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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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치유에 필요한 일 중에는 본질상 비경제적인 일이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수익이 나지 않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사회배당금이다. 사회배당금은 사람이 고용되지 않는 일, 팔릴 만한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준다.·······사람들이 경제적인 요구에 구속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좋은 일, 필요한 일을 선택하게 만든다. 구속 없는 자유로운 선택, 구속받지 않는 욕망의 자유로운 결과물은 어떤 일이 신성한 일인지 확인해 줄 것이다.(305-306쪽)


여가, “더 정확히 말해 좋아서 하는 일”(317쪽)은 “본질상 비경제적인 일”이다. 순수하다는 뜻이 아니다. 향수享受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향수는 본질상 공동체적이다. 공동체 향수는 개체와 전체를 분리하지도 혼융하지도 않는다. 내가 즐거우니 모두 즐겁고, 모두 즐거우니 내가 즐거운 누림이 향수다. 향수가 신성성의 표지다.


신성성은 자유를 날개로 비상한다.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흔쾌한 지향성에 몰두하는 것이다. 몰두하면 행위자와 행위, 그리고 행위 결과가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 없는 데 수익 없다. 수익 없는 일에 열정 다하는 사람 자신과 가족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지불, 아니 사례하는 것이 사회배당금이다.


사회배당금 개념을 접하기 전에 나는 내 직업과 관련해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해왔다. “본질상 의료는 비경제적 서비스다. 의료를 시장논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의료인의 소득은 사회 평균 수준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거칠고 나이브하지만 산업의료 사회의 부조리와 맞서기 위해 나름 제한과 보장을 동시에 고민한 것이었다.


우리사회의 경우, 초극상위권 학생은 많은 수익을 겨냥해 의대에 진학한다. 의사가 되면 실제로 고수익을 올린다. 그렇다고 의사가 자기 일 자체를 좋아한다거나 공적 서비스로 여긴다는 증거는 없다. 도리어 반대 증거 때문에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의사 자신에게도 아픈 사람에게도 재앙이다.


산업의료, 곧 화폐의료의 재앙에서 벗어나려면 병을 치료하는 일이 “구속 없는 자유로운 선택, 구속받지 않는 욕망의 자유로운 결과물”인 본질을 복원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는 사회배당금 개념과 반대로 접근해야 하므로 쉽지 않다. 그러나 소확행 트렌드가 확산되고 공공의료 개념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타개책을 찾을 수 있다.


소확행 트렌드와 공공의료 개념은 상충하는 것 같지만 향수를 매개로 상보 관계를 형성한다. 사적 영역에서는 변방인 여가가 공적 영역에서는 중심이다. 공적 영역에서 중심이 될 때 여가는 개인을 신성하게 한다. 신성화된 여가는 더 이상 사적 영역에서도 변방이 아니게 된다. 이 선순환이 진정한 혁명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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