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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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도 형식도 없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사회의 몸은 외설적이다. 목적을 초과하여 가속화되는 과다 활동, 과다 생산, 과다 커뮤니케이션은 외설적이다. 이러한 과다한 가속화는 진정한 활동성과는 거리가 멀고, 또한 그것은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과다한 속도는 그 과도함 때문에 본래의 목표 지점을 지나쳐버린다.·······“·······운동은 운동보다 더 활발한 것 속에서 해체된다.·······운동은 방향을 빼앗음으로써 운동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 속에서 해체된다.”(63-64쪽)

 

몽고인인지 아메리카 원주민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데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씩 멈춰 선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달리면 혹시 영혼이 못 좇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랍니다. 우스개로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삶의 깊은 지혜와 배려가 스미어 있기 때문입니다.

 

속도 문제를 넘어 삶의 전반으로 이런 이치의 확산이 가능합니다. 가령 이렇게 이야기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몽고인인지 아메리카 원주민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데 그들은 식량을 비축하다가 가끔씩 야생동물에게 내어준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가지면 혹시 영혼이 거기 사로잡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랍니다. 우스개로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삶의 깊은 지혜와 배려가 스미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목표 지점을 지나쳐버린” 빠른 운동도 많은 소유도 사실은 “진정한 활동성과는 거리가 멀고, 또한 그것은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는 자기 “해체” 행위입니다. 적어도 인간의 인간다운 행위이려면 “목적도 형식도 없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외설이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한사코 속도 자랑을 합니다. 이십대 삼십대, 아니 심지어 십대에 대박 나는 헛꿈으로 사람을 몰아댑니다. “목적도 형식도 없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선수로 자식을 키우려고 광분하는 부모가 삶의 모델인 대한민국입니다. “목적도 형식도 없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돈을 가지기 위해 국가와 종교까지 이용하는 상위 1%가 세계 사치성 소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외설적 성공을 거두기에는 너무 늦게 흐르고 인격적 성숙을 위해서는 너무 빨리 흐릅니다. 속도를 낼수록 활동과 소유는 넘쳐나지만 지혜와 기품은 메말라갈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매순간 각자의 선택하고 결단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당장 멈춰서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을 느림 속에 곡진히 놓아두어야 합니다.

 

영혼이 좇아오지 못하는 속도는 인간성 휘발입니다.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걸어가시라. 가난한 이웃에게 열리지 않는 소유는 사악한 허구입니다. 1850조나 해외에 빼돌린 재산 찾아와 99%에게 되돌려주시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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