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말 한마디
임재양 지음, 이시형 그림 / 특별한서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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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후배 의사가 쓰고 선배 의사가 그린 에세이다. '의사' 하면 차갑기 그지없는 냉정함이 떠오르기도 하고,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풀어놓을 사연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의사의 말 한 마디》를 읽어보게 되었다.


병원에서 환자 보호자로 살아가는 세월이 쌓이다보니, 의사의 말 한 마디가 주는 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같은 말도 '그렇게밖에 말 못하시나요?'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오르는 것을 꾹 참으며 견뎌내야 할 때도 있고, 의사가 무심결에 툭 던지는 말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먼저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임재양 의사도 이렇게 말한다.

의사들은 환자를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몇 개월 남았다고 얘기하는 것 또한 피해야 합니다. 설혹 최악의 상태라 하더라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덜어주어야 하고 끝까지 희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의사가 포기한 환자는 불안에 떨면서 사이비 치료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35쪽)


 

 


이 책의 글은 임재양. 그림은 이시형이 맡았다. 임재양은 유방암 검진 전문병원인 임재양 외과의 원장이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환자의 고통을 실험하며, 의료는 의술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믿고 있다. 대구 삼덕동의 골목 안에 한옥 병원을 짓고, 사람들과 어울려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산다. 이시형은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이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다. 특히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미련한 곰이 의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2부 '골목 안 병원에서의 소확행'으로 나뉜다. 상처 주지 말자, 치매 엄마 모시기, 의사의 말 한마디, 무언가 이상하다, 진짜 이상하다, 이상한 병원, 히포크라테스 선서, 가훈, 나이듦에 대하여, 불편함과 친해지기, 이런 여행, 돌솥 밥하기, 부부싸움, 글씨, 애완동물, 부부는 이심이체, 금메달보다 소중한 것, 분발하지 않기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읽다보면 저자의 속마음이 알고 싶어서 놓치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특히 이렇게 진솔하고 꾸밈없는 정갈한 글을 보면 말이다.

나는 한번씩 불편한 자리에 참석합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아직 멀쩡히 살아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참 불편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의학적 상식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는데 엄연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불편했고, 그런 과정에서 병원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현 의료제도에 대한 많은 비판을 듣는 것 또한 불편했습니다. (42쪽)

 

 


호기심을 갖고 보다보니 저자의 병원도 궁금하다. 특이하게도 한옥병원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병원을 보고 이상한 병원이라고 합니다. 병원은 대로에 있지 않고 작은 골목 안에 있습니다. 큰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까이 와야 보일 정도로 간판도 작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한옥입니다. 한옥 병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뒤쪽으로 꽃밭이 있는 마당이 있습니다. 병원보다 더 큰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빵을 굽습니다. 좋은 생각을 가진 누구나 오면 건강한 빵을 맛볼 수 있고 음식도 나누어 먹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이상한 병원을 지었는지 궁금해합니다. 나는 한마디로 답합니다. 나는 의사란 직업이 너무 좋고 평생 환자를 보고 싶어서 이런 병원을 지었습니다. (48쪽)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마음에 들었고, 집중해서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달린다. 마지막 글은 '분발하지 않기'이다. 최근 무언가 삐거덕거리는 것은 기본을 무시하고 너무 조급하게 앞으로만 나가서 그런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는 말에 공감하며 잠깐 쉬어가기로 한다. 쉬엄쉬엄 가야 길게, 오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모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에 미소짓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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