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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씨의 주장 중 검토해야 할 것

1.정조가 노론 계열의 사주로 독살되었다는 설은 다산을 비홋한 몇 몇 남인 계열 학자들에 의해 전문형식으로 기록되어 있고 옛부터 구전되던 말이다 ----다산의 무슨  책에 그런 내용이 있는가.이인화 씨도 자기 고향에 이런 전설이 어른들 사이에 구전되어 온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2.왕권을 제약하는 입장이며 개화파의 선구가 되는 노론,왕권의 신장 및 절대주의 왕정 아래서의 부국강병을 이상으로 하며 수구파의 핵심을 이루는 남인 --- 이런 계보 파악은 이상하다.위정척사파는 노론이 아닌가? 이항로,최익현은 분명 노론이다.이들이 어찌 개화파라고 할 수 있나? 어윤중이나 박정양을 노론으로 분류하는 거야 그들이 개화파니까 문제가 없다고 쳐도.

그 외 머리 속에 떠오른 대로 써 본 것.

정조는 5경과 같은 고문에 나오는 주나라를 모범으로 삼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려 했고 이는 4서를 정통으로 신봉하는 노론 사대부들과 이념상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인화 씨는 정조의 왕권강화책을 박정희 통치와 동렬에 놓고 있다.절대권력은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통과의례라는 주장은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

경종은 이복동생(훗날이 영조)이 준 게장을 먹고 죽었다.경종의 어머니는 희빈 장 씨.그녀의 지지자들은 남인.희빈 장 씨가 주술로 저주를 걸어 인현왕후를 해꼬지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이가 최무수리인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최 씨가 경종에게 독약 든 게장을 보내게 했다는 소문은?

정약용이 천주교도란 이유를 들어 처음으로탄핵한 이들은 노론이 아니라 같은 남인 계열이었다.물론 이땐 금방 복귀하긴 했다.남인들이 천주교도가 많다는 선입견이 많으나 남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천주교도에게 관용을 베풀진 않았단 사실은 이 시대 공부하는 초보자가 명심해야 할 것.

순조  시대 때 대박해를 맞은 남인은 대원군 때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대원군 주변에 모인 남인들의 성향은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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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8-1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답도 달아주세요.^^ '절대권력은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통과의례라는 주장'은 장정일의 <공부>에서 접했는데, '원조'가 따로 있나요? 러시아사와 관련해서도 흥미를 끄는 주제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화 씨도 했고 월간조선에 기고하는 이들도 그런 글을 많이 씁니다.일본의 '친한파'들도 자주 거론하구요.하지만 절대권력 뒤에 민주주의가 오듯 민주주의 뒤에 다시 절대권력으로 역전되기도 하죠.그러면 이번에는 그것도 불가피하니까 민주주의가 정당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요? 소모성 악순환인데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입니다.시간상의 선후관계일 뿐인데 거기서 정당성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현대사에선 이승만 박정희 정당화론에 이용되기도 하구요.특히 이런 것은 근대화 문제가 겹치는데 아예 탈근대론으로 접근하면서 근대니 전근대니 하는 논쟁 자체를 해체하는 이론을 도입해보면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될까 하는 문제도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08-08-1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의 인용은 보다 구체적인데, 정조의 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에 박정희가 요구되었다라는 주장입니다. 근대화에는 절대권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논리하에... 탈근대론으로 접근하신다는 건 설명이 좀 필요한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근대 문제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통인데 최근엔 이행논쟁이 기반하고 있는 전제 자체인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길을 걸은 영국경제사라는 명제 자체가 실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이죠.제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글이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삼인 에 나온 카터 에커트의 글과 부르스 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중 제1장 2장의 일제시대 분석입니다.경제사 쪽을 한동안 소홀히 해서 공부를 다시 하려구요.김기봉,이영석 등 탈민족,탈근대화론자들의 저서도 일단 한번 봤습니다.노골적으로 정조의 실패를 고종과 박정희가 이어 받아 근대화에 나섰다는 식의 이태진,한영우 류의 보수적 민족주의(친미 사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는 비위에도 안 맞고 그들의 학문적인 능력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에 나온 논문과 비교해보면 수준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의 공부>에서 그가 인용한 엘리자베스 시대 문예부흥에 관한 글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생겼어요.사실은 그는 이인화 류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글을 썼는데 막판에 왜 그런 글을 인용했는지 모르겠어요.마치 문화가 발전하려면 사상 탄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요.박정희 숭배자들에게 알린다고 해놓고 왜 그런 글을 인용했는지 모를 일이죠.그리고 그 스트래치 글 앞에 이덕일을 인용했는데 이덕일은 정조를 하늘 같이 섬기는 저술가예요.차라리 정조의 왕권강화를 비판하려면 강명관이나 이한우를 인용했으면 좋았을텐데요.마치 이덕일이 정조를 비판하는 저술가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파란여우 2008-08-16 22:56   좋아요 0 | URL
[장정일의 공부]에서 저도 그 부분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여겼는데
문예부흥 이야기에 절대왕조의 지원 이야기가 마치 정당화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왔었습니다. 이덕일이 정조의 왕조체제 유지 방안으로
문체반정을 시도한 것을 당연시하게 여긴 비슷한 맥락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덕일은 정조를 비롯해서 광해군도 상당부분 연민의 눈으로 보는 입장으로
저는 그리 보여집니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다보니 부정적인 그림자가 그만 가리워지는데 이덕일씨는 그런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탁월한 작가죠.
정약용 형제를 거의 무결점의 인물로 그린 책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얘기가 이덕일로 나아갔는데 황종희 관련 좋은 책 좀 소개시켜주세요.
이뭐 서재질은 자주 하지 않으면서 이리 졸라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대목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장정일의 성향으로 봐서 독재를 정당화할 리가 없거든요.아마 본인도 책이 나오고 나서 이거...잘 못한것 같다고 여겼을 거예요.
이덕일 씨가 정조살리기에 매달리는 자세는 한영우나 이태진의 고종 살리기와 비슷하죠.
윤사순 씨는 박지원의 문체론이 이탁오와 비슷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정약용의 문체론과는 정 반대죠.
 

