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더욱 자비로운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전혀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84쪽)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며 ‘영에 이끌려’ 광야로 갔다. 성서 전승에서 광야는 변화의 공간이자 악마의 소굴이다. 그는 시야가 탁 트인 외딴 곳에서 세상을 둘러보도록 성전 꼭대기와 높은 산 위로 이끌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더 쉽고, 더 화려하고, 더 명확한 길로 가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쳤다.(85-86쪽)


60년대 일본 바둑계에 면도날이라 불리던 고수 사카다 명인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대국 도중 소변보러 나갔다 돌아오면서 내려다보니 여덟 수가 더 보이더라.” 이 말의 묘의는 내려다보면 더 많은 수가 보인다는 데 있지 않다. 제삼자 시선으로 보면 정확하게 보인다는 데 있다.


제삼자 시선은 흔히 객관적 시선이라 통속화된다. 엄밀한 주객 분리는 다만 관념이다. 제삼자 시선은 부분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모색하는 전체적 문제의식이다. 전체 진실을 둘러보려고 높은 곳에 오른다고 대개 말한다.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말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고저가 관건이 아니다. 둘러보는 행위로써 포착되는 공간지각은 넓이다. 높이와 깊이는 넓이의 은유다.


넓이를 통해 확보되는 전체상은 비대칭의 대칭이다. 비대칭의 대칭을 깨달으려면 기존 ‘진리’의 맞은편에 놓인 ‘진리’를 인정해야 한다. 맞은편 진리를 인정하려면 기존 진리를 비판해야 한다. 비판의 극한은 부정이다. 자기가 기대는 익숙한 진리를 부정하려고 “외딴 곳”으로 간다. 외딴 곳에서 “더 쉽고, 더 화려하고, 더 명확한 길로 가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친다.


우리 시대는 더 쉽고 더 화려하고 더 명확한 무자비를 부추긴다. 빠르고 편하게 대박 나서 폼 나게 사는 괴물에게는 자비가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를 성공의 표지로 삼는 시대에 욕됨으로 나아감進辱, 그러니까 더 어렵고 더 초라하고 더 불확실한 길을 걷는 일은 더없이 물색없는 짓이다.


자비가 모욕당하는 매판독재판에서 자비를 지키려 또 다시 광화문으로 갔다. 문득 선 자리를 보니 내 인생의 길 6번국도와 세종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 한복판이다. 그렇다. 여기가 한걸음 물러난 곳이다. 여기가 세상을 둘러보는 자리다. 광야다. 평소 자동차 굉음으로 가득 찼던 아스팔트 위에 여윈 몸 하나로 묵묵히 서서 생각한다.


바야흐로 “변화의 공간”일까, 끝내 “악마의 소굴”로 남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