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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대 1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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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애`. 박경리 선생님의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이다. 맑으면서도 돌발적인 인물? 60년대 소설이지만 감각적이다. 서인애의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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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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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정대부 선생님 아니십니까? 어찌 사람을 이렇듯

  감쪽같이 속이십니까? 밤낮으로 공을 뵙고 싶어 애태웠는데, 어찌 이리하십니까?”

  다산이 빙글빙글 웃었다.

  “어쩌다보니 그리되었네. 미안하이.”

  “안됩니다. 이리는 못 가십니다. 오늘은 제 방에서 함께 묵어 가시지요.”

  혜장은 막무가내로 다산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왔다.

다시 자리를 갖추고, 대화가 오가는 중에 어둠이 내렸다.

  “듣자는 그대가 ‘주역’ 공부를 많이 했다더군. 공부하다 모르는 것은 없던가?”

  “정씨의 풀이나 소씨의 해설, 그리고 주자의 설명에는 모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문 내용은 알지 못하는 것이 더러 있습니다.”

  다산은 ‘주역계몽’의 내용을 가지고 그를 슬쩍 격동시켰다. 물병에서 물을 따르듯

거침없는 언변이 쏟아져 나왔다. 다산은 그가 대답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난 혜장은 재를 깔아 둔 회반을 가져오개 해 그 위에 낙서의 구궁을 그리며

설명했다. 팔을 걷어붙이고젓가락으로 하도를 펼쳐놓고 그 위에 숫자를 늘어놓았다.

  문밖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들었던 제자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혜장의

사자후를 들었다. 제 스승의 거침없는 열변에 너나없는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개중에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혜장의 만면에 득의가 흘렀다.

  등불을 밝히고 나서도 혜장의 강의는 오래 계속되었다. 다산이 이따금 묻고,

혜장은 도도한 강물처럼 대답했다. 대단한 공부였다. 다산은 이따금 고개만

끄덕였을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혜장은 아까의 웃음기만큼이나 그의 침묵이

찜찜했다. 휘두르는 칼날이 번번이 허공만 베고 있었다. 서창으로 대낮같은 달빛이

들어왔다. 다산이 불을 껐다.

  “그만 자세. 밤이 늦었네.”

  “그러시지요.”

  둘은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웠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여보게, 혜장! 주무시는가?”

  “아닙니다.”

  “아까하던 얘기를 좀더 해볼까? 내가 하나 묻겠네. 건괘에서 말일세, 초구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구가 양수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그럼 음수는 어디서 끝나지?”

  “십입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말일세. 곤괘는 어째서 초십이라 하지 않고, 초육이라고

  했을까?”

  다산의 검광이 돌연 혜장을 무찔러왔다. 혜장은 어수룩한 듯 툭 던진 다산의

질문에 그만 눈앞이 캄캄했다. 한마디도 뗄 수 없었다. 누워 눈을 멀뚱멀뚱하던 그

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옷깃을 바로 하고, 다산 앞에 무릎을 딱 꿇었다.

  “산승의 20년 주역 공부가 그저 헛된 물거품이올시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곤괘에서

  초육이라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미욱함을 깨쳐주십시오.”

  “나도 알 수가 없지. 기수가 되려면 끝의 숫자가 4나 2가 되어야 하네. 모두들

  기수인 줄 알지만 2와 4는 우수가 아닌가.”

  혜장이 땅이 꺼질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물 안 개구리와 초파리는 잘난 척할 수 없는 것을! 선생님, 마저 가르쳐주십시오.“

다산은 끝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대단히 인상적인 대화의 장면은 마흔의 젊은 나이로 혜장이 세상을 뜨자,

그를 애도하여 다신이 지은 ‘아암장공탑명’에 그대로 나온다. 범처럼 포효하던

혜장이 다산의 한 방을 맞고 그만 강아지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초구와 초육에 대한

설명의 깊은 뜻은 필자의 공부로는 도무지 측량이 안 된다. 20년 공부한 혜장이

모르겠다고 무릎을 꿇은 사연이니, ‘주역’을 모르는 필자가 무슨 설명을 더

보태겠는가? 아무튼 다산은 간단한 질문 하나로 기고만장하던 혜장을 일격에

고꾸라뜨렸다. 혜장은 운이 나빴다. 하필 다산에 걸렸던 것이다. 안하무인의

교만이 한순가네 망연자실로 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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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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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은 18년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한다. 18년. 그 시간 동안 다산은

600여 권의 책을 쓰고, 글을 가르치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보면 유배객이라는 사실도 잠깐씩 잊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해배가 큰 의미가 될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벼슬을 다시 한 것도

아니고, 명예를 다시 얻은 것도 아닐테고 오히려 더 숨죽여야 했을 것이다.

