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을 읽다가 그저께 시사회에서 본 다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떠올랐다.

  

     174쪽.

 

     "헨리 다거는 내가 맨해튼 68번가에 살 때 그 근처에 있던 포크 아트 미술관에서

     처음 보았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전시였다. 처음 보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방마다

     펼쳐지던 경이로운 순간을 기억한다. 다거는 정신이상자로, 정신병원을 탈출한

     후 평생 청소부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혼자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왜라는 질문은 전혀 없이 자신만의 세상을 그저 살아간 것이다(이게 바

     로 답이리라). 그가 죽고 난 다음에야 집주인이 그가 남긴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비로소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세상과 현실과 단절되어 있었고 그는 죽음으로써 비로소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모든 훌륭하고 비극적인 예술가들의 삶과 죽음은 이러할

     것이다."  

 

 

     역사책을 쓰고 있던 청년 존 말루프는 책에 넣을 사진을 구하기 위해 벼룩시장 경

    매에 간다. 거기에서 구입한 가방에는 15만장 정도의 필름이 들어 있었다. 필름의

    주인은 비비안 마이어. 필름을 현상해서 전문가들에게 보였더니 극찬이 이어진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은 들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주변

    인들도 그녀가 항상 사진을 찍는걸 알았지만 사진을 본적은 없다고 한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녀가 어디에서 왔고, 가족은 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모른다.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유모로 일하며 이집저집

    옮겨다닐때마다 조건은 자신의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것. 그녀와 10년 이상

    알고 지냈던 아이 엄마도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 아이 엄마는 사진을 좀

    일찍 공개했다면 다르게 살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 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마지

    막으로 간병일을 그만 두었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그녀가 돌봐준 아이들이 집을 구해

    주고 집세를 내준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말하지도 않고 세상과 현실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지만, 시  

   선은 항상 세상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쌓아놓은 신문 때문에 나무바닥이 처질 정도

   였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미국과 유럽 여러 곳에서 전시되었고, 전시회마다 사람들

    이 몰린다.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인 죽음을 통해 세상에서 잊혀진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나오게 된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삶은 죽음으로써 끝난게 아니라 죽음으로써 계속

    되고 있다.

 

     그녀와 그녀의 사진이 뒤늦게라도 알려져서 다행이지만 기분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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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쪽

 

    그 몇 해 전 초파일에는 사람들과 함께 분황사 탑돌이를 하고 스님의 인도로 캄캄한 황룡사지를 등으로 밝히며 경을 외우고 목탑지를 돌았다. 어둠에 묻힌 빈 들판에서서 목탁

리를 들으며 아스라한 별을 바라보니 문득 신라로 돌아간 듯했고, 나는 감동에 몸을 맡기고 경덕왕 한기리의 여자 희명처럼 소원을 빌었다. 다섯 살의 아이가 눈이 멀자 아이를 시켜 노래를 지어 분황사의 천수대비 앞에서 빌었더니 드디어 눈을 뜨게 되었다지.

 

    모든 진심은 천심에 닿으소서."

 

 

 

 

 

 

 

 

 

 

 

 

 

 

 

 

 

 

 

 

 

55쪽.

 

    경내만 이만 사천여 평이 되는 드 넓은 터를 신라인이 지름 칠 센티미터의 봉으로

  일일이 다진 자국이 드러났는데, 불심의 봉 자국으로 덮인 땅이라니, 황룡사지에 서

  있으면 경건하기까지 한다. 나는 영혼을 얼마나 다졌던가?

 

 

 

    팔십 미터가 넘는 황룡사 구층 목탑의 기단부. 기단부만 방 한칸은 족히 넘겠다. 초석

  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 넓이에 팔십 미터...... .표현력이 모자라 아쉽다.. 목탑만해

  도 이정도니 금당과 회랑 제대로 갖춘 황룡사지는...... . 작가의 말대로 보고만 있었도

  경건해진다. 

 

  황룡사지에서 분황사로 들어가는 길.

 

 

  황하코스모스를 본 기억이 없다. 경주에서 처음 봤다. 계림 옆은 황하 코스모스 밭.

 

 

 

  한밤의 첨성대와 계림

 

 

 

 

 

      빈틈이 많은 곳, 그 빈틈이 그대로 비워져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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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에 봄이 무르익으면 맨발로 걸으리라'

  

     산이라기엔 낮은 반월성 둔덕을 오르내리며 늘 가던 오솔길을 따라가니 억새잎들이 내 키만

   큼 자라서 시야를 가린다.

  

     늘 그렇듯이 월성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수리 나무 숲에 앉아 있다가 왕궁터를 나선다.

 

     반월성을 경계짓는 둔덕을 따라가니 아래로 남천이 보인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계림. 

      개울소리를 들으며 금궤가 걸린 소나무가 어느 나무였을까?  궁금해졌다.

 

      계림을 나오니 월성 둔덕이 보이길래 걸어가 본다. 안내판을 보니 초승달처럼 휘어있다. 둔 

    덕 바깥쪽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숲이 나온다. 드리워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이

    고 햇빛이 내리쬔다. 새벽 안개가 내렸을 때 걸어도 좋겠구나. 내일 새벽에 다시 와야겠다.