서점에서 아동용 서적을 관심있게 본다.나는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반성도 해보고 어린이 청소년들이 이런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하기도 해서이다.특히 우리나라 전기물들은 위인들은 모두 아무 인간적인 약점이 없는 어마어마한 인물로만 그려져 있다.하지만 위대한 인물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책을 발견할 때도 있다.

김종광<박지원>도면회 감수 (파랑새) 제 16장 '정조임금이 반성문을 쓰라고 강요하다'는 특이하다.문체반정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나는 제목이다.저자는 여기에서 정조를 분명하게 사상을 억압하는 주체로 묘사했다.정조를 개혁과 진보의 상징으로 보는 세간의 평가와는 딴판이다.저자는 문체반정을 '자유로운 비판정신이 두려운 기득권 세력들이 연암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젊은이들 사이에 연암의 인기가 많아지자 이를 탄압하려는 시도'라고 못박았다.더군다나 이 기득권 세력의 중심을 정조라고 분명히 썼다.연암이 즐겨 쓰는 솔직하고 구수한 문장을 속되고 저속하다고 여긴 이들의 뜻을 수용하여 정조는 오염되지 않는 순수문의 교본을 쓰라는 명령을 내린다.그 명령을 받아 이른바 순수한 문체의 교과서를 써서 올린 이들이 이서구와 정약용.이서구는 한때 박지원의 후배이기도 했는데...

이 책에는 정조의 압박에 반성문을 쓴 다음 박지원이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대목이 나온다.특히 그의 동료인 이덕무는 반성문을 제출한지 며칠 안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와병중이었던 이덕무에게 임금의 사상탄압은 엄청난 정신적 압박이었으리라.울화통이 터져 죽었다고 해도 좋다.정조를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을 융성시킨 진보적 개혁군주로 알고 있는 성인들도 이 대목에선 정조가 이럴 수가...하고 놀랄 만한 장면이다.

