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돈을 획득하고 소유하려는 우리 욕망은 우리 내면의 불화를 넘어설-또는 완화할-행복의 원천을 찾으려는 욕망에서 분출한다.·······이 점에서 향락주의도 중요하다.·······향락주의와 물질주의는·······돈이 많을수록 우리가 쾌락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로 연계된다.·······향락주의의 목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불행을 잘 살고 있다는 웰-빙 의식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그러나·······물질주의와 향락주의는 우리를 절대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흥분감은 매우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적 불화는 항상 존재하는 반면, 쾌락단추를 누를 때 나오는 “활기 넘치는” 소리는 잠시 후에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게 된다.(212-214쪽)


처음 서초동에서 한의원 열 때, 인테리어 공사 계약한 분이 술자리에서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인테리어에 지나치게 돈 쓰지 쓰지 마세요, 원장님. 뿌듯한 느낌, 그거 6개월 지나면 사라집니다.” 돈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반납하는 업자의 말이라 잊히지 않는다. 불같은 사랑도 180일이면 식는다는데 무엇인들 그렇지 않으랴.


물질이든 향락이든 실체 아니다. 그것들이 일으키는 행복, 안정, 충만, 이 모두 감정 실재다. 매달릴수록 빠르게 지나간다. 빠르게 지나갈수록 맹렬히 매달린다. 제약 불가의 이 허기증은 자아폭발의 총아인 돈의 마술이다. 마술이라고 해서 부인하거나 억압하면 없어지는 허탄한 것은 단연 아니다. 인간 정신에 질병으로 자리하고 있다.


질병은 견고한 고통의 영지를 지닌다. 거기 금강궁을 지은들 극락이 되겠는가. 거기서 송로버섯을 먹은들 천국이 되겠는가. 금강궁도 송로버섯도 고통의 영지에 뿌려지는 거름일 뿐이다. 정신과 금욕이 길인가? 아니, 그 역시 또 다른 극단의 거름이다. 붓다의 중도가 작은 수레의 길이다. 큰 수레의 길은 공동체적 향유와 전인적 참여다.


공동체적 향유와 전인적 참여가 지나치게 이상적인가. 아니, 지상에 이미 존재했었다. 그 핵심을 누락시킨 채 근대민주주의가 벤치마킹한 이로쿼이맹약이 바로 그것이다. 자아폭발이 구축한 개인·로고스·정치경제를 전복할 공동체·에로스·생태학의 나선형 복원 운동은 이미 지하 진원에서 시작되었다. 코 ‘개’날카로운 생명은 그 향을 좇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