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고대 그리스인은 독특하게도 비극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함께 슬퍼하기 위해 연극을 관람했다. 그들은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 시민 사이 유대감을 강하게 하고, 관객 개개인에게 각자 슬픔 속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확신했다.(116쪽)

  상상력은 자비로운 삶의 결정 요인이다. 상상력은 인간의 창의적 특성으로서 예술가들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전혀 일어나지도 않았던 사건들이나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강력한 현실성을 부여하도록 해준다. 자비, 그리고 자아의 포기는 모두 예술의 필수 요소다.·······예술은 자신의 고통과 열망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인에게 그랬듯 예술은 우리가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다른 사람 역시 고통을 겪으니 말이다.

  그리스 극작가들은 관객을 고통에 민감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무심한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그것이 마치 우리의 슬픔인 것처럼 다른 사람의 슬픔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티베트인은 이런 특성을 ‘셴 둑 느갈 와 라 미 소 파shen dug ngal wa la mi so pa’라고 부른다. 이것은 ‘다른 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다.’는 의미다. 달라이 라마에 따르면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시하고 싶을 때일지라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도록 만드는 무엇”이다.(123-124쪽)



세월호사건은 정통성 없는 권력이 고의로 저지른 제노사이드다. 가족은 물론 수많은 시민에게 슬픔과 아픔을 각인해 넣은 잔혹한 범죄다. 이 범죄를 핵심으로 한 전천후 전방위 국정농단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탄핵되었다. 헌재 용인을 앞둔 비상한 시국이다. 하필 이 때 대구광역시에서 세월호사건을 두고 막말한 벽서가 여럿 등장했다.


일부 극소수 사이코패스의 짓거리라고 일소에 부칠 일 아니다. 대구니까 그렇다고 냉소해서도 안 된다. 저들은 엄연히 우리의 일부다. 저들이 박근혜를 지지한다. 저들이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떠받든다. 저들이 매판독재분단세력으로 하여금 나라 삼키도록 부추긴다. 저들이 그어놓은 경계선 안에서 우리가 산다.


그 경계선 안은 각자도생의 식민지다. 각자도생의 식민지에는 상상력을 금하는 보안법이 있다. 상상력을 금하는 보안법에는 ‘슬픔과 아픔을 공유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문이 있다. 사형수가 되기 싫은 식민의 노예가 자진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세월호 탄 인간들 잘 죽었다.”


죽음의 공포를 저들이라고 모를까. 오직 자기 공포만 알 뿐이다. 자식 잃은 비통을 저들이라고 모를까. 오직 자기 비통만 알 뿐이다. 그 유아적 공포와 비통에 젖은 채 야밤을 걸어 벽에다 무자비를 배설한다. 비루한 오르가즘에 온몸을 떤다. 킬킬대며 허망한 새벽을 향해 내달린다.


저들이 도둑괭이 어둠 속에 도사렸을 때 나는 휘영청 취선에 들었다. 남의 슬픔과 아픔을 야단치는 인문장사꾼 사이비철학자한테 오랫동안 엎어져 지내던 사람 하나 일으켜 세운 기쁨에 젖어서였다.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문’을 인문이라 주절대는 자를 흉내 내온 한 삶이 통회에 스러지는데 내 어찌 통음하지 않으리오. 심취 후유증이 뒤척이지만 나는 여전히 어제의 술잔에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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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2-23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슬픔‘을 존중하고 사랑해요..

bari_che 2017-02-24 11:00   좋아요 0 | URL
슬픔의 사람에게 슬픔의 큰 마음, 셴 둑 느갈 와 라 미 소 파가 영원히 함께 하시길!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