이 책엔 이 당시 정약용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단,연암식 문체에 맞서 정조의 뜻을 수용하는 전통적이고 '순수한'교본을 썼던 그가 어떠했으리라고 짐작은 할 수 있다.흥미로운 것은 같은 출판사에서 정약용 전기도 냈는데 거기엔 문체반정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우리나라에는 정약용은 신성불가침의 위인이다.그런 그가 사상탄압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해봐야 복잡한 문제만 일으킬 것이니 대충 넘어가자는 의도인지? 호기심이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 출판사의 박지원 전기를 읽고 정약용이 이 때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정약용 전기를 읽다가 어...왜 문체반정 이야기가 없는거야....하고 아쉬워하지 않을까?

고정관념은 굳은 껍질이다.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이런 껍질을 벗고 참모습을 바로 보기 위해서이다.역사적 인물을 보는 시각은 더욱 그렇다.우리는 실학자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가 정약용과 박지원이다.하지만 실학이란 범주로 묶기엔 이 두 사내는 너무 다르다.특히 정조를 막연히 개혁적인 군주라고 알고 있는 이들은 문체반정 당시 박지원을 압박하는 그의 모습을 알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요즘 노론 때리기가 유행이다.보수 수구이며 일제 때 친일파가 많았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정조암살도 노론이 주도했다는 설도 있어서 드라마나 영화,소설로도 나온다.이인화<머나먼 제국>은 그 유명한 사례 중 하나이다.하지만 박지원은 서인 중 노론이었고,그보다 더 앞 선 세대인 박세당은 서인 중 소론이었다.이 둘은 파격적인 사상때문에 핍박을 받았다.박세당은 사문난적이란 욕까지 먹지 않았나.노론하면 송시열만 아는 이들은 박지원이 노론이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노론은 수구보수이데...하면서.하지만 사람은 긍정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그 혼란이 두려운 이는 고정관념이라는 안락한 둥지 속에서 안 나오면 된다.긍정적인 혼란을 주는 책이 어린이용이면 어떻고 청소년용이면 어떤가.애들 책 읽는 게 부끄럽다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부끄러워야 할 이유가 있는가.한 번 크게 심호흡하고 이 어린이용 박지원 전기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특히 요즘 신문 칼럼이나 시론 등에 진보인사고 보수인사고 간에 정조의 리더십을 배우자느니 정약용의 개혁사상을 배우자느니 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런 글에 싫증을 느낀 이들은 어린이 책에서나마 신선한 자극을 맛본다고 손해보는 일은 없으리라.

****추신---정조의 문체반정을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는 강명관<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중'책을 탄압하는 호학의 군주 정조'편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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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0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생각이 깊은 아이들은 제법 의문을 제기하겠는데요~~
누구든지 한면만 보면 제대로 알기가 어렵겠죠~~ 좋은 지적에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다른 분들의 서재, 특히 로쟈님 서재에서 자주 뵌 친숙(?)한 이름이라 반가워서 달려와 봤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반갑습니다.문체반정은 어른들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님도 그렇고 순오기 님도 그렇고 여러분 덕에 많은 걸 배웁니다.종종 들러주세요.저도 들를테니까요.
 

어린이 책이라고 무시하지 말지어다.어릴 때 읽을 땐 몰랐던 사실이 어른이 되어 읽으니 나타나는 때도 있다.어릴 때 읽어야지 하다가 못 읽은 책,축약판으로 읽었는데 어른이 된 뒤에 완역판이 나왔다면 망서리지 말고 읽어라.뜻 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쿠오레>.<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의 번역본도 있었다.알고 봤더니 지은이인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1846~1908)는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맞서서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쿠오레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소설로만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일기체인 이 소설 구석구석에 오스트리아의 압제와 이에 저항하는 애국자들을 칭송하는 대목이 있다.마지막 쯤에 가서는 위대한 애국자 가리발디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태리인들의 추모 장면도 있다.

어렸을 때 만화로도 많이 본 <엄마 찾아 3만리>는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이 <쿠오레>에 일화로 나오는 어느 이태리 소년의 이야기.기억이 어렴풋하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실제로 19세기 유럽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민  간 이들이 많았는데 북미 쪽 뿐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나 칠레 쪽으로 간 이들도 많았다.지금도 이들 나라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 비해서 혼혈족이 없고 백인주민이 대부분인데 그 원인은 이들 나라가 주로 노예가 아닌 유럽에서 온 백인들의 노동력으로 산업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책 이름이나 주인공 이름은 아는데 그 작가는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스쿠루지 할아버지는 구두쇠의 대명사지만 그 소설의 원작자인 찰스 디킨스는 빅토리아 조 소설가가 그다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독자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피노키오의 작가를 아는가? 역시 가물가물한 이들이 많다.카를로 콜로디(1826~1890)가 바로 그 작가다.이 작가 역시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참전한 용사 출신이다.

