬픈 사연을 알게 된다.

즉 그 소녀는 군대로 출병한 아비를 기다리며 배에서 몸져 누원 어머니와 함께 눈에 띄기 위해서 등불을 구한 거. 물고기를 주고 얻은 등불로 불을 밝힌 소녀는 그렇게 아비를 기다리게 되고, 오리 찾아 삼만리를 펼치는 비엔진은 전투 중에 살아남기 위해서 관에도 숨는 등 요리조리 잘도 살아 남는다. 가열하게 피바다로 물들고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서도 그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인데, 그렇다면 그 소녀와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출병했던 아비는 살아서 그들을 만났을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꽤 비극적이다. 전쟁통에 목숨의 운명을 내맡기듯 여기 바보 소년 비엔진은 운좋게도 살아 남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을 살갑게 대해준 소녀가 그리워 강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하지만 전쟁의 불덩어리는 꺼지지 않은 채, 그 비정한 운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몰아치고 있다. 아........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 보았는데, 단편이 아닌 중편의 이야기들은 실로 와 닿는 구석이 많다. 지금은 사라진 우리네 할아버지 때 이전에나 있을 법한 축첩제도를 가열하게 펼쳐낸 <처첩성군>, 그 속에는 여인네들의 희생된 운명에 대해서 비판보다는 관조로 일관하며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 '쑹렌'의 시선을 통해 봉건 대가정의 숨막히는 분위기에 매몰되고 왜곡되고 파괴되는 그녀들을 그저 '보여주며' 그들에게 조사를 바친 작품이다. 그리고 <이혼 지침서>는 결혼과 이혼이라는 우리 일상의 소재이자 삶의 방식을 현대적 우화로 풀어내며, 주인공 남자 '양보'와 부인 '주윈'을 통해서 이상주의와 세속주의로 이원대립화된 현실을 보여줘 우리네 삶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등불 세 개>는 전쟁통에 만난 한 소년과 소녀의 짧은 우정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감상적으로 그리며 슬픈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것은 마치 삶의 비극과 소극의 아슬한 경계를 느끼게 해준 의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왔으니.. 이렇듯 여기 세 편의 이야기는 각각의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강한 이야기자 그만의 문학들이다. 그것은 쑤퉁 스스로 자신을 "기이한 상상으로 가득한 자유로운 나그네"라고 칭했듯이, 그의 이야기 속에는 기발한 발상과 때로는 낯선 이미지가 교차하기도 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분히 문학적이면서도 무언가 삶의 한 단면을 관통하는 그만의 다채로운 세계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다. 쑤퉁, 이제는 읽고 알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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