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등여행기 - 도쿄에서 파리까지
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여행을 할 때, '예전이 좋았는데….' 하며 아쉬움을 표현하게 되는 때가 있다.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훼손되고 파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자그마치 1931년의 일이다. '1931년 11월, 무작정 시베리아 삼등열차에 올라타고 떠난 유럽 여행기'라는 소개에 구미가 당겼는데, 그 당시에는 부산에서 기차로 만저우리에 도착,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던 시절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여행담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도쿄에서 파리까지 삼등여행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하야시 후미코.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다.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사후에도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됐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책소개만으로 충분히 발동이 걸린다. 요즘 사람들의 여행기는 흔하지만, 그 시절에 흔치 않은 여행이었기에 더욱 궁금해서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시절 열차 삼등칸은 어땠을지,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1930년 자전적 소설 『방랑기』가 베스트셀러(60만 부)가 된 덕에 인세를 손에 쥔 하야시 후미코는 이듬해 11월, 그토록 염원하던 파리 여행을 감행한다. 외국에 가는 것도 흔하지 않은 시대, 더욱이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며 전쟁의 서막이 오르던 때 여성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이 용기 충만한 스물여덟 살의 여성 작가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죽는 건 매한가지라며 트렁크 네 개를 들고 안전하고 편안한 일등칸이 아닌 삼등칸에 몸을 싣는다. 그것도 돌아올 여비도 없이. (출판사 서평 中)

 
여행 기록의 의미가 큰 책이다. 그 시절의 풍경이기 때문에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다르게 들리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시대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시베리아 횡단부터 파리 모습까지 귀담아 들어본다. 도쿄에서 파리까지 약 313엔 29전이 들었다는 상세한 여행 경비 내역도 신기하기만 했다. 여행비를 기록한 수첩 사진도 1931년 11월의 시간을 잘 담아냈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려주는구나!' 싶게 아주 소소한 이야기까지 풀어내고 있으니, 그 시절의 생생한 여행담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하다. 독자에 따라 눈에 확 띄는 부분이 다를 것인데, 나는 '파리 부엌, 도쿄 부엌'을 재미나게 읽었다. 그 시절의 파리와 도쿄, 식료품 가게, 레스토랑에 대한 생각, 부엌에 대한 이야기 등을 비교해놓아 흥미롭게 읽게 된다.
 
"사람은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일을 이야기한다. 뜰에서 딴 과일에 대해, 푸른 이끼 사이에서 핀 꽃에 대해." 베르하렌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 나에게는 여행을 가서 객지의 허망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찾아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리운 천국이기에 여행벽은 점점 심해집니다. 내 영혼은 애수의 소용돌이 안에서만 생기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젠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행만이 내 영혼의 휴식처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219쪽_후기를 대신해 中)
저자는 물질적으로 사치스러운 여행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여행 경험만은 제법 풍부해 그 추억은 생애에 걸쳐 가장 부귀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 시절에 흔치 않은 여성 나홀로 여행이라는 점도 놀라운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파리까지 갔다니 궁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행을 좋아하던 한 여성의 1931년 여행기라는 데에 의미가 있고, 그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보며 읽는 맛이 있다. 그 당시의 삼등열차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궁금증을 해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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