가족을 만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유배시절이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고향에 돌아온 뒤에 유배시절을 그리워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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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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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라 합니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고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나는 이걸 잘 판단하지 못한다. 누구에게 말해야 되고, 말하면 안되는지, 또 무엇을 말해야하고 말해서는 안되는지 잘 판단하지 못해서 후회할 때가 많다.

 

  이서구(李書九). 온 세상의 모든 책.

 

  "내가 그의 나이만 할 때, 거처하던 집의 이름을 '구서재(九書齋)'라 하였다. 말이 서재지, 허름한 창고였다. 따로 방이 없던 나는, 봄가을에는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 책을 보는 간서, 책을 간직하는 장서,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 책을 바로잡는 교서, 책을 비평하는 평서, 책을 쓰는 저서, 책을 빌리는 차서,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를 말한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그곳에서 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호기로운 서재 이름이었다.

 

  나중에 북까페를 하게 된다면 이름을 '초어정(樵漁亭)'이나 '구서재(九書齋)'에서 따와야 겠다.

 

  새로운 책을 구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장을 펼치면 바람결에 와삭거리는 아득한 풀밭이 그 속에는 들어 있을 것만 같다. 서늘한 풀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나는 가보지 않은 길, 내 발자국으로 인해 새로워지는 길을 떠나려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풀잎들을 꼭꼭 다지며 걷는 것도 좋겠지. 아니면 그만의 길을 위해 내가 눕힌 풀잎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놓거나.

 

  책속에 길이 있고, 그 길이 내 발자국으로 인해 새로워진다? 이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 책의 길이겠지.

 

  내가 누군가에게, 더구나 스승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 고맙고도 감격스러웠다.

 

 

“책만 보는 바보”는 한국사를 배우는 중·고등학생들에 권하고 싶다. 조선 후기 실학에 대하여 배울 때, 실학의 시작과 전개, 실학의 의미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조 시대를 아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에서 홍대용의 말을 읽다보면 과학이 사상과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정확히 말하면 지동설이 다시 실학자들의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담헌 선생이 ‘지구(地球)’란 말을 하였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번개가 번쩍이는 듯했다. 땅은 그저 ‘지(地)’라는 한 마디로 충분하다. 그런데 둥근 ‘원(圓)’도 아니고 ‘구 (球)’라는 말을 붙이다니, 그것은 공이란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땅이 빙글빙글 도는 공처 럼 둥글단 말인가. 게다가 선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돌 고 있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어지러웠다.

“땅은 끝없이 아득하고 평평하기에, 높고 낮은 산과 들, 사람을 비롯한 온갖 만물이 그 위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처럼 둥글다면 위태로워 어떻게 제 몸을 지탱하겠 는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한 고을, 기껏해야 한 나라 안의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마당에서 내 집을 바라볼 때와 높은 산 위에서 내려다 볼 때가 다르지 않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저 하늘 아득한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네.”

“자네들은 월식을 본 적이 있는가?”

“예, 반듯한 선처럼 곧게 가려지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움켜쥐듯 점점 둥글게 먹어들어 갔습니다. 아, 정말, 완전히 가려진 검은 그림자는 달과 꼭 같았습니다!”

유득공이 약간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걸 보면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월식은 바로 지구의 거울이라네. 월식을 보고도 지구가 둥근 줄 모른다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겠는가”

이 세상의 중심은 나

우리를 한동한 바라보던 선생은, 다시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셨다.

“자네, 아까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면 우리가 아래쪽일 수도 있다고 했지?”

“예…….”

