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최근 대한 상의,경총,전경련 뿐만 아니라 국방부,심지어 통일부까지 나서서 좌편향의 역사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이 고치고자 하는 항목을 보았습니다.특히 제주도 4,3사건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더군요.오랜만에 공부 좀 해볼까 하고 서재에서 몇 권의 책을 꺼내들었습니다.4,3사건은 반드시 여순 사건 이야기가 딸려 나오게 되어있습니다.제주도의 봉기가 장기화 되면서 병력이 본토에서 계속 들어오고 그 중 여수의 14연대가 진압을 거부하면서 여순 사건이 일어나니까요.그리고 이 두 사건엔 미군군사고문단이 진압작전을 지휘합니다.특히 당시 미군정 장관 윌리엄 딘과 군사고문단장 로버츠는 강경진압을 주장합니다.당시 경무부장이던 조병옥 씨는 말할 나위도 없구요.

   그런데 이 당시를 알라딘에 글로 써볼까 하는 순간 갑자기 제 자신을 무슨 거대한 강박관념이 짓누르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이 정도면 큰 문제는 없겠지? 혹시 좌경적인 글이라고 조사 받게 되진 않을까? 요건 이런 문장으로 좀 순화하면 되겠지? 이 사건을 인용할 땐 우익 쪽 문헌을 써야지...등 등...간단히 말해서 자기검열이 내면화된 상태인데,현실을 비판하려면 반공이라는 일종의 검열장치,일종의 통과의례라고도 할 이 장치를 무사히 거쳐가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겁니다.더군다나 미국이라는 형님나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우리나라엔 미국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근대적 외교관계로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나라를 도와준 은인이라는,전근대적 봉건적 관계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비단 파워 엘리트 계층 뿐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들도요.반공과 자유의 이름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가권력을 차지한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초창기 원조를 정권의 유지비용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반공과 친미는 뗄래야 뗄 수가 없게 된 겁니다.일제 말, 친일파들이 내선일체를 통해 전근대적 국가관을 유지했듯이 친미주의자들은 혈맹이나 한미동맹을 내세웠지요.친일의 논리와 친미의 논리는 이렇게 대상만 변했을 뿐 그 정당성을 끌어들이는 의미에서 비슷합니다.그래서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친일파가 될 수 있었구요.해방직후 들어온 미군정 관계자들이 그랬다잖아요.일본에게 충성스런 자들이라면 우리들에게도 충성할 거다...

  반공이념이 단순히 지배계급이 통치수단으로 주입한,아니 쑤셔넣은 허위의식 그 이상이기에 더 무서운 게 아닐까요?  전쟁체험으로 인한 공포 속에서 일반대중들 역시 의식 중에 때로는 무의식 중에 내면화되었으니까요.현실비판이건 민중들의 다양한 요구건 무조건 용공으로 몰아붙이며 탄압하니 무서워서 입이라도 뻥긋했겠습니까? 피지배자들을 설득하고 쟁점을 합의를 통해 해결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 권력의 정당성을 반공에서 찾으니 또 이게 편하기도 하거든요.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무슨 운동을 하려면 "우리는 용공과는 거리가 멀어요!!!"하고 알아서 증명해야 하는 강박을 보이는 이들을 보고 지배자들은 쾌감을 느끼게 되는 단계까지 도달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공안정국을 보면 4,19정신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못하고 5,16으로 박살이 나는 시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지금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미흡하나마 이뤄 놓은 지난 10년간의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6월 항쟁이전의 막무가내식 반공체제로 돌아가려고 하지요.소박한 정의감의 표시조차 용납하지 않고 사법처리라는 무기를 남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민사회의 자율성이니 하는 것은 전혀 생각조차 않고 모든 운동을 물리력을 동원해 눌러버리겠다는 구실로 반공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공포로 인해 내면화된 반공이념을 계속 확대 재생산하고 그 정점에 어린이 청소년들의 머리속 지배를 위한 교과서 개정이 필요하다 이거죠.그래서 이제 반공은 1공화국이나 군사정권 때처럼 신성불가침이요,터부가 되도록 하겠다는 속셈입니다.

