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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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깨닫게 해주면서도, 칸트철학으로 아주 잘 이끌어주는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이 책을 시내 서점에서 처음 접했었는데, 그때 겉만 보고서는 이 책이 다른 칸트 입문서들과 별 다른 게 없어 보였다고 생각했다. 이미 시중에는 칸트뿐만 아니라 여러 철학자들을 쉽게 소개해 놓은 책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책들이 마냥 좋은 질을 갖고 있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책을 한번 훑어보던 중, 이 책이 단순히 ‘칸트와 칸트철학’만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평소 필자가 궁금해했고 현재까지도 논쟁 중인 번역 논쟁을 언급하고 자세히 설명해주는 점에서 무언가 다른 점을 느꼈고, 저자의 이름 세 글자를 읽은 후 이 책의 위상을 이해하고 바로 구매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한국칸트학회 회장이자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백종현이 ‘시민인문학강좌’에서 진행했었던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내용을 한국어 칸트전집 발간 15주년을 기념하여 정리한 것이다. 267페이지 안에 칸트가 누구인지, 철학사에서 왜 중요한지, 한국어로서의 칸트 번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마지막으로 칸트 3대 비판서를 압축하여 모두 잘 설명하고, 독자가 이 책만으로 칸트를 마무리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다른 철학이론과 철학자들을 맥락에 맞게 언급하며 철학적 호기심을 자극해준다. 또한 일상의 언어와 사례를 많이 사용하여 칸트철학의 이해를 도왔다. 필자는 실제로 저자가 자신을 ‘백 아무개’라고 표현하는 점에서 빵 터졌다. 이외에도 흙수저와 한글 프로그램 등을 언급하는 부분들도 있다.


칸트라는 인물은 저자도 자주 언급하듯이, ‘자유’의 철학자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칸트를 철통같은 엄격함의 이미지로만 배웠었기 때문에 뭔 이상한 꼰대 같기만 했었다. 앞뒤 꽉 막혀 융통성이란 없는 그가 ‘자유’를 외치고 있다니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자유’가 칸트에 의하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제한 없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 말하지만, 사실상 제한이 없다면 자유도 존재하지 못한다. 그것은 필연이다. 칸트는 인간이 그것의 동물성, 즉 인간이 사실 동물이지만 동물임을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자유라고 말한다. 동물에 머물러 있었다면 인간은 그저 짐승에 불과했을 것이지만, 저자는 ‘한낱 동물인 것이 자기를 극복해내니 대단한 것이다.’라고 그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


사실 이 책이 입문서라지만 칸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좀 버겁다. 2번째 비판서인 실천이성비판의 내용을 설명하는 2장은 그래도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상황을 예로 들기도 하고, 또 일상에서도 비슷하게 들어본 내용이라 어느 정도 이해는 갈 수 있겠지만, 현실과 붕 떨어져 있는 듯한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 즉 1장과 3장의 내용을 잘 이해하기는 힘들다. 실제 권위있는 칸트 번역자가 직접 작성하는 글이다보니 아무리 표현과 내용을 순화시킨다-번역어에 관련해서는 각 장 마지막에 있는 <질의응답>에서 그 번역어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해도 칸트 특유의 난해함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마냥 답답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1장 중 <칸트 철학서의 난해함과 좋은 번역> 문단에서, 학술번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자신의 신조 등을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원문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저자가 틀리게 쓰면 번역도 틀린 대로, 어렵게 쓰면 어렵게, 쉽게 쓰면 쉽게 번역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철학 자체가 난해하여 독일인조차도 알아먹기 어려운데, 쉽게 번역하여 쉽게 이해시킨다?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가 서두에 말했던 이 책이 왜 다른 입문서들과 차별화되는지를 나타내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칸트를 아주 쉽게 설명해놓은 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내용이 쉽지만, 거기에밖에 머물지 못한다. 쉽다는 것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독자들을 더 깊은 곳으로 이끌지 못한다. 그리곤 독자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교양’을 다 배웠답시고 철학에 귀를 닫는다. 사실 어떻게 보면 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선 그렇다.) 철학을 공자나 맹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들의 말을 지지고 볶는 것 이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수학과 물리학은 어렵고 엄밀해 보이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결코 교양 수준에만 머물러 있을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무단횡단하지 마세요’만큼이나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머리털 다 빠질 만큼이나 어렵고 난해하다. 여기서 서양 철학 전문 출판사 ‘전기가오리’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제가 바라는 것은 철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철학화입니다.’


이 책의 의의는, 칸트가 철학을 다른 ‘학문들이 헛길에 들지 않도록 앞장서 등불을 들고 가는 시녀’라고 한 것과 같이, 칸트로 향해 가는 시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시녀는 용감하고, 쉽게 다뤄지지 않는다. 적어도 ‘입문서’로서는 필자가 읽은 것 중에서 꽤 어려운 편이었다. (이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순 있겠다.) 하지만 다른 책들을 읽고 쌓아온 칸트철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분부분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독자를 헛길에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입문서의 역할 아니겠는가? 

또한 필자는 저자가 이 책을 교양의 목적도 있지만, 필자와 같이 철학자를 꿈꾸는 자들을 인도하는 목적으로도 썼다고 느꼈다. 제자에게 대하듯이 말이다. 철학뿐만 아니라 책 중간중간에 원초적으로 ‘학문’의 방법과 태도를 설명하는 데에서도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것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1장의 <더 좋은 이론체계를 기다리며> 문단은 마치 필자에게 건네는 기대와 요청으로 와닿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새로이 칸트를 접하는 이에게는 난해하면서도 흥미로운 칸트철학의 세계로 잘 이끌어주고, 필자와 같은 철학 꿈나무들에게는 철학 자체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주며 사유를 더 확장시켜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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