“공에는 위, 아래가 따로 없어, 어디가 가운데라 할 수도 없지. 중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동쪽 변두리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겠으나,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도 북쪽의 큰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우리는 서양 사람이라 부르지만, 그들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동양 사람이겠고. 그러니 자기만이 중심이라 자만할 것도, 변두리라 기죽을 것도 없다네. 다같이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그 순간 우리들의 가슴에는 큰 물결이 일렁였다. 박제가의 짙은 눈썹은 더욱 꿈틀거렸다. 하늘, 땅, 지구의 일은 워낙 실감이 안 나 어리둥절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뿌듯한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동쪽의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를 낮추며 살아왔다. 세상의 으뜸이며 가운데는 오직 중국뿐이었다. 나라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처럼, 중국 역시 자신들만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중국을 사모하는 작은 나라들은 중국의 제도를 따르고,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중국의 학문이 전부인 양 여겼다.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중국 것이면 충분하였다. 시를 짓고 글을 쓰는 사람의 문장마저 중국의 것을 따르지 않으면 비난을 받았다. 내 나라 산천과 내 나라 백성의 풍습을 노래한 글은 변두리풍이라 하여 하찮게 여기고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나 저 실 뭉치 위의 매듭을 중국이라 생각하면, 그 자리가 언제나 가운데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공처럼 둥근 지구에서는 어느 나라도 자신이 으뜸이며 가운데라 우길 수가 없다. 선생의 말씀처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떠한 나라든지 가운데가 될 수 있고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처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신분의 굴레가 있는 현실 속에서 나와 같은 서자들은 변두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나는 자꾸만 실 뭉치를 굴려 보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담헌 선생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모습에 대해서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변두리 자그마한 나라에 산다 하여 큰 나라의 눈치만 보지 말고, 피어날 길 없는 신세라 하여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실 뭉치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선 여기가 세계의 중심이고,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은 조선에 애정을 갖고 탐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즉 세상의 중심이라고 우월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 대국을 향해 있던 눈을 이 땅으로 돌려 이 땅을 연구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번졌을 것이다.

“이덕무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의 산천은 중국과 다르고, 말과 풍습도 다르다. 신라와 고려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속은 아직도 조선의 백성들 사이에 많이 남아 있다. 옛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남의 것을 그대로 빌려 오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눈여겨보기만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시로 표현할 수 있다. 이덕무의 시가 바로 그렇다. 조선의 노래라할 만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것은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음식은 손이나 기껏해야 입으로 잡는 것이며,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모두 다리여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동물인 코끼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비좁은 틀에 거대한 코끼리의 몸을 구겨 넣으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코끼리를 다리가 다섯 개인 하마라든가, 주둥이가 새의 부리처럼 별나게 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볼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라는 선생의 말씀에, 나와 벗들이 벅찬 마음으로 따른 것은 당연했다. 우리들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고루한 선입견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니던가. 할 수만 있다면 신분의 굴레가 씌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서고 싶었다.

배움의 자세는 이래야한다. 배우기로 마음 먹은 이상, 자기를 깨끗이 비우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받아들여 익히다보면 취사선택이 될 것이다.

물음 1. 1778년 이덕무는 심념조 대감의 수행원으로, 박제가는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 라 연경에 가게 된다. 그리고 1779년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서리수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된다. 홍대용이 정조에게 말해서 이들이 청나라게 가게 된 것으로 나온다. 서얼이 이들이 어떻게 뽑혔을까?

정조는 자신의 개혁 정치를 강력하게 뒷받침할 새로운 인재를 원했다. 그래서 서얼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발탁했을 것이다. 이들은 길을 열어준 정조에게 충성을 다짐했을 것이다. 서얼들의 등용은 개혁 정치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지지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가는 정조를 기득권 세력들은 더욱 싫어했을 것이고.

물음 2. 홍대용은 새로운 과학 사상을 어떻게 접했을까?

김태준의 ‘홍대용’(한길사) 읽을 것!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 이들은 세상에 절망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벗들과 교류하면서 막막한 날들을 보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책읽고 공부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보상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외면할 수도 없었을텐데. 그렇다면 버텼다는게 어울리는 말일까? 막막한 앞날이라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개고랑으로 던져버릴 수 없는 삶이라면 값지게 보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부. 공부를 하다보면 인정도 받고 싶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아니며 자신들의 현실이 더욱 비참해 질 것이다. 막연한 앞날에 희미한 희망을 꿈꾸면서 자신을 단련시킨다는 것은 그네를 타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조라는 임금과 변화되는 시기를 만나 천국(?)을 맛보게 된다. 어떠했을까? 그리고 검서관이 된다. 이들에게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많은 서얼들은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정조 이후 서얼들의 앞날은 다시 막막해졌을 것이다.

이들은 잠시나마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없었다. 정조가 오래 살았다면 이들이 국가 운영에 참여해서 뜻을 펼칠 수 있었을까?

안소영 작가는 이덕무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판단한 이덕무의 분위기를 한껏, 아주 자연스럽게 살려 놓았다. 그리고 당시 실학자들의 생각과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쉽게 표현했다.