오스트리아 하면 그냥 음악의 도시.수도 비인이 아름다운 나라 정도로 아는 이들에게 이 나라가 한때 유럽을 주름잡았던 강국이었으며 프로이센을 꼼짝 못하게 하고 발칸반도를 둘러싸고 터키와 러시아와도 맞선 나라였음을 알려주면 그제서야 오...그렇구나...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더군다나 이탙리아를 지배했다니...

이탈리아를 사랑한 외국작가가 많았다.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를 남겼고 토마스 만 역시 미소년이 나오는 <베니스에서 죽다>를 남겼으며 이탈리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스탕달은 <파름의 수도원>을 남겼다.지금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지만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파울 하이제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주옥같은 중단편을 남겼다.<고집장이 아가씨>의 배경은 가곡으로 널리 알려진 소렌토가 배경이고 출생의 비밀(우리나라 방송작가들이 좋아하는 소재)을 다룬 <포도원 지기>는 티롤지방이 배경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독립전쟁을 정면으로 다루어 유명한 외국작가는 역시 <등에>를 쓴 보이니치일 것이다.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반동적인 신부였다.민족해방 전쟁을 반대하는 철두철미 반동적인 신부.2005년 연말 무렵 이 책을 세번 째 읽었는데 추기경 취임을 앞 둔 정진석 당시 서울 대교구장이 사립학교 개정을 주도하는 자들은 학교를 좌경화하려는 자들이라는 주장을 월간조선 기자에게 했다.그때부터 그의 주장과 소설 속의 그 반동적인 신부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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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8-0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에>는 2006년에 다시 나왔었군요. "1897년 출간 이래,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구 공산권 사회에서 커다란 대중적 인기와 명성을 얻은 혁명소설"이란 걸 덕분에 알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영화음악도 있나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근데 신판이 나왔다 하면! 너무 비싸요.
아...쇼 형님은 제가 좋아하죠.<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은주 누나가 이병헌과 춤출 때 나온 곡이 재즈를 위한 발라드죠.은주 누나 보고 싶어요.
 

시위 민심 따로, 투표 민심 따로라는 말은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에도 그대로 드러났다.청와대가 안심한다고 하니...투표율도 엉망이군.잘 사는 나라 거의 대부분은 투표율도 높다는데 미국의 아주 못된 면만 모방하여 투표 안 하는 것이 선진국의 조건인 줄 아는 이들이 이다지도 많은가.

사회변동,혁명 하면 러시아 혁명이나 중국혁명을 많이 떠올리겠지만 공부를 하려면 1848년 혁명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그렇다고 나 역시 실천은 안 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공부 계획이나 정리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보기로 하겠다.이번에는 혁명자체보다는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공부해보기로 했다.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정문길 씨는 1980년대 한국의 맑시즘 수용과정을 꼼꼼히 살피면서 공산당 선언의 번역본은 많지만 정작 선언이 나온 1847-48년 전후 시기에 맑스 엥겔스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고 지적했다.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바탕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말이니까.그 지적을 보면서 우선은 1848년 혁명 자체보다는 인물 위주의 연구를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먼저 맑스,엥겔스의 1848년.맑스는 직접 거리로 나서지는 않았다.엥겔스는 직접 무장봉기에 나섰다.군사분야 연구에 관해선 엥겔스가 더 선배다.이는 레닌도 강조한 것 같다.여하튼 두툼한 전기가 필요하니 우선 소련 마르크스 레닌 연구소 판 <마르크스>평전 김라합 역 (소나무)1989년과 동 연구소의 <엥겔스>전진 출판사1990년 것을 참고해야겠다.지성사가의 평전인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전기는 당시 사상사적인 면에서 접근할 때 참고가 될 듯하다.이거 읽은지 15년이 넘었으니 벌린의 그 박식한 솜씨를 어느 정도나 맛보았는지 의심스럽다.지금 기억에 남는 건 게오르그 루카치를 루칵스라고 표기한 것 정도.번역자가 신복룡 씨인 것도 특이했다.그는 한국 근현대 정치사 쪽인데...아루래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찢어번역을 시킨 것 같다.

