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껏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며 사는 일에 익숙해서인지 지금 배우며 가르치는 공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으레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만나왔는지도 모른다. 방학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교를 오가며 보충수업을 하느라 한자 그대로의 의미인 방학(放學)을 즐기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교육방송 교재로 문학 수업을 행하며 작품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끌어내 보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교사 일변도의 수업에 익숙한 아이들은 물음을 던지며 답을 요구하는 교사의 태도에 귀찮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만 발문을 통해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을 진행할 때가 많다. 문학 작품을 공부하면서 양념처럼 곁들이는 작가의 일화 속에 빛을 발하는 결정체를 발견하며 그것을 공유할 때마다 심장 박동 소리는 커져만 간다.

 

   어쭙잖은 선생 노릇을 하면서 앎의 욕구는 커졌고 현상 이면의 본질까지 궁구하는 학인으로 돌아가 갈증을 느끼고 있던 사안을 해결하여 갈 때마다 앎의 기쁨은 커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의 법학과 교수로 기득권을 누리고 안주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 저자는 진보 지식인으로 어지러운 정국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어 어둠을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로 자리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경제민주화와 진정한 복지 사회 구현을 위해 움직여 왔다. 서울 법대 최연소 입학과 울산대 최연소 교수 임용이라는 저자 소개란은 비범한 능력을 지녔던 재원으로 평범한 이들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이력을 지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서부터 공부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저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아 갔다. 자기 자신을 아는 길이 공부에 있음을 간파하고 평생 공부하며 살아갈 것인지 골몰하며 법대생이라면 통과의례처럼 치르는 사법고시를 치르지 않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에서 공부하였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진행된 토론 수업은 학생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깨닫도록 수업을 끌어가는 공부는 끊임없이 사유하며 호기심을 해결해 가는 일련의 활동이었다. 말이 서툴러 생각을 표현하지 못할 때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 내용을 점검하고 수업 활동을 계획하며 반복된 말하기 훈련을 통해 수업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쉽지 않은 과정을 즐기며 할 수 있었다니 공부의 참된 의미를 생각게 한다.

 

   청춘 시절 가슴이 들끓으며 요동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외치며 광장으로 내달렸던 유월 항쟁의 외침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퍼질 때가 있다. 서면에서부터 남포동까지 시가행진을 벌이며 반독재를 외치던 민중들의 함성을 들끓어 올랐고 복숭아 행상을 하던 아저씨는 시위대에 참가한 이들에게 복숭아를 건네주며 박수쳐주던 때의 공감을 떠올리면 정의의 연대가 떠오른다. 사노맹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저자는 자유를 옥죄는 쇠사슬을 끊으려는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나설 때 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조금씩 움직여 갈 것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가는 또 다른 직업훈련소로 갖은 스펙을 쌓아 평준화된 실적으로 구직에 목을 매는 청년 세대들을 양산하는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사회적 평가 기준에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힌 채 자존감마저 팽개쳐두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지만 남는 것은 허무감과 학자금 대출금만 쌓여 있더라는 20대의 이야기가 청년 세대들만의 문제가 아닌 듯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똑같이 생각하며 움직이기보다는 새롭게 도전하며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일소해갈 때 타인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사회의 계급계층집단의 이익과 욕망꿈이 상충하며 절충되어 만들어진 법을 공부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눈임을 강조하는 저자는 어떠한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며 법학도로서의 길을 걸었다. 표지의 사진 속 정의의 여신 디케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공정하고 공평한 저울질을 한 뒤 칼을 휘둘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법 집행은 불공정하게 이뤄져 약자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저자는 형사법을 공부하며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로 바꾸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여 왔기 때문에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일조해 왔다. 극도의 궁핍에 내몰린 모녀가 유서를 써두고 목숨을 끊은 일들을 언론으로 접하면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따뜻한 세상으로 치환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의미를 두는 가치지향적인 학문을 추구하며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유랑하는 이들과 손을 잡고 세상의 질적인 변화를 위해 공부하는 지식인의 맨얼굴을 만나고 오는 길 마음이 맑아진다. 주도적인 삶을 꾸려가는 길에 공부는 자신을 알아차리는데 필요한 도구임을 인식하고 실패를 겪게 되더라도 경험 속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실천적 움직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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