   여러가지로 미흡하지만 그래도 뭔가 막연한 희망이 있던 2공화국이 5,16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난 후 뭔가 양심을 지켜보려고 했던 이름 없는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민주화라든가 건전한 시민의식의 형성이라든가 하는 여망이 사라진 현실에서 환멸과 허무만 남아서 대충 살지...누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니고...이렇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5,16은 반공이념에 관한 한 자유당 시대의 부활이죠.그러면 지금의 공안당국은 당연히 1987년 이전의 부활입니다.자율적인 시민사회영역의 멸종이 곧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곳 광주 광역시에서는 뉴라이트의 계간지인 <시대정신>을 작년에는 경총이,올해엔 전경련이 일부 도서관에 무료배포하고 있습니다.올 봄부터는 대한상의에서 전국의 군대에 '새롭고 시장경제지향적인' 경제교과서를 무료배포하고 있습니다.참여정부 때도 자본권력의 위력은 대단했지요.2006년에 대한상의는 "강정구 강의 듣는 학생은 취직하기 힘들 걸"이라면서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고 거기에 동국대학 당국은 아무 저항도 못했습니다.이제 한나라당이 집권했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제 역사적 단절을 어떤 식으로 강요받게 될까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8-09-2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19정신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못하고 5,16으로 박살이 나는 시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왜 이런 안좋은 역사는 되풀이되는 걸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2 22:06   좋아요 0 | URL
10,26이후 짧았던 서울의 봄도 5,18로 이어진 또다른 사례가 있었죠.

비로그인 2008-09-22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 교과서 문제로 시끄럽자 "차라리 일본의 새역모 교과서를 수입하자."라는 농담이
나올정도에요. 미취업자들과 실직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이 일자리 외의 문제엔 무감각하게
하고 그들도 어쩌면 그걸 합리화 하려는지 몰라요. 먹고 살기 힘든데 다 귀찮다는거죠.
천 유로 세대라는 소설에서 이탈리아는 이웃인 프랑스에서 최초 고용 계약에 대한 저항을 지켜보면서 왜 우리들은 이렇게 조용한가 자문하며 아마 아직 현실을 인식하지 못해서일 것이라 자답하고 현실 인식 후엔 프랑스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에만 그쳤어요. 이탈리아는 실업률이 높은걸로 아는데 불안감 때문에 다른 모든것을
외면하고 투표까지 안한다면 우리도 이탈리아 처럼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20대들에게도 책임의 일부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2 22:31   좋아요 0 | URL
2005년 회심의 일격으로 밀어붙였던 새역모의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 내에서는 채택율이 1%도 안되는 참패로 끝나고 말았죠.그래서 새역모는 분열되어 버렸구요.우리나라 뉴라이트 교과서는 어떻게 될까요?
말로만 듣던 천 유로 세대...직접 읽으셨군요.저는 베를로스코니가 있는 이탈리아도 궁금하고 또 12년동안 그 살벌한 대처시대를 지지해 온 영국인들도 궁금합니다.그런 정권들을 지지한 인민들...

로쟈 2008-09-2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16은 반공이념에 관한 한 자유당 시대의 부활이죠.그러면 지금의 공안당국은 당연히 1987년 이전의 부활입니다.자율적인 시민사회영역의 멸종이 곧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도 어둡고 댓글들도 대체로 어둡네요.지금과 1989년 경,문익환과 임수경 방북으로 인한 공안정국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연구해 볼만하죠.
 

    학술 계간지 몇 권을 봅니다만 그 중 제일 흥미롭게 보는 것은 <역사비평>입니다.논문이나 서평이 재밌는 게 많더군요.이번 가을호에도 제가 좋아하는 에드워드 홀리트 카를 특집으로 다뤘더라구요.<역사비평>은 역사문제 연구소에서 내고 있는데 이 연구소는 1986년 2울 21일 종로구 신수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초대 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영남대 교수 정석종 씨.연구소 설립 주도 인물은 박원순 변호사,원경스님,이호웅 전 의원.초기 활동은 김남식 씨와 서중석 교수가 합류하여 세미나 중심으로 현대사를 연구했죠.이 당시 젊은 대학원생으로 참여한 후 유명해진 이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씨,현재 성공회대 교수인 한홍구 씨 등이 있습니다.

   이 명단을 볼 때 흥미로운 인물은 박헌영의 아들인 원경스님과 남로당 연구로 유명한 김남식 씨입니다.김남식 씨는 1962년 체포된 이후 중앙정보부의 특별관리하에 한국 현대사를 연구했죠.김 씨의 경력에 보면 국제문제조사 연구소 연구위원이란 직책이 있죠? 그게 중정 산하 연구기관입니다.극동문제 연구소와 함께 중정~안기부 시절 중요 연구기관이죠.우익인사로써 <한국논단> 등에 글을 발표하는 이기봉 씨도 국제문제 조사 연구소 출신이고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씨는 극동문제 연구소 출신이었죠.그런데 원경 스님은 아버지가 박헌영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버지를 역사에 복권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죠.임경석<이정 박헌영 일대기>부록엔 윤해동 교수와의 대담이 실려 있는데 원경스님은 역사문제 연구소 설립에 나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역사 문제 연구소를 만들자고 했을 때도 또 거기에 참여했을 때도 마음 속으로는 자료를 구하고 보존하려는 욕심이 있었어요.그리고 선친이 정말 '미제의 간첩'이었을까,사견으로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한평생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바친 분이 자기 한몸 영달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그리고 정말 간첩이었다면 미국의 문서들이 공개되는 데도 왜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지,또 왜 김일성이 권력투쟁에 이용한 자료들만 공개되고 이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자료를 보존하자는 것도 훗날 이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들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데 뜻이 있습니다----