토크빌은 어떻게 1848년을 해석했는가가 관심이다.그의 혁명관은 러시아 혁명을 연구하는 비마르크스 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특히 혁명에 프로레타리아가 전면에 등장하자 강경진압을 찬성했다고 하니 그런 면에선 결코 온건주의자가 아니다.그의 회고록이 명저라고 하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니 을유사의 토크빌 평전에 의존하는 수 밖에.그리고 토크빌을 연구한 국내 학자들의 책을 알아봐야겠다.

혁명에 직접 참여한 르낭,라마르틴,블랑키,푸르동 등의 행적도 연구대상이다.혁명이 왜 실패했는가는 이들의 좌절을 연구하면서 드러날 것이다.특히 이들의 공통점은 지식인이라는 점.지식인과 혁명이라는 고전적인 주제의 사례이기도 하다.할 드레이퍼는 <사회계급의 정치학>(국역본 제목은 <계급과 혁명> 사계절)에서 직접행동을 만능으로 하면서 지식인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이들을 비판했지.깊이 생각해 볼 문제.

미슐레는 이때 뭘 했지? 알아보고 싶다.우선 <핀란드 역으로>를 읽자.

게르첸과 바쿠닌에 대해서도 알아봐야지.혁명관에 대한 이들의 대립은 중요하다.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역시 명저는 에드워드 카의 <낭만의 망명객>,<바쿠닌 전기>이다.아나키스트들의 혁명관은 분명히 이상한 데가 있다.바쿠닌은 계획만 거창했다는데 ....게르첸은  이 혁명을 기준으로 회의주의자가 되었다.국내 연구진으로는 게르첸과 1848년을 연구한 이인호<지식인과 역사의식 >속의 논문을,그리고 최근 번역된 이사야 벌린의 <러시아 사상가>들을 봐야지.아...그리고 슬라브주의자들의 반응도 검토해보라.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지? 이때 이미 보수화되었을까? 그의 전기는 나도 많이 갖고 있으니 차분히 알아봐야겠군.

그리고 랑케를 비롯한 독일 역사학파 학자들도 소홀히 넘어갈 수 없다.이민호<역사주의>는 참 구입을 잘 했다.도서관에서 폐지처분으로 가려는 것을 공짜로 얻었는데 정말 유용한 책이다.프로이센 보수파들의 혁명관을 이처럼 유용하게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내 서가에 있으니 든든하여라!

호기심 차원이지만 반드시 알아보고 싶은 이는 리하르트 바그너이다.이 사내는 직접 이때 무장봉기에 가담했다 한다.그런 그가 혁명과는 담을 쌓은 국가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이 정말 궁금하다.남들은 바그너와 니체의 만남과 결별에 관심이 많겠지만.우리나라 사람이 쓴 바그너 전기가 있었다.금남로 4가의 서점에 있었는데  가본지 오래되어 그 책이 지금도 있으려나.우선 도서관부터 검색해야지.

그리고 대미! 이탈리아 독립운동가들의 1848년 경험,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탄압.마치니 평전 읽은지도 꽤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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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7-3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정권이 독서가들에게 자꾸 옛책을 권하는군요.^^;;
리하르트 바그너는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만, 짧게 언급했었는데
스쳐 지나가듯 읽어서-요한 슈트라우스의 변절만 당시에 관심있게 읽어서요-
다음번 페이퍼를 기대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요한 슈트라우스,,,그럼 파란 여우 님 덕에 이 사나이에 대해서도 한 번 알아보고 싶네요.

로쟈 2008-07-3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프강 몸젠의 책은 어떤가요?..

