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황금률은 자각을 요구한다. 남을 대하는 행동지침으로써 나의 감성을 사용하라고 한다. 나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다면 남도 쉽사리 그렇게 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의 약점만큼이나 나의 강점에 대한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인식을 갖추어야 한다.(96쪽)


황금률이 요구하는 자각의 내용은 둘이다. 처음 하나는 이것이다. 너로 향하는 나의 자비는 나 스스로를 자비롭게 대해 본 나의 경험에서 비롯할 수밖에 없다. 나중 하나는 이것이다. 나 스스로를 자비롭게 대하는 일은 나의 빛과 어둠을 모두 정확히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처음 하나를 말하려고 좀 성가신 형이상학 이야기부터 꺼낸다.


『주역周易』계사繫辭의 “대연지수오십大衍之數五十 기용사십유구其用四十有九”를 왕필王弼은 이렇게 주註한다.


‘부무불가이무명夫无不可以无明 필인어유必因於有 고상어유물지극故常於有物之極 이필명기소유지종야而必明其所由之宗也’


‘대저 무는 무로써 밝힐 수 없고 반드시 유에서 비롯해야 한다. 그러므로 늘 물적 유의 극한에서 반드시 그 말미암는 바의 종지를 밝혀야 한다.’


주가 더 어렵다. 더 깊은 뜻의 유무를 떠나 상식적으로 주의 주를 달아보면 이렇다.


무한, 그러니까 보편의 전체적 진실을 보편 자체로써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유한, 그러니까 특수의 개체적 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개체적 진실이 번져가는 극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체적 진실의 묘의가 드러난다.


주의 주도 만만치 않다. 조금 더 쉽게 다가가려면 일단 무한에다 너를, 유한에다 나를 넣고 생각한다. 너로 향하는 나의 자비는 나 스스로를 자비롭게 대해본 나의 경험에서 비롯할 수밖에 없다. 나를 자비롭게 대해본 경험도 없으면서 어떻게 생면부지의 너를 자비롭게 대한단 말인가. 나의 경험 아닌 것에서 나오는 자비는 필경 위선일 테다. 적어도 흉내일 테다. 이들을 자비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 여기 나의 앞에 있는 너만 너는 아니다. 나를 뺀 모두가 너다. 아니! 나를 포함한 모두가 너다. 너는 무한이다. 나는 유한이다. 너는 보편이다. 나는 특수다. 너는 전체다. 나는 개체다. 유한하고 특수한 개체인 나가 무한하고 보편적인 전체인 너를 경험으로 전유하지 못한다. 나는 나에서 비롯하여 너에게 번져갈 뿐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우선순위에 두되 나를 중심에 놓지 않는, 그러니까 너를 중심에 놓는 삶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소 혼동을 범하고 있는 듯하다. ‘나 먼저’와 ‘나 중심’을 구별하지 않는 데서 오는 엉킴이다. 그 엉킴에서 나온 제목이 <나,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바꿔야 한다. <나,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나중 하나를 마저 말해보자.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그러니까 자비롭게 대하는 일은 나의 빛과 어둠을 모두 정확히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자비는 긍정이 아니다. 자비는 긍정과 부정을 품어 안는 인정이다. 자비심은 자존감이 아니다. 자비심은 자인감이다. 상처와 영광, 약점과 강점, 슬픔과 기쁨을 모두 있는 그대로 나의 귀중한 일부로 인정하는 일이 자비다.


자비는 진실의 전체상을 구기지 않고 드러낸다. 자비는 진실의 바른 모습을 비틀지 않고 보여준다. 자비는 진실의 여여如如를 틀림없이 남김없이 펼쳐내 온 존재를 한 존재로 만든다. 자비는 궁극의 과학이다. 궁극의 과학이 궁극의 예술이다. 궁극의 예술이어서 자비는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궁극의 아름다움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든다.


오늘 광화문에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들려는 아름다움이 약동한다. 누군가 무자비한 매판의 한 상징적 캐릭터를 세워 자비의 미학을 빚어 놓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콧구멍에 침을 꽂아 넣음으로써 미학은 연대를 이루었다. 각자 자기 자신의 어둡고 빛나는 감성에서 비롯하여 타자에게로 번져가는 무한 스펙트럼의 자비가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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