    고향에서 학교 다닐 때, 상강 무렵 쌩한 바람을 맞으며 서리가 내린 길을 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만큼의 상쾌함은 아니겠지만 여기에서 새벽의 상쾌함을 느끼고 싶었다.

 

       좀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데 때를 놓쳤다. 이미 해가 떠올라 공기의 상쾌함은 조금 덜했지만

      아침 햇빛의 신선함이 좋다.

   

 

 

 

 

 

 

     월성에 와서 관광객들은 "아무 것도 없네"하고 발길을 돌리지만 비어 있기에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신랑 왕궁터를 나는 즐겨 산책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곳은 비어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비어있는 왕궁터, 사라진 궁궐들이 어떤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의 발길을 저절로 불러들일 것 같다.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행운이 아닐까? 

 

      벚꽃 만개한 봄도 아니고 단풍이 화려한 가을도 아닌 어정쩡한 때라서인지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낮에도 한가로이 편히 걸을 수 있었다. 경주에 다시 온다면 아마도 이날 아침 때문인지

    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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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경 작가님은 '그분'이 아니었다면 이름만 아는 작가였을 것이다.

 

 

    2008년 5월,

 

    하관을 한뒤 흙을 덮고 달구질이 시작되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달구질

   을 함께 한다. 그 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머리를 스카프로 감싸고, 어두운 정장이 아닌, 파란색 이었나 그런 색 웃도리를 입고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6년 전이라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차림새와 몸짓이 좀 남달랐다. 보고

   있자니 동행했던 분이 '강석경 작가 아니야?' 한다. 아...... . 여기서 저렇게..... 그분과 남다른 

   인연이 있나 하는 생각은 잠시, 몇분간 바라 보았다.

     가시는 분에 대한 애통함이 아니라 훨훨 가시라고, 훌훌 벗어던지고 넓은 창공으로 훨훨 가시

   라는 기원 같은 몸짓이었다. 동행도 강석경 작가일 거라고 말했을 뿐인데 왜 이 분을 강석경 작

   가님이라고 믿었을까?

 

     다음달, 그분에 대한 글이 잡지에 실렸다. 그 글 중에 강석경 작가님의 글이 있었다. 글 끝에

   그날 그 시간의 광경이 나온다. 그리고 그분과의 인연이 실려있었다. 

 

 

   "처음 뵈었던 30여 년 전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존재만으로 가슴을 흔드는 이,

   내 생에서 이처럼 흠모한 사람도 없고, 이처럼 전적으로 한 인간을 좋아한 적도 없다."

 

   "그날 기억나는 것은 겁없이 문학의 세계에 들어선 내게 엄정하면서도 연민에 찬 표정

   과 선생이 손수 마당에 깔아 만들었다는 돌길이다. 널직한 돌을 딛고 고즈넉한

   마당으로 들어서면 동산으로 이어지는데......"

 

   "오리나무숲 바람 소리와 개울 물소리 들리는 외딴집. 스스로 택한 유배지 같은 이곳

   에서 그 얼마 뒤 선생은 더 멀리 더 깊이 터를 옮겼고, 나는 우연치 않게 이곳으로 이

   사 갔다. 선생이 이미 떠난 뒤지만 그 집 앞을 그냥 지나지 못하고 대문 틈으로 큰돌이

   깔린 마당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곳이 그분 손수 돌을 깔았다는 그집, 작가님이 들여다보곤 했다는 곳이다. 30년전과는 전

    혀 다른 모습이겠지.

 

       

          

 

     작가님은 어느날 이후,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이 그분의 딸이었다고 했다.

     그 글을 읽은 이후,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작가님이었다.

 

 

     그후에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 알 수 있을까 싶어 작가님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

    래서 읽은 책이 '능으로 가는 길'과 '경주 산책'이다. 이 책에 몇 구절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단 몇 구절이지만 울컥했다. 그 부분만 읽고 또 읽었다. 이달에 나온 '이 고도를 사랑

    한다'에도 나온다. 아직도 이렇게...... .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책을 들고 경주를 찾아갈

    이유가 생겼다.

 

 

     '경주산책'과 '능으로 가는 길', '이 고도를 사랑한다'를 읽다보니 작가님이 왜 그분을 그리 흠

    모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상과 사람들과의 대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지

    키고, 자신의 예술혼을 지켜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그분

    을 흠모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예술혼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작가님의 작품에서도 느

    껴진다. 그런 느낌들이  묻어나는 구절들은 필사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럴때마다 생각

    한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마지막 글을 읽을 수 있을까?"

    

       이게 안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아는 동생때문에 작가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언니, 그 작가님 볼 수 있어요. 올래요?" 했을 때 흥분되었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

     지만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작년에 출간된 '신성한 봄'을 읽고는 한번 뵙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끼고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

     가? ... 너무 간절해서 그랬는지 취소되고 말았다.

 

       그때 작가님에게 전하려고 사진  한 장을 준비했었다. 내가 직접 찍은 그분의 사진. 활짝 웃

     고 계신다. 역광이라 색은 선명하지 않지만 환하게 웃고 계시는 그분의 모습이 좋다. 보는 분

     들이 좋다고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님에게 전하고 싶다.

 

     다음주에 경주에 갈때 책에 끼워서 가야겠다. 어느 고분 앞에서 우연히 뵐지도 모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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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작가들의 마지막 글을 읽을 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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