나는 아직 감히 책을 비판하면서 받아들일 능력은 없다. 그냥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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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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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를 오늘에서야 읽는다. '책'자가 들어가는 책들을 좋아하는데 '책만 보는 바보'를 이제서야 읽는다. 왜? 왜긴 게을러서 그렇지.

 

안소영 작가님!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나면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덕무(1741-1793).;1779년 외각검서관, 1781년 내각검서관

 

'책만 보는 바보'는 1792년 12월 20일 부터 시작된다. 죽기 얼마전에 쓰기 시작했다.

 

규장각. 1776년 설치

 

"종묘 부근의 이 집으로 옮겨 온 지는 십년이 되어 가지만 '청장서옥(靑莊書屋)'이라 불리던 엤집 서재 이름은 그대로이다. 백탑 아래 동네에 살 때, 초라한 나의 집을 안쓰럽게 여긴 벗들이 저마다 가진 책을 팔아 지어 준 공부방이다. "

 

부러울 뿐이다. 청장서옥

 

정약용(1762-1836):1783 경의 진사, 1789 검열. 이덕무와 정약용은 규장각 어디선가 만났겠구나.

 

" 책과 책을 펼쳐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 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 번쩍번쩍 섬광이 비치고 때로는 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드넓고도 신비로운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뿐, 아직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유득공(1749~?) -1779 규장각 검서.

 

나는 책을 벗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말을 걸어오는 친구라고 할 만큼 책을 사랑하고 아낄까? 그 정도는 아니다. 아직 책에서 평정심을 얻지는 못한다. 단지 책을 붙잡아 지금의 이 시간들을 견디려고 할 뿐이다. 책이 손을 내미는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책이랑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책을 스승 삼아, 책을 붙잡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한동안 백탑을 홀로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를 때에도, 탑을 바라보는 눈길 만큼은 가끔씩 밤하늘 어딘가에서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탑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을 차례로 백탑 가까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친척 집으로 셋집으로 정처없이 떠돌던 나는, 드디어 백탑 아래 보금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1766년 5월이었다. 바깥채도 따로 없고 이엉을 인 지붕마저 손질이 안 돼 엉성한 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중략

  이렇게 나는 '큰 절 동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대사동에서 탑과 함께 살게 되었다. 큰 절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불리던 이름이었다. 나처럼 탑을 아끼는 벗들과 스승이 함께 모여 산 동네였다. 1766년부터 1783년까지, 백탑 아래에서 보낸 나날들은 내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유득공(1749~?),이덕무(1741-1793),박지원(1737~1805),홍대용(1731-1783),백동수(1743~1816),박제가(1750~?),이서구(1754~1825)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 꽃은 자신이 꿀과 밀랍이 되리라 알았겠습니까. 더욱이 그 꿀과 밀랍이 다시 매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나 했겠습니까."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니라, 살면서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벗들도 나처럼,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눈부신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윤회매를 보며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 특히 박제가의 시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벌이 채취하기 전에는 나도 저러하였건만

  온회의 중간에는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네

 

  우리느 정말 윤회의 중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서자의 신분이라는 우리의 운명, 세운 뜻을 펴 보지도 못한 채 가슴에 품고만 살아가며 하는 이 삶도 윤회의 한 부분일까. 우리에게도 저 꽃처럼 다시 돌아갈 제자리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견뎌 내리라,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벌통에서 밀랍으로 묵묵히 견뎌야 하는 고통, 말간 액체가 될 때까지 활활 타는 불길에 온몸을 녹여야 하는 고통도 기꺼이 견뎌 내리라. 우리들의 삶도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이런 이덕무가 1778년 청의 연경까지 간다. 어떠했을까? 고통을 견뎌내고 그렇게 다시 피어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검서에게 정조와의 만남은 "삶을 바꾼 만남"이 아니었을까? 

 

"운명이란 게 어디 별것인가요? 저는 나를 마음대로 하려 드는데, 나라고 저를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얽어매어 놓은 사슬 한 겹이라도 내 반드시 풀고 말 것입니다."

 

"제가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든 사물은 제 모습을 더 세밀하게 보여 주니까요."

 

  이덕무는 박제가를 '서늘한 바람같으면서도 무척 여리고 고운 사람'이라고 했다. '토지'에서 누구와 비슷할까 생각해 보니 홍이가 떠올랐다. 그런데 홍이는 아니다. 홍이에게 서늘한 바람 같은 구석은 없다. 그럼 윤국이? 윤국이도 아닌 것 같고, 그럼 환이?  관수? 백정의 딸과 혼인하여 자식에 신분의 한을 대물림하는 관수가 박제가와 비슷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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