   김남식 씨는 남로당 노선 특히 그 지도자인 박헌영을 비판하는 책과 논문을 많이 냈습니다.70년대에 나온 <실록 남로당>은 1984년 돌베개에서 <남로당 연구>로 다시 나왔고 1986년엔 아예 심지연 씨와 함께 <박헌영 노선 비판>이란 책을 썼죠.김 씨의 다른 연구논문이나 책에서 늘 주장한 것이지만 여기서도 박헌영이 관여한 일제시대와 해방직후의 사회주의 운동은 파벌주의에 오염되어 있었다...해방직후에서 1946년까진 대미타협주의 노선을 걸어 우경적 오류...이후엔 폭동주의로 좌경적 오류...이런 식이죠.결론은 박헌영은 민중의 혁명적 에네르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남한 혁명운동의 실패를 초래했다...는 겁니다.물론 박헌영이 미제 간첩이었다는 말은 안 합니다.중정과 안기부의 관리대상이었던 그가 그런 파격적인 주장을 할 리 없죠.하지만 박헌영이란 인물이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기피인물이고 욕을 얻어먹는 처지이기에 군사정권하에서도 김남식 씨의 이런 남로당 비판이 꽤 유용했을 겁니다.1987년 신동아 6월호에 실린 <남로당의 혁명 노선>에도 그의 직함은 국제문제 조사 연구소 연구원이었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도 김남식 논문은 실려있습니다.2권 박헌영과 8월 테제(1985)3권조선 공산당과 3당 합당(1987)4권 1948~50년 남한 내 빨치산 활동의 양상과 성격(1989).여기까지 김씨의 논문은 주로 남로당 비판에만 집중되어 있지,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정통성 논쟁은 삼가는 모습이었죠.그런데 5권 해방전후 북한 현대사의 재인식(1989)에는 남로당과 대비해서 해방 후 북한에 나타난 권력이 항일운동의 정통을 잇는 것이라고 썼습니다.물론 상당히 조심스러운 투였죠.결국 이런 걸 빌미로 강경한 우익들은 김남식이 1980년대 말(아마 역사문제 연구소에 합류한 때를 말하는 듯)부턴 좌경화되었다면서 김남식 씨 사후(2005년 사망) 그의 묘소의 비석을 때려부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원경스님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일관되게 비판한 김남식 씨와 어떻게 같은 연구소에서 한 솥밥을 먹었을까요? 아버지 대에 일어난 일은 깨끗이 잊자고 화해하기도 좀 그랬을 겁니다.김남식 씨는 국내에서도 일급으로 꼽는 남로당 연구가요,남로당 비판가이니까 뭘 다 잊어버리고 말고 하는 차원도 안 됩니다.저로서는 제가 가장 즐겨 읽는 <역사비평>이니까 이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두사람이 좀 어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이런 글을 써봤습니다.

  범우사에서 올 여름부터 해방정국 당시 출판된 이강국 박헌영 등의 책을 다시 내고 있습니다.이강국과 김수임 사건은 지금 영화로 만든다고 합니다.경향신문이 내던 뉴스메이커는 위클리 경향(아이고... 신문장이들은 이런 꼬부랑 글씨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으로 개칭하여 내는데 새롭게 김성동 씨의 현대사 이야기를 연재한답니다.김성동 씨는 올봄에 경성 콩그룹과 남로당이 국내 사회주의 운동의 정통이라고 주장했죠.결국 김성동 씨가 현대사에 대해 직접 글을 쓸 모양입니다.이 와중에 국방부는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을 예전 군사정권 때의 수준으로 바꾸라는 압박을 넣고 있습니다.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역사논쟁이 뜨거울 것 같습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쟈니 2008-09-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많은 일들이 일어날 듯 합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제겐 마치 숙제같은 책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36   좋아요 0 | URL
1권 빼놓고는 논문들이 많아서 딱딱하지요.어렵다고 생각하시면 더 부드러운 개설서나 회고록 류를 먼저 읽는 게 좋을 겁니다.

로쟈 2008-09-1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씨의 연재는 저도 읽었습니다. '위클리 경향'은 편집장이 '경향'이란 브랜드의 덕을 좀 보려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썼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38   좋아요 0 | URL
벌써 시작했군요.주간 조선도 위클리 조선으로 바뀌었죠.유행인가 봐요.

