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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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우리의 유한한 언어 및 공식들 안에 담길 만큼 작다면 왜 신앙을 가질까요?·······하느님은 모든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는 근원적이고, 야생적이며, 자유롭고, 창조적인 충동이지만, 결코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가둬둘 수 없는 존재입니다.(146쪽)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의 미모를 보느라 날갯짓을 잃고 떨어졌다落雁는 전설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왕소군에게도 딱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좁고 비대칭인 어깨가 바로 그것. 하여 왕소군은 숄을 늘 걸치고 다녔다 한다.


천하의 파커 J. 파머, 그의 역설 미학에도 맹점이 하나 있다. 하느님에게만은 역설을 온전히 들여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하느님은 오직 큰 하느님이다. 인간의 “언어 및 공식들 안에 담길 만큼 작다면” 그의 하느님은 아니다.


내 하느님은 다르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코로 냄새 맡아지지 않는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맛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손으로 만져 느껴지지 않는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언어에 담겨지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가 하느님을 가둘 수 없는 것은 그 언어가 너무 성겨서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기만 하지 않다. 내 하느님은 크디크기도 하다. 그러나 내 하느님의 크디큼은 파커 J. 파머의 하느님의 그것과 다르다. 내 하느님의 크디큼은 실체가 아니다. 사건의 실재다. 그것은 작디작은 하느님들의 무한 네트워킹이다. 무한네트워킹은 크디커도 삼라만상의 바깥으로 넘어가 초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 하느님은 작디작아서 크디크다. 내 하느님은 크디커서 작디작다. 내 하느님은 모순의 공존이며 역설의 공현이다. 내 하느님은 비대칭의 대칭 운동 과정이다. 그러므로 내 하느님은 범신汎神도 아니고 범재신汎在神도 아니고 창조신도 아니다. “좁고 비대칭인” 서구전통에는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이다.


파커 J. 파머라는 고수의 아킬레스건을 찾았다고 키득거릴 생각 따윈 없다. 하늘 아래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나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진실도 잘 안다. 이제부터 파커 J. 파머에게 선물해줄 “숄”이 혹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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