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법
정민지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생활이 힘들다 어렵다고하지만 젊은들이  겪은 에피소드이외에도 직장자체보다 삼포시대에 온갖 굴욕과 좌절을 겪는 젊은이들의 사람사는 이야기로 차있다.흔하디흔한 상사의 폭언과 직장문제이기도 하지만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이 경쟁사회에서 버티겠다고 고백한다.괜히 나서다 자신의 십자가도 못지는 처지에 남의 희생양이 될 것없지않냐고 은연중 암시한다.또한 동료를 도와주기전에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도 피해주지않을 필요가 있는 것같다.

  작자의 불평과 체념에 귀기울이면 그의 하소연으로 여겨지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주인공은 유머를 적절히 섞어 위트있는 대화를 하기도하지만  특히  회사생활의 고생으로 팔팔했던 자아가  지쳐서  불안과 미래에대한 불확실로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결국 스트레스를 버티다못해 결국 손가락골절이되고 사직서로 종결되며 폭발한다.비록 신문사 여기자의 취재일기라해도 어찌보면 현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여기자였던 작자는 신문사의 경험을 기술하며 현대인의 직장생활은 생존경쟁으로 매달려야하는 만큼 결과도 결과지만 경쟁에 열중하기보다는 직장상사나 가족이 여유있게 마음을 열도록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단 것을 알 수 있다는 걸 고백한다. 모든 상사나 동료들이 주변을 돌보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가족이 아닌한  그런 이는 드물고 스트레스는 홀로 자신이 몫이다...또한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도 은근히 존재한다.

 주인공은 각박한 회사에서  따뜻한 마음을 잃지말고 자신외에도 주변에도 눈을 돌려보라고 충고한다. 작자는  직장 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때론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이라도 좋은 점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라고 충고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일 중국어 첫걸음 - 발음부터 미션까지
차오팡.오현주 지음 / 시사중국어사(시사에듀케이션)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보경심에 반해서 중국어를 시작했는데 상해가보니 이외로 현지인들에게 배운게 많이 쓰이지 않더군요.세계화시대에 영어만으로는 부족하고 중국어를 알고 있으면  여행이든 사업이든 도움되지요.

  기본적으로 한문만 어느정도 익숙해진다면 중국어도 그리 어렵지 않나봅니다.인칭변화는 있지만 동사나 시제변화가 없으니 우리말과 비교해가며 공부하면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언어는  비교하며  배울수록 쉽게 이해한다더니 가볍고 즐기며 공부해야하겠네요.

단 중국의 간자체에 익숙해져야겠지요.우리말의 한자어휘가 60%인만큼 어휘의 기본은 유사성이 있네요.문제는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단  건데 ..읽고 쓰기보다 듣고 말하기가 쉽지 않군요.

의외로 문학적인 언어가  중국어가 아닐지 ...사극이나 당시의 싯귀가 좋아시작했는데 본토의 사극에 중국어가   등장하니 내가 좋아하는 류시시나 성룡의 연기처럼 낭만적인 중국어가 종종  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민가는 사람들 심정을 알것같다.

아이키우기 힘들고 경쟁에 찌들고 거기에 극심한 취업난 ,주택난 ,생활고,난의 연속이다.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리 되었나 싶다.현재도 경제위기때문에 아우성인데 대졸취업자수가 현저히 감소했다고한다.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다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없다는 건...

 개인적으로 난 이런 좌충우돌적인 이야기들은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싸구려 청춘의 고뇌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거리라고는 해도 기성세대가 외면하는 일들을 사회가 대놓고 비난을 이 표현할 수 없는중대함이 있기때문이다. 

  작자의 글은 평범한 사람의 희망이 좌절로 끝나는 게 아니고 현실에서 살아남기위해 허드렛일부터 해야한다는  소설의 내용이 다소 현실적이랄까? 단순히 엘리트들도 한국의 현실에 적응못해 좌절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흔히 봐온만큼 신문지상의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결국 젊은 이들은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게된다.소설은 사회적계층의 괴리감과 현실불만을 가진 주인공들에게 촛점이 모여진다.

젊은이들에게 뭐라하기전에 기성세대들 잘못을 돌이켜보게하는 내용이다.일본도 장기20년불황이었지만 우리처럼 이민가는  행렬이 생기진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 김형준 원샷원킬 사회복지학 실전문제집 - 사회복지직.보호직 공무원 시험 대비
김형준 지음 / 배움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복지가 다소 생소한 분야인데 근래 노인인구의 증가와 싱글인구의 유행과 맞물려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네요.자신이 소외된 이들에대한 관심과 소명만 있다면 도전할 만해요.현재 공무원시험에 필요한 요령과 출제문제를 잘 다루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충무공이 명장에 충신이란 건 유명한 사실이다.오죽하면  러일전쟁당시 일본제독 도조 히로시가 최고로 존경하는 일인이라했을까?
  그런데 충신이든 명신이든 명군이나 성군을 못 만나면 제명에 못사나보다.선조는 한마디로 비열하기 짝없는 암군이다.중국사에도 명신이 혼군을 만나 비명횡사한 일이 부지기수다.
임진왜란 이란 초유의 국난에 조정대신들은 당쟁에 매달려있고 군주란 자는 제 목숨만 부지하기 급급하니 나라꼴이 얼마나 한심한가?압록강강변에서 선조가 지은 시를 보면 뻔뻔하기 짝없다.국가재난은 뒤로 미루고 명나라로 망명하겠다는,그러면서 조정대신들을 동서인으로 갈려싸운다고 원망한다.
  이순신은 불행히도 동인이었다.서애 유성룡의 추천을 받았다지만 권문세가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잘난 신하를 시기하는 군주는 그의 명성도 용납하지 않는 옹졸한 임금이었다.
막막한 상황에 전선을 지키는 장군에게 지원은 고사하고  질투하며 자신의 권력을  깎아먹는답시고  누명을 씌워 고문하고 제거하려들다니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소설에  그의 인간적 고뇌와 임금에대한 불신이 드러난다.