마법천자문 2008-09-1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일성은 남한과의 전면전을 망설였는데 박헌영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계속 충동질을 해서 김일성이 전면 남침을 감행하도록 꼬드겼다는 설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설이 있는데 만약 박헌영이 그런 말을 했다면 북한에서 사실상 김일성 보호하에 있는 처지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여보기 위해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실제로 당시 남한에선 남로당은 거의 지는 해였고 박현영도 그 실상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전쟁 중 북한이 당한 피해가 워낙 컸기에 책임추궁하다 보니 박헌영의 그 말이 부각되는 거겠죠.하지만 남침의 최종인가자는 김일성이죠.좌경모험주의의 장본인은 김일성이 아닐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운형,김구 암살로 남한에선 사실상 이승만 1인체제가 확립되었지만 북에선 박헌영,김일성양두체제였으니 노선다툼이 치열했겠죠.북한에서 나온 <조선통사>나 <현대조선역사>가 기술하는 박헌영 및 남로당 노선에 대한 비판은 남한의 관선편찬자들의 평가와 거의 유사해서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전병순 씨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그녀의 첫 장편 <절망 뒤에 오는 것>이 1961년 한국일보 작품모집에 당선되면서 여류문학상을 타게 되었을 때였다.이 소설은 여순사건 (불과 몇년 전에도 여순 반란이라 했다)을 다루었는데 전 씨는 당시 스무살 남짓으로 이 사건을 직접 겪었다(당시 여수여중,현재 여수여고의 교사였다).나는 이 소설을 중앙일보사에서 기획한 오늘의 역사  오늘의 문학 전집에 나온 것으로 구입했는데(1987년 초판.1993년 2쇄 발행) 이 당시 전병순 씨는 서문을 통해 (작품을 쓴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 여순 사건에 대한 근거없는 소문을 바로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특히 여수여중학생들이 교복 속에서 권총을 꺼내 쏘았다든가,당시 여수여중 교장이 사건의 주모자요 선동자였다는 이야기기 꽤 권위있는 저작물에도 인용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사실무근임을 강조하고 있다.그런 소신을 밝히면 "당신이 전체를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위치엔 없었던 게 사실 아니냐"하고 상대방이 우기기도 해 더 이상 말싸움하기 싫어 입을 다문 적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지금은 세월이 지났고 전병순 씨도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싶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지금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내가 갖고 있는 중앙일보사 판은 물론 절판되었는데 책 뒤편의  역사적 배경 해설은 한홍구 씨가 썼다. 당시만 해도 그의 직함이 현대사 연구가였다.그는 여순사건을 제주도 사건과 관련하여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는데,해방정국 당시 최악의 참사였던 이 두 사건에 대한 배경지식 습득에 유용한 글이다.여수를 탈환하려고 남한 군경은 함정까지 동원했고, 전병순 씨는 함포사격소리를 직접 들었다 한다.작품해설은 평론가 임헌영씨가 했다.

  이제 여순사건을 다룬 소설은 전병순 씨의 이 작품보다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더 많이 떠올리는 것이 사실이다.아무래도 60년대라는 시기에다가 신문소설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절망 속에 있는 것>을 읽지 않는가 보다.여순 사건에 대해서 또 알려지지 않는 소설이 있는데 <여순병란>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이태.<남부군>의 작가다.남부군이 워낙 유명해졌기 때문인지 이 소설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나 역시 헌 책방에서 상 권만 구하고 그 뒤로 하 권을 찾아 5년 째 헤매고 있다.

   전병순 씨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지금 남은 것은 <절망 뒤에 오는 것>뿐.문예출판사 장편소설선으로 선보이기도 한 <또 하나의 고독>은 이제 구할 수가 없다.헌책방 갈 때마다 눈에 불을 쓰고 찾고 있는데...이 소설선 중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이병주<비창>,김용운<안개꽃>두 권인데 <안개꽃>은 최근에 다시 나왔으니 <또 하나의 고독>도 나왔으면 좋겠다(<안개꽃> 뒤쪽 책날개에 소개된 것을 보니 꽤 두툼한 책인가 보다.550쪽이나 되니까).이 소설은 1969년,영화로 만들어져 꽤 흥행에 성공하고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각본상도 받았다.감독은 이성구.주연은 신영균,문정숙,윤정희.,,,당시 쟁쟁한 연기자들이다.지금은 원로연기자가 된 사미자,강부자,김창숙이  조연으로 나왔다. 교육방송 한국영화걸작선에서도 아직 방영을 안 한 것 같은데 이 영화의 주제가가 배호의 그 유명한 '당신'이다.작곡 나규호,작사는 일전에 페이퍼를 통해서 한 번 소개한 비운의 사나이 전우.가을밤 듣는 배호노래라...배호 씨는 전병순씨보다 12살 아래인데도 33년이나 먼저 저 세상에 갔구먼...

