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일>



유치환



하늘도 땅도 가림할 수 없어

뽀야니 적설積雪하는 날은

한 오솔길이 그대로

먼 천상의 언덕배기로 잇닿아 있어

그 길을 따라가면

그 날 통곡하고 떠난

나의 청춘이

돌아가신 어머님과 둘이 살고 있어

밖에서 찾으면

미닫이 가만히 열리더니

빙그레 웃으며 내다보는 흰 얼굴



청마 시 가운데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다. 이 시를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아슴아슴 기억이 희미하다. 적어도 30년은 훨씬 전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두 군데 빼곤 정확히 암송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시를 노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노래의 가사로서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날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한없이 보고 싶지만 끝내 만나고 싶지는 않은 어머니와 함께 이 시가 하루 종일 내 영혼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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