정병일 2008-07-3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 소개한 책들은 모두 20세기에 번역된 겁니다.몸젠의 1848년은 당연히 안 봤구요.예전에 그의 저서 중엔 베버에 관한 논문만 봤습니다.<막스 베버의 보편사상 및 정치사상>-마르크스냐 베버냐(홍성사)에 있어요.개정판 낼 때 출판사를 바꿨죠.
제가 본 1848년에 관한 책은 고노 겐이치<현대사의 서막-유럽 1848년>우리 기획 옮김(거름)1983.이 책의 강점은 부록에 1840년대의 유럽 연대표가 있다는 거죠.도표로 영불독 그리고 이태리,오스트리아,동유럽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참 편해요.역사 공부할 때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연표가 있으면 정말 좋죠.

로쟈 2008-07-31 16:48   좋아요 0 | URL
본명이세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그인 안 하고 하니 그렇게 되었네요.모른 척하세요.모처럼 평일에 쉬는 날 돼서 낮에 인터넷하다가 이런 일도 있군요.저도 로쟈 님 본명 아는데 뭘...
 

이탁오는 중국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랜동안 금기시된 인물이었다.한국의 이탁오라 할 만한 허균도 오랜동안 우리나라에서 기피인물이었다.연암 소설 연구로 유명한 이가원 씨가 일제시대 때 허균을 연구하려고 문헌을 찾는데 통제구역에 그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반항적인 사상가였기에 그런 인물을 연구하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나 보다.또 이가원 씨가 중국의 유교에 대해 알아보려고 1969년 대만을 갔는데 역시 이 곳에선 이탁오 책이 금서였다고 한다.명청시대를 넘어 이렇게까지 그의 사상은 끈질기게 금서의 딱지가 붙었다.

허균이 처음 중국을 방문한 해는 1597년.두 세번째 방문인 1615-16년 경에 이탁오의 저서를 사서 국내로 들여온 것 같다.유자를 비꼬는 행동이나 글은 이탁오를 알기 전부터 허균의 개성이었는데 이탁오가 자신과 비슷한 면모를 보인 사실을 알고 더 그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지금 전하는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곡>엔 이탁오에 대한 글이나 책을 인용한 대목이 없다.이는 허균이 처음 문집을 엮었던 1611년까진 이탁오의 책을 읽지 않은 증거가 된다.하지만 허균이 죽던 해에 엮은 <한정록>권13에는 이탁오의 책이 한구절 인용되어 있다.여기엔 이탁오가 아니라 이 씨 <분서>라고만 되어 있다.슬프게도 허균 역시 반역죄로 사형당한 뒤엔 기피 인물이 되어 그의 글을 인용하는 이들은 그냥 허씨라고만 썼으니 기이한 인연이다.

허균이나 이탁오나 금기시된 인물.허균이 이탁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슴을 알게 된 것도 1980년대에야 비로소 가능했다.사제지간인 이가원,허경진이 허균의 책을 뒤지고 뒤져 찾아낸 것.한정록 전 20권(물론 요즘의 권이 아니다)중 권 13에는 옛사람들의 취미 생활 49칙을 소개했는데 여기에서 이탁오의 글 인용을 찾아낸 것이다.

이가원의 허균 연구서가 <유교반도 허균>이다.반역의 무리...의미심장한 제목 아닌가.중국에서는 이탁오를 일컬어 유교반도라고 했는데 조선에서 이에 대응하는 인물이 허균이라는 의미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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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7-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교반도 허균>이란 책도 있군요! 덕분에 알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7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아시아 냄새나는 책도 소개하려구요.이 책은 분량도 얄팍해서 읽는 데 큰 부담은 없어요.

파란여우 2008-07-2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항아들은 당사자에게는 고달픈 삶이었지만 후대의 관찰자들에게는 또 매력적이라는.
저도 덕분에 책 한 권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더위에 무탈하시길 빕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균은 성 해방은 주장했지만 본인만 즐기고(여성편력이 꽤 화려했죠)아내에겐 기회를 주지 않은 듯합니다.하하하.결국 마지막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내연 관계였던 여인의 실토...친구였던 이이첨이 정적이 되면서 그의 운명은 비참하게 예정되어 있던 게 아닐까요? 친구끼리 광해군에게 딸을 서로 후궁으로 바치려다가 사이가 틀어졌으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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