                당신      노래:배호    작곡: 나규호  작사:전우

             보내야 할 당신 마음 괴롭더라도 가야만 할 당신 미련 남기지 말고

             맺지 못할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사랑한 것이

             싸늘한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의 상처 되어

             다시는 못 올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할 당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8-09-1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과 뉴스에서 국방부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교과서 수정을 요구했더군요. 4.3도 좌익의 반란이고 그에 대한
정당한 진압이었다는 옛날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우리군이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의 넋은 지워버리고
친일반공의 추억만 가득해서 노망이 든 모양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요 목표는 경제와 근현대사 교과서인데 지금까지 전경련,대한상의,경총 등이 나서고 얼마전 교육관료들이 나서고 이젠 국방부 차례입니다.이미 봄에 군부대에 시장경제 지향적이라는 새로운 경제 교과서 무료배포하기 시작했구요,이젠 근현대사 차례다 이거죠.그런데 제주도 지역정서가 상당히 들끓을텐데 좀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현지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봅시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찾고 싶은 책은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전혀 생각도 않은 책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접신의 경지에 이르면 책방문을 드르륵 여는 순간 갑자기 책의 기운이 좌르르 느껴지면서 나를 부르는 느낌이 전신에 퍼진다는데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다.헌책방에서 주로 책을 구하다 보니 60년대 70년대 책도 꽤 산 편인데 디자인도 촌스럽고 국한문 혼용에다 종이도 누리끼리해서 깔끔하단 느낌은 안 들지만 요런 책들이 주는 그 특유의 정감도 있다.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이들,또는 지금은 원로인 이들의 혈기방장한 시절의 글을 읽으며,태어날 때부터 어른이나 부모인 사람은 없다는 평범한,그러나 잊기 쉬운 진리를 깨달을 때가 있다.

      이런 책에 익숙하다 보니 내 나이 또래가 모르는 인물은 물론이며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도 가물가물한 인물들에 대해서까지 좍~꿰고 있을 때가 있다.지난 주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말봉(1901~1961)<찔레꽃>대일출판사1981과 같은 책은 내 또래는 거의 모르는 작가요,작품이다.일제시대 때 대중소설로 지금도  남은 것은 박계주<순애보>정도? 이 소설은 세로줄로 나오다가 가로줄로 바뀐 삼중당 문고에서 지금도 나오던데,그 외에 70년대엔 꽤 나오던 방인근,김래성 등의 작품은 이젠 가끔 운좋게 헌책방에서나 볼 수 있다.이 곳 광주 광역시엔 4~5년 전까지 드문드문 나오던 김래성 추리전집10권은 요즘은 통 구할 수가 없다.그때 사놓을 걸...후회는 하지만 언제 살 수 있을지 기약할 수도 없고.그런데 전혀 생각도 않은 찔레꽃이 나오다니 반갑기 한량없다.오...이제 나도 이걸 읽어볼 수 있겠구나...1981년이면 가로줄이 꽤 나오던 시절인데 세로줄에다가 제목 찔레꽃은 북한 카드섹션에서 나오는 글씨체요,종이도 누르스름하다.나는 그래서 더 좋지만...

    내게 있는 정한출판사 한국단편문학전집(한때 꽤 팔린 전집이다.가끔 유명작가들의 서재가 나오는 사진을 보면 갖춰놓은 이들이 꽤 있다)엔 강경애와 김말봉 작품이 있는데 김말봉은 신문 연재에 장기를 보인 여성이다.여러 작품을 썼지만 대중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은 역시 찔레꽃.이 소설은 1937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는데 어찌나 인기가 좋던지 이 소설을 읽으려고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구독을 바꾸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였다.소설 하나 인기 좋으면 신문 구독에까지 영향을 주던 일은 70년대까지도 있었지만 일제시대 땐 그 열풍은 가히 광풍이랄 수 있었다.물론 이 소설은 전형적인 대중 연애 소설이었다.일제시대에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일어나는 일이 있었고 당대의 인기작가 김말봉이 독자들의 가슴을 애태우는 장면에서 딱 끊어놓고 내일은 무슨 이야기일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놓으니 다음 호를 안 읽고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히 신문간의 경쟁만은 아니었다.한국 신문사에서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는 독립운동의 노선 투쟁이 얽힌 시대였다.좌우합작 운동인 신간회를 지지한 신문은 조선일보였다.동아일보는 쉽게 말하면 식민지 내의 자치운동에 기울어져 있어서 사설에서 대놓고 신간회운동을 비난하기도 했다.지금의 조선일보를 생각하면 당시의 조선일보가 보여준 유연한 이념관이 이색적인데 심지어 카프 진영의 문인들은 동아일보엔 글을 싣지 않는 경향까지 있었다.일종의 안티 동아 운동의 일제판이라고나 할까... 신문부수 느는 재미에 표정관리하느라 바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드디어 한 판 했다.당시 노산 이은상은 조선일보에, 수주 변영로가 동아일보에 있었는데 찔레꽃 이야기를 하다가 이은상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짓자 신문부수가 줄어 신경이 날카로와진 변영로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둘은 언성을 높이면서 대판 싸웠다고 한다(원래 김말봉의 첫 출세 장편은 동아일보 연재소설이었다).

