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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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지내왔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곳에서 살아왔고, 때로는 지긋지긋하기도 한 공간이었기에 언제나 밖으로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보다도 공간의 소중함을 알 것 같다. 그 곳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기분을 느꼈음을 어렴풋이 알 듯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건축가'의 에세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생겼다. 과연 건축가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는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유현준. 글 쓰는 건축가, 인문건축학자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자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태어난 직후에 만나는 부모님부터 시작해 형제, 친구, 애인, 선생님들과 함께한 기억은 찰흙을 빚는 손처럼 한 사람을 만든다.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도 한 사람을 이루는 모태가 된다. 이런 모든 경험이 모여 한 명의 사람을 만든다. 시간을 보낸 공간도 그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나를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13쪽)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1장 '나를 만든 공간들: 유년 시절', 2장 '나를 만든 공간들: 청년 시절', 3장 '보물찾기: 내겐 너무 특별한 도시의 요소들', 4장 '보물찾기: 연인을 위한 도시의 시공간', 5장 '보물찾기: 혼자 있기 좋은 도시의 시공간', 6장 '보물찾기: 일하는 도시의 시공간'으로 나뉜다. 마루, 마당과 형, 복개되기 전의 개천, 지하철 1호선, 신사시장의 타일 바닥, 어린이대공원 놀이터, 시골집, 외갓집, 충무로역, 산토리니, 어느 전봇대 밑의 땅, 마포대교 난간, 늦은 밤 공항, 어릴 때 살던 동네, 계단 있는 길, 전봇대와 가로등, 테이블 모서리, 나무 식탁, 서울역사 옥상 주차장, 재래식 시장, 사무실 내 자리와 SNS, 남산순환도로 등의 공간이 담겨 있다.


저자가 '지금의 나를 만든 공간들과 내가 좋아하는 몇 곳을 소개'한다는 프롤로그의 글을 보고 나서야 괜찮은 생각이라 여겼다. 내가 있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작정 밖으로만 나돌았던 나의 마음을 가라앉혀보며 책장을 넘긴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생각나는 부분이다. 내가 왜 이 책을 읽는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짚어준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여러분만의 공간을 찾고 주변에 나누기를 바란다. 남들이 정한 '핫플레이스'만 찾아다니는 것은 기성품만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 이 도시에서 여러분만의 공간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를 안고 있는 이 도시가 말을 걸어올 것이다. (16쪽)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을 읽을 때 나의 자세는 두 가지이다. '나한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지?'라는 기분이 들어서 글이 와닿지 않을 때가 있고,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더 듣고 싶어지며 열린 마음이 될 때가 있다. 이 책은 후자다. 저자의 어린 시절을 들으며 그 공간의 사진을 보니, 내가 외면하고 별 의미를 담지 못했던 공간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사소한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어 의미를 부각시키는 듯하다. 저자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공간들이 한 권의 책으로 재창조되는 것이고, 나에게도 오랜만에 그곳들을 소환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채색을 해야 한다. 채색을 하는 붓은 전복대 같은 기둥이 될 수도 있고, 가로등일 수도 있고, 의자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정도의 변화는 여러분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9쪽)

읽다보니 알겠다. 왜 이 책에 끌려들어가 문장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이 책에는 저자 자신만의 이야기가 전부인 것은 아니다. 차근히 읽다보면 나만의 의미 있는 공간을 떠올리고 찾아낼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어본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우린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대낮처럼 밝을 수 없고 약간의 별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별빛들로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듣는 별자리 이야기는 먼 옛날 배를 타고 정처없이 바다를 떠돌았던 뱃사람이나 들판에서 양을 치던 사람들이 홀로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희미하지만 검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고, 잇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장소는 나를 만든 공간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이다. 그 공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끔씩 있는 희미한 별빛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희미한 별빛들을 연결해서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려는 시도다.

(411쪽)


메마르고 각박하다고만 생각했던 공간과 시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 둘도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하나씩 떠올려본다.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책 전체적으로 감성적인데다가 제본도 남달라서 두고두고 추억을 꺼내보듯 꺼내들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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