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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평점 :
출산 시 아버지의 참여는 확실히 산업 출산의 일면이다.(104쪽)
·······-아버지의 참여가 출산을 돕는가, 방해하는가?
·······진통 중의 여성이 이성의 활동을 줄이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는 바로 그때에 많은 남성들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105-106쪽)
·······-출산 시 아버지의 참여가 그 후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현대적 기준으로 멋진 출산을 하고 몇 년 후 이혼하는 부부의 수가 많·······다.·······아기를 낳는 것이 그들의 동지애를 강화시켜주었으나 성적 매력은 사라지는 것 같다.(107-108쪽)
·······-모든 남성들이 출산에 참여하는 동안 겪을지 모르는 강한 정서적 반응에 대처할 수 있는가?
·······가정출산·······상황에서 남성의 산후우울증은·······흔하다·······(108쪽)
30년 전쯤 티베트 의학승인 다이쿠바라 야타로가 쓴 『티베트 의학의 지혜』(나중에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로 이름을 바꿈)라는 책을 주의 기울여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출산과 관련된 인상 깊은 내용이 기억납니다. 인디아·티베트 전통 사회에서 출산을 3주 앞둔 여성은 어두운 천막으로 들어갑니다. 빛이 차단된 상태에 적응하여 그 속에서 아기를 낳습니다. 산바라지의 1순위는 아기의 이모, 2순위는 아기의 외할머니입니다. 아기가 처음 대할 때 받는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엄마와 가장 닮은 사람을 택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근처에 얼씬도 못 합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저는 22년 전 딸아이의 출산 때 제가 아내 옆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낯선 의사·간호사(심지어 남성간호사)보다는 아비가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딸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초기 100여 일을 제외한 150여 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제 음성으로 태교를 했습니다. 태아는 공감각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빠의 모습을 그려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물론 병원은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나름 분개했습니다. 이제 보면 제가 산실로 들어가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 잘된 일이 맞습니다.
지금의 산업 출산 시스템 일부가 산모의 정서 안정 등을 근거로 아버지의 출산 참여를 권장하거니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가당착일 뿐입니다. 산업 출산 자체가 산모의 정서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출산 참여 문제를 논의할 때 아기 입장을 완전히 누락시키는 어른 중심의 프레임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인디아·티베트 전통의 눈으로 볼 때, 어차피 낯선 의사, 간호사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면 거기서 아버지가 모종의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듯합니다. “아버지는 아서라.” 이게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