   김말봉의 사생활은 순탄치 못했다.두번의 결혼에다가 친아들은 한국전쟁 때 전사했다.특이한 것은 세모시 옥색치마,,,로 시작되는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 씨가 그녀의 사위라는 것.그리고 그의 장편 중에 훗날 최인호의 작품과 제목이 똑같은 것이 있다.별들의 고향! 최인호 씨가 김말봉의 이 작품을 알고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그러고 보니 요즘은 별들의 고향이나 영자의 전성시대와 같은 70년대 물들은 독서시장에서 사라져 버렸나보다.찔레꽃을 연재할 때 삽화를 그린 이가 한말숙이다.한 씨는 김말봉을 언니라 부르면서 따랐는데 그림솜씨가 뛰어난 재원이었다.한말숙 한무숙은 나중에 자매 소설가로서 우리의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말년에 김말봉은 어느 인사로부터 박마리아(이기붕 씨의 부인)의 전기를 쓸 수 있느냐는 압력성 청탁을 받았다.망설인 끝에 그녀는 거절했는데 이기붕 일가는 다 알다시피 4,19 때 아들인 이강석 씨의 총격으로 가족이 모두 비명에 가는 불운을 맞게 된다.훗날 시인 박목월이 육영수 여사를 찬양한 전기를 써서 구설수에 오른 걸 보면 김말봉의 거절은 개인의 명예를 위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박목월의 육영수 여사 전기는 가끔 헌책방에서 나오길래 나도 한 권 구해놨는데 몇년전 박근혜 열풍을 타고 새롭게 단장하여 선을 보였으나 그다지 반향은 없는 듯하다.

  찔레꽃을 구했으니 예전에 못 구한 김래성이나 방인근 소설이 있는지 헌책방 순례에 나설 때가 된 것 같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8-09-1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김말봉의 '찔레꽃'은 내가 중(고등)학생 때(?) 라디오 연속극 '여인극장'으로 했었는데 금수현이 사위라는 것도 그때 알았지요. 여자 성우는 생각나지 않고 상대역 남자가 정승현씨였던가? 하여간 윤심덕 할때도 김우진 역으로 정승현씨가 나왔는데 그 사람 목소리 들으려고 빼놓지 않고 들었지요. .^^
박계주의 순애보와 김래성의 애인을 읽으며 엄청 울어서~ 우리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책이냐고 들춰봤던 기억이 납니다~~ 노이에님은 도대체 몇대인가? 하지원을 누나라 하니 그 아래인 것 같기도 하지만...^^

노이에자이트 2008-09-1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10대부터 80대까지 다 이야기가 통합니다.그리고 이쁜 여자는 무조건 누나라고 합니다.올 봄에 퇴근길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과 이야기하는데 이쁜 여자는 다 누나라고 부른다고 했더니 그 학생 왈,어머 그럼 저도 누나겠네요..해서 둘이 신나게 웃었다는...영화 윤심덕에선 윤심덕은 문희,김우진에 이순재던가? 몇 년전 교육방송 한국영화걸작선에서 본 기억이 있네요.아...그리고 김일엽이라고 한때 꽤 유명한 작가 기억하세요? 수덕사의 여승이 된...으하하...이문구 씨 단편에 수학여행을 수덕사로 가서 김일엽 만나는 경험담을 그린 게 있었죠.정승현 씨는 나중에 TV연기자도 하던데 몇년 전부턴 안나오대요.목소리가 저와 비슷한데...음...믿거나 말거나...

순오기 2008-09-15 05:45   좋아요 0 | URL
우리딸한테 '하지원 누나'라는 호칭 얘기했더니~ 다 그렇게 부를거라고, 그거로 나이를 점치지 말라고 하더군요.ㅎㅎㅎ연기자가 된 정승현씨는 탤런트 김혜자씨와 사돈간이죠.^^ '수덕사의 여승'은 울 엄니가 좋아하셨던 추억의 노래지요.
오호~ 정승현씨와 비슷한 목소리라니~ 무조건 믿습니다!!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08-09-15 21:10   좋아요 0 | URL
여자를 호칭할 땐 무조건 애나 아이라고 부르는 남자들도 많아요.하지원 그애가...그런 식으로요.저처럼 순수한 남자만이 누나라고 말할 수 있죠. 근데 댓글이 추억따라 노래따라 분위기네요.수덕사의 여승...
정승현 씨 목소리 같다는 이들도 있고...뭐...또 한석규 씨 목소리 같다는 이들도 있고...저는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그래요...

