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소설이 있다.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고, 내가 평소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담았는데도, 푹 빠져들어 읽는 소설 말이다. 이 소설이 그랬다. 장기는 두는 방법만 알 뿐, 관심도 재미도 못느낀다. 그런데 소설집을 펼쳐들자마자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단편소설『장기 호랑이』를 단번에 읽게 되었다. 소설가라면 독자가 관심 있게 생각하는 소재는 기본, 뜨뜻미지근 시큰둥한 소재마저 눈여겨볼 수 있도록 시선강탈을 해야하나보다. 그래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도 시간낭비하지 않은 것 같은 후련함을 느끼게 해주니 말이다. 이 소설처럼 말이다.


이 책은 김종광 소설집이다. 처음에 실린『장기 호랑이』말고도 일곱 편의 작품이 더 있으니, 총 여덟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장기호랑이, 범골사 해설, 범골 달인 열전, 놀러 가자고요, 봇도랑 치기, 산후조리, 만병통치 욕조기, 아홉 살배기의 한숨 등 여덟 가지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종광. 1971년 충남 보령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1998년 계간《문학동네》여름호로 등단했다. 신동엽창작상과 제비꽃서민소설상을 받았다.

변명을 하자면, 내 부모의 인생이 기록되어야만 하는 귀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줄기차게 썼다. 내 부모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골에서 한평생 최선을 다한 농부이기에 기록되어야만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마치 내 문학적 탐구의 그 모든 것인 양 늘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기회만 닿으면 두 분의 삶을 궁구하려고 했다. 자식 된 자로서 제 부모의 삶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나는 유독 집착이 심했던 게다.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어버이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루하고 사소한 농민으로서의 삶을 경이롭고 기억할 만한 사건의 연속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덜 썼다고 생각한다. 어버이에 대해 기록한 바를 총집합하고 재구성하여, 어버이의 평전과도 같은 소설을 쓸 작정을 하고 있으니.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는 산문집에 쓴 글)


저자는 이번에 골라 묶은 태반이 위와 같은 마음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여전히 농사짓고 소를 키우신다고. 처음에 실린 소설『장기 호랑이』에서 집중하며 읽은 속도감에 힘입어, 다른 단편들도 순식간에 읽었다. 소설을 읽다보니 소재를 멀리에서 찾지 않고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찾았으면서도 기가 막히게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울토박이었다가 이주를 했다. 가끔은 이곳 어르신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주로 자연풍광과 책읽기를 즐기며 아주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나서 솔직히 어려움은 몰랐다. 문제는 매일같이 사람들과 부딪치고 있는 요즘이다. 갑작스레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고 보호자로 지내던 와중,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서울로 가야할까 고민한 적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들 뒷담화가 일상인 것과 개인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문제,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 뒷담화를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을 하나씩 뜯어가며 난도질을 하는데 이상한 나라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낯설고 마음이 황폐해지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을 마주대하면 아주 절친이 따로 없다. 그렇게 뒷담화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보니 바로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더욱 집중해서 읽게 되나보다.

어머니 수다에 따르건데, 노인네들이 입심은 좋아서, 마을회관겸 경로당이든, 마늘 까는 자리든 한과 공장이든 마을버스 정류장이든, 청소년 수련원 이용자 밥해주는 주방이든 서너 입 이상 모이기만 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제외한 온 동네 사람을 하나씩 골라내 짚단처럼 엮은 뒤 성능 좋은 '뒷담화' 콤바인에 처넣고 돌려대는 모양이다. (190쪽)




또 어르신들의 뻔한 레파토리도 이 소설을 읽으며 만나게 되어 웃음이 난다. "내 인생 얘기를 해달라고? 허어, 그게 한두 시간으로 되나. 소설책 백 권으로 써도 모자랄 것인데!" 다들 이런 식으로 말했지만, 노인네가 몇 시간 동안 염불한 이야기를 녹취해보면 한 여남은 가지 얘기만 되풀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53쪽) 실제 그런 어르신들을 보아도 시간이 모자라 다 듣지 못했는데, 어쩌면 길고 긴 이야기를 몇 마디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주는 재미는 이렇게 읽으면서 현실 속 누군가를 떠올리며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전혀 느낄 수 없게, 꼭 실제 있었던 일을 듣는 듯한 느낌이고, 오늘 이웃집 누군가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이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놀러 가자고요』라는 단편 또한 시골의 일상을 잘 보여주는 듯 했다. 음성지원이 되는 듯이 생생하게 와닿는 것은 물론,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떠드시는지 알듯도 하다. 이건 실화다 실화. 지금 이 순간에 어디선가 충분히 있을 법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저자의 출생지를 다시 한 번 보면서 계속해서 그곳 이야기를 써나가기를 기다리게 된다. 또한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으니, 어쩌면 나에게는 중간 역할을 하는 매개가 필요했던가보다. 이 소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세대 차이, 지역 차이를 넘어 하나로 엮는 듯한 느낌이다.


아찔한 속도감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긴다. 그러면 노태훈 문학평론가가 들려주는 작품해설의 첫 문장을 만난다.

이 거침없이 콸콸 쏟아지는 이야기의 행렬을 통과해 여기 도착해 있다면 혹시 김종광을 소설가라기보다 재담꾼이나 만담가 혹은 해설사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인물들의 사연과 역사는 마치 이 기회만을 기다렸다는 듯 폭발적으로 이어지고, 또 그 이야기들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허구의 영역이라 쉬이 생각되지 않는다. (317쪽)

그리고 이미 다 읽은 다음에 보았지만 작품해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이 소설을 읽었다. 무방비 상태로 그저 이야기에 몸을 맡기며 읽어나갔다. 그러다보면 후딱 시간은 흐르고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소설의 역할이 소설 속이야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이해하기 힘들었던 무언가를 마음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 책이 그런 역할을 아주 잘~ 충분히 했다고 생각된다. 저자의 팬이 되어버린 예감이 드는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