 

임금은 언어와 울음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갈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p.202
 한마디로 입만 지껄이는 군주란 뚯이다.하지만 전선에서 직접 적과 부딪쳐야하는 장수는?

적은 귀로의 바다 위에서 죽음을 통과해야만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고 그 바다에서 적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또 한번 뒤엉킬 것이었다. p.261
명과 일본이 강화하는 날 다시 서울 의금부로 끌려가 베어지는 내 머리의 환영이 떠올랐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 p264

˝나의 사지(死地)는 내 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잘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어서 끝은 보이지

보이지 않았다. 물결은 우우우 울며 내달았고, 이물은 솟고 또 곤두박질쳤다.˝ (p. 104)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철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p. 141)

 

불속에서 꿈속에서 인간도 귀신도 아닌 탈을 쓰고 어른거리는 군주의 두얼굴..위선과 가식의 가면이 보인다.어쩌면 이순신이 불우했던 건 몰락한 동인의 후예이기도했지만  군주를 잘못만났기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철처럼 아부도 못하고 이산해처럼 약삭바른 처신도 하지못햇으니 미움받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른다.허울뿐인 삼도수군통제사..강직한 군인이라 그런가?

 

 자신이 당쟁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알고 있었나보다. 고문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전을 해야하고 해준다는 건 겨우 면사란다.죽음을 면해준다는 건 처형이 아니라 전장에서 전사하란 뜻이다.사실상 노량해전에서 전사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그런 한심한 군주와 나라를 버리지않고 충성한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없는 군졸과 배를  정비해 전쟁에도 능력이 대단하지만 생사를 위협하는 군주에대한 불신의 와중에 끝까지 충성하다니..인간적으로 가능할까?

 

유교가 대단하긴 한가보다.그시대 정신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난세에 이런 충신을 만들어내는 걸보면..선조란 군주도 어지간히 뻔뻔한 임금이다.선조의 재위기간내  사림을 등용한답시고 정쟁이 심화되어  동서인이 양분되고  당쟁이 시작되었다.그러면서도 왜 임난을 막지못햇냐고 조정대신들을  파직하고 귀양살이보내며 전란을 수습하던 유성룡도 사대부의 공격을 받자 실각시켰다. 군주란 자가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유성룡같은 인물도 우매하다는  탄식을 했었다. 빈궁한 조정에 한 암시가 여러번 소설에 나온것만 보아도 지원 해준  것도 없었다.

이 와중에 빈손으로  싸워야하다니..헐벗은 군졸의 불만, 피난민들의 원망 ,수하들의  탄식섞인 보고..군주는 그와중에 의심에차서  당파싸움만 부추기는데  권력층의 조정대신들은 서로 모함하기에 정신없고 그와중에 신에게는 12척이 있사옵니다라는 설득은 자조같다.

 임난중에 살았어도 천수를 누리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본인도 알고 느꼈는지  당쟁과 어리석은 군주의  변덕스런 소용돌이 속에서 내면은 좌불안석이었다..여러 대신들이 귀양살이를 하고 의병장들이 옥사하기는 와중에  권력자들의  조정이 어떠한 상태인지 탄식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박정희대통령시절 충무공을 우상화한것도 그런   맹목적으로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원한 것일것이다.아마 일본식민지교육의 잔재이기전에 권위적인 유교윤리의 맹점이기도 할 것이다.유교가 절대군주인 제왕을 위한 하향식문화라더니 군주는 무치랍시고 아랫사람의 충성만 요구하고 책임은 묻지않길 바라는 뻔뻔함의 극치를 유교가 옹호하고 있었다.
  명신이자 명장인 이순신의  인간적 비애가 진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작자는 일인칭화자로 그의 복잡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자신의 신변과 생명에대한 불안감,조정에 대한 배신감,절박감,전쟁의 참혹함...
  젊은 세대일수록 개인주의의가 판치는 시대에 개인적으로 이순신같은 인물이 되고싶지는 않다.유교군주독재체제에서 희생된 인물이기에 현대근대사에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억울한 이들이 많았고 아직도 과거청산이 되지않아 역사의 오점이니..

현대도 선조같은 대통령이 충무공같은 아랫사람을 원한다면 독재국가라고할 수 밖에 없다.아니면 감옥에 간 누구처럼 어리석은 리더이거나..이런 인물이 있다면 걸맞는 리더를 만나길,민주주의의 의미를 이해하길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