로쟈 2008-09-1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연구 트렌드를 타고 과거 대중소설도 조명이 될 만합니다. 이미 연구서들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노이에자이트 2008-09-1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계주 같은 경우는 <순애보>에 이용도목사가 나와서 종교학 쪽에서 다루기도 하구요,또 박계주가 만주 출신이라 그 당시 만주 배경 작품이 꽤 있어서 만주 및 간도 문학에서도 반드시 다루지요.김윤식 씨가 오래전부터 안수길 연구하면서 만주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요즘도 연구서를 내더군요.젊은 학자들도 최근에 만주를 여러 각도에서 많이 연구하더라구요.저는 만주국 때문에 관심이 많아요.책세상 문고에서 일제시대 대중문학에 대한 책이 몇 권 있던 기억이 납니다.

비로그인 2008-09-18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민족지였던 신문의 옛이야기가 무척 재밌네요.
지금은 존재 자체가 울화통 터지지만 젊은 사람들이 모르는 이런 이야기는
정말 재밌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8 16:25   좋아요 0 | URL
지금은 조선일보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인 리영희 씨도 한때 조선일보 기자였구요,강경우익인 조갑제 씨도 한때 고문반대하는 일념으로 르포도 쓰고 부마항쟁에 관한 책도 쓰고 그랬답니다.

릴케 현상 2008-09-2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판은 '합동사서점'이라는 출판사에서 38년에 나왔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0 21:50   좋아요 0 | URL
인기가 있었으니 연재 끝내자 마자 바로 책이 나왔군요.
 

   다치바나 다카시가 우리나라에도 인기입니다.몇 년 전에는 그의 유명한 고양이빌딩의 서재가 방송을 타기도 했지요.독서가들에겐 그의 책 한 권 한 권이 소중한 모양입니다.그의 책 중 제일 먼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일본 공산주의 연구>박충석 역 고려원1985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사실 이 번역본 자체가 한자가 빽빽한 데다가 일본 지명과 인명도 히라가나 발음 표기도 없이 한자만 표기해서 참 읽기 불편하게 나왔죠.7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나왔을 땐 일본 내 진보진영에서 굉장히 반발하기도 한 문제의 역사서입니다.우리나라에 다치바나가 널리 알려진 것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가 번역된 후일 겁니다.그런데 이 책에 한국전쟁 당시 미첩보기관과 구 일본군 잔당들이 한국전에서 암약한 내용을 다룬 로만 킴 <할복한 참모들은 살아있다>가 142쪽에 소개된 사실은 많은 이들이 그냥 스쳐지나가 버린 모양입니다.저는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기억합니다만.

    한국전에 세균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정래<태백산맥>을 통해서입니다.하지만 역시 이 책을 읽은 많은 주변사람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그렇게 많이 팔린 책인데도요.그의 강연회에서 직접 물어봤죠.한국전 때 세균전이 있었느냐고.조정래 씨는 그렇다고 바로 대답했습니다.저는 그 유명한 하얼빈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한국전이 한참이던 때 우리나라에 왔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이 어느 정도 한국전에 개입했는지 궁금했죠.당시 이시이가 방문한 공식적인 목적은 부족한 혈액을 공급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그런 것이었지만 731부대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하필 이시이가...하는 의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시이 부대를 일본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린 이는 추리작가로 유명한 모리무라 세이이치(1933~)입니다.저도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요.그가 쓴 <악마의 포식>이 바로 이시이 부대원들을 인터뷰해서 쓴 논픽션 물입니다.우리나라엔 1978년 경 번역되었죠.하지만 이 번역본은 이제 구할 수 없고 그  뒤 해적판 번역이 많이 나왔습니다.저 역시 헌 책방에서 구한 해적판을 읽었습니다.모리무라가  이  글을 연재할 때 항의하는 이들은 "왜 그런 어두운 역사를 굳이 폭로하느냐.너는 일본인이 아니란 말이냐."하는 말을 했답니다.하지만 한 편으로는 몰랐던 사실을 밝혀줘서 고맙다는 사람,또 내가 더 증언할 것이 있다고 손수 연락을 해오는 731부대 출신들도 있었다고 합니다.이 책 뒤편에는 저자가 중국 방문했을 때의 기록이 있지요.사진 중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국전 때 미군이 만주에 떨어뜨렸다는 세균폭탄이었습니다.북경 박물관에 전시된 건데요.저와 같은 학원에서 중국어를 강의하는 20대 중국여성에게 물어봤더니 그 폭탄이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균전을 미국이 했다 안했다 논란이 많습니다.냉전시대엔 우리나라에서 그런 말은 해선 안되었지요.하지만 80년대부터 새로운 시각의 해외 연구물들이 번역되면서 이 문제를 다룬 책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데이비드 콩드<한국전쟁 또 하나의 시각>최지연 역 (과학과 사상1988)이 세균전을 다룬 대표적인 책일 겁니다.이 책은 An Untold History df Modern Korea 중 한국 전쟁 편을 번역한 것입니다.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분단과 미국1945~1950>(사계절). <남한 그 불행한 역사 1953~1966>(좋은 책)로 번역되었습니다.분단과 미국 편에는 1945년 해방직후 미군정이 도착하기 전 조선 총독부와 재 조선 일본군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자세히 나와서 관심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한가지 알려둘 것은 이 책은 미국에선 판금이라서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그만큼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저자는 일본항복 직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일했는데 맥아더가 일본에서 우경화하면서 전범들을 석방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자 이에 굉장히 항의를 한 인물입니다.맥아더 사령부 내의 이런 갈등은 나중에 제가 따로 말씀드리죠.

