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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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적인 욕구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유한한 자원에 대한 유한한 수요의 무한한 성장을 말하는 화폐시스템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질적인 욕구는 측정할 수도 없고 한계도 없다.·······

  측정할 수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비화폐적 순환이 필요하다.·······아름다움, 사랑, 관계 등을 돈으로 사려고 하면, 사는 사람은 진짜가 아닌 가짜를 받게 되고, 무한정 소중한 것을 한정된 가격에 파는 사람은 착취당하는 셈이다.·······

·······내 주장은 돈의 영역과 선물의 영역을 분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돈이 좀 더 선물의 속성을 띠고, 선물의 중개구조가 발전해 돈의 역할을 대신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돈을 포함하든 아니든 경제의 기본과제는 첫째 선물의 제공자와 그 선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둘째 선물을 관대하게 베푸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정하고 존중할 것인가, 셋째 개인의 필요와 선물을 초월하는 것을 창조하기 위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다.·······(346-348쪽)


지금처럼 방대한 규모의 사회에서 측정 불가능한 것들을 어떻게 순환시키는가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자, 기나긴 인류 역사상 새롭게 맞이한 문제다.(350쪽)


지나온 60여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문제는 정색하고 다시 돌아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만큼 그 선물들이 내 삶의 기조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상거래 시스템에 중독되어 살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상거래 시스템의 배타성이 워낙 강고해 선물거래가 내 삶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지 못하게 차단했다고 할 수 있다.


1. “선물의 제공자와 그 선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 사이, “연결”을 차단했다.

2. “선물을 관대하게 베푸는 사람”에게 돌아갈, “인정”과 “존중”을 차단했다.

3. “개인의 필요와 선물을 초월하는 것을 창조”하는 “조직”활동을 차단했다.


거대사회일수록 선물 당사자 간 연결은 불가피하게 어려워진다. 기존 화폐시스템은 이 어긋남을 근원적·비가역적 상태로 몰아넣는다. 제공자는 선물을 허망하게 날려버린다. 필요한 사람은 선물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거대사회일수록 기꺼이 선물하는 사람은 익명으로 처리되고 빈곤의 모멸에 빠뜨려진다. 기존 화폐시스템은 이 익명과 모멸을 근원적·비가역적 상태로 몰아넣는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를 흠숭하지 않는다.


거대사회일수록 개인의 필요와 선물 너머 공적 풍요·향수를 빚어가는 결집력이 떨어진다. 기존 화폐시스템은 이 해체를 근원적·비가역적 상태로 몰아넣는다. 개인은 원자화된다. 공동체적 향수를 위한 연대 고리는 끊어진다.


바로 이때, 불현듯, 아니 기어코 떠올린다.


지금처럼 방대한 규모의 사회에서 측정 불가능한 것들을 어떻게 순환시키는가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자, 기나긴 인류 역사상 새롭게 맞이한 문제다.


운명과 혁명의 조우.


맡김과 해냄의 조우.


이른바 이율배반의 지랄 같음을 부둥켜안은 채 찰나를 견딘다. 견딤은 오직 선물을 주고, 선물을 받기 위해서다. 그 관대함에 엎드린 헌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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