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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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설에 대한 강압과 비슷한 것이 바로 나체에 대한 강압이다.·······공개적이고 집단적인 나체화는 되풀이되는 전형적 상황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역시 어떤 필요에 뿌리를 둔·······, 그러나 쓸데없는 과도함 때문에 모욕적인 하나의 폭력이었다.·······맨발에 벌거벗은 인간은 온몸의 신경과 힘줄이 잘려나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는 속수무책인 먹잇감이다. 비록 배급받는 게 더러운 옷이라 해도, 밑창이 나무로 된 형편없는 신발이라 해도, 의복이란 보잘것없지만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방어다. 의복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지렁이처럼 벌거벗고 느리고 비천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라도 짓이겨질 수 있다고 느낀다.(136-137쪽)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텅 빈 머리를, 휑한 가슴을 어쩌지 못한 채, 해가 기울도록 그저 멍하게 있습니다.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전라全裸의생각-몸뚱이가 ‘신경과 힘줄이 잘려나가’고 ‘짓이겨’진 듯합니다. 는적는적 슬프고 아픈 이야기 하나가 기억을 타고 흘러내려 옵니다.

 

오십 년 전 이맘때. 그 시절 겨울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추웠습니다. 밤은 더욱 어두웠습니다. 조그만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앵앵거리며 들려오는 무슨 이야기 소린가 듣고 소년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웃음이 길어지자 소년의 아버지는 멈추라고 명령했습니다. 명령 한 마디로 딱 멈추기에는 깔깔거림의 관성이 탱탱했습니다. 한 번 더 명령이 떨어지고서도 상황이 종결되지 않자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벽력같은 목소리로 다른 명령을 내렸습니다. “벗어!” 소년은 말의 의미를 미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벗으라니까!” 아버지는 재차 명령했습니다. 소년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하나둘씩 옷을 벗어나갔습니다. 몸을 가리는 것이 내의뿐인 상태일 때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아버지 말고 누나뻘 나이인 계모와 이복 여동생이 빤히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명령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다 벗어!” 내의를 벗기 전에 이미 들이닥친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소년의 넋은 쏜살같이 허공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꿰뚫고 마지막 명령이 날아듭니다. “나가!”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밤의 칠흑 속으로 쫓겨나면서 소년은 설핏 웃었습니다. 가뭇없이 사라진 존엄에 대한 역설의 애도일까요. 그 뒤 오십 년 동안 소년은 종종 그래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벌거벗고 있는 자기 몸을 홀연 확인하고 쩔쩔 매다가 깨는 꿈을 꾸고는 합니다. 소년은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어린 아들의 옷을 벗겼는지. 그 때 계모는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표정 없이 지켜보고 있었는지. 한 마리 짐승으로 아이를 내쫓고 따뜻한 방안에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들의 생사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에게는 이미 없는 일입니다. 오직 소년에게만은 바로 엊저녁에 일어난 일로 남아 있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통찰대로 옷은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방어”입니다. 그것을 박탈당한 채 내몰리는 모멸의 공간과 견뎌야 하는 치욕의 시간은 실로 형언하기 어려운 무엇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이런 공격을 하고 이런 고통을 받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여전히 이 비극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같은 옷을 결코 두 번 입지 않는 어떤 인간의 땅 한편에서 죽음 옷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자기 시신 거두어줄 사람에게 국밥 값 남기고 또 다른 인간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질문을 국화꽃 한 송이 삼아 여기 가만 놓으며 폭력으로 벌거벗겨진 모든 생명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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