   세균전에 관한 정보는 부르스 커밍스,존 홀리데이 공저<한국전쟁>태암 1988에도 있습니다.이 책은 방송다큐물로 제작된 것을 책으로 냈습니다.사진이 아주 많아서 도움이 됩니다.당시 세균전 문제는 공산권과 미국 간에 굉장한 격론이 벌어진 쟁점이라서 조사반을 파견한다,기자들을 보낸다 굉장했죠.이 조사반엔 세계적인 학자들도 있었는데 <중국의 과학과 문명>으로 유명한 조셉 니덤도 끼어있었습니다.당시 조사반원들을 찍은 사진에 니덤이 끼여 있죠.하지만 이 책은 콩드의 책과는 달리 미국에 대해 비교적 차분한 논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세균전 문제도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한 흔적이 있죠.

   미국이 세균전을 했다는 공산권의 선전은 날조라는 주장을 한 책도 당연히 많죠.조셉 굴든<한국전쟁> 김쾌상 역 일월서각 1982이 그 대표입니다.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반공 냄새를 풍기면서 다소 조롱하는 투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죠.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흔하디 흔한 반공물로 보면 곤란합니다.맥아더를 이렇게 신랄하게 조롱한 책도 없으니까요.맥아더를 비난하는 이가 반공주의자일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한국 반공 교육 특유의 단세포적인 생각을 못 벗어난 사고방식의 소유자일 것입니다.맥아더에 대한 비난을 부모에 대한 비난을 대하듯 하는 이들은 반공주의자인데 왜 맥아더를 물고 늘어지는 거야! 조셉 굴든 이거 어떤 놈이야? 하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굴든의 책에는 북한과 중국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시이 시로를 석방하라고 도쿄 전범 재판 당시 강하게 압력을 넣은 이가 당시 일본점령 사령관인 맥아더였습니다.그런데다가 이시이가 한국전 당시 방한까지 했으니 이런 저런 무성한 추측이 생기는 것이지요.물론 이시이가 방한했을 땐 맥아더는 해임되고 리지웨이가 후임으로 올 때였고 이때문에 리지웨이는 세균전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닙니다.

  마루타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계기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저 책보다는 정현웅의 마루타라는 소설 덕이지요.한 이십 년 전에 굉장한 베스트 셀러였습니다만 지금은 도서관에서도 퇴출되었군요.물론 위에 소개한 한국전쟁 관련서들도 이젠 모두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습니다.콩드의 책을 번역하려고 세 개의 출판사가 동시에 준비하다가 나누어 번역하기로 정리한 일화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 같습니다.요즘은 이런 책을 출판사가 경쟁하듯이 번역하진 않을 겁니다.이제 그 세 출판사 중에 남은 것은 사계절 밖에 없군요.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8-09-1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지들을 제공해주셔서 감사.^^

노이에자이트 2008-09-12 15:18   좋아요 0 | URL
한일 관계사에 대한 책을 앞으로 많이 소개하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08-09-1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을 보니 군대에서 받은 세뇌교육이 만고불변의 진리인양
반공논리를 답습하는 젊은 예비역들이 떠올는군요. 나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일관계사 중 주로 근현대 부분을 소개해주실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군대에서 반공교육 받고 마치 그것이 철든 증거인 양 20대 초부터 중장년 같은 말씀을 해대는 남자들...우스워서 말도 안나옵니다.한일 관계사에 관해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워들은 피상적인 지식으로 이런 저런 말은 많지만 실제로 아는 것은 별로 없는,그러나 알아야 할 사건이나 인물 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순오기 2008-09-1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그러니까 내가 중고등때(?) 라디오 연속극에서 731부대를 다룬 게 있었어요. '일제 36년사'라는 제목이었던 거 같아요. 윤봉길, 안중근~ 이런 분들 이야기도 나오고~ 열심히 들었던 프로였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이이녕 극본이죠.일제 36년사...저는 직접 듣진 못하고 10여년전 헌책방에서 전집을 구해 읽었어요.제가 시나리오 작가들이 쓴 역사물을 꽤 많이 모아 읽었죠.나중에 이이녕 씨는 <임정첩보36>호에선 이시이 시로를 암살하려는 독립운동가를 그렸는데 그 모델이 실제론 친일파라는 둥 유명한 논란을 일으켰죠.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