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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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都 경주가 高都 경주로 남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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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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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원적"

 

   

    '도심 한가운데 솟아 있는 능은 나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대부분의 묘역이 산

   이나 들판 등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돼 있지만 경주의 거대 능들은 월성 가까이 도심

   인 황남동과 노서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인류의 가족으로 더불어 있다니.

   고분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이지러지기도 하고 주검은 어느덧 대지로 돌아가 둔덕 같은 자

   연자체가 되어 있었다. 생멸의 순환과 우주의 질서를 보여주는 풍경은 근원적이어서 강렬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시내에 있는 공원이라 시민들이 오가는 휴식처인데 오랜만에 들렀더니 나무가 많이 자란 것

   같다. 어린 왕자가 그린 보아뱀- 뱃속에 코끼리가 들어 있는 - 같은 쌍분에 사람들 발길로 하얗

   게 가르마가 난 풍경이야말로 공원답다. 고분공원에서 아이들이 쌍분에 오르내리는 광경은 흔

   히 볼 수 있지만 뜬금없이 관리인이 나타나 목청을 높이며 저지할 때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

   다.

 

 

 

 

  작가님은 인도에서 삶의 본질을 보고 경주로 향했고, 경주 도심에 솟아 있는 고분들의 풍경은 근원적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작가님이 말하는 '근원적 풍경' 뭘까 궁금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 죽음도 삶의 과정 중에 하나라는 것일까?  죽음이라는 과정이 끝나면 또 다른 과정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주 만물을 삶과 죽음으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대릉원, 계림, 노서동의 고분들을 쳐다보면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땅의 주인이라고 자리를 잡은 시기만도 천년 전인데 ..... 삶과 죽음의 구분이 의미가 없는데 주인을 논하다니 어리석다.

 

  경주 도심의 고분들은 정겨웠다. 고분 하나 하나의 능선은 물론, 고분들이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능선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 때문인지 정겨웠다. 노서동 고분군인가? 큰 고분 앞에 앉아서 책을 읽는 어르신, 고분 옆에서 천막을 치고 동작을 맞춰가며 줄다리기 줄을 만드는 아저씨들, 내물왕릉 옆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와 아빠가 정겨웠다. 이들에게 고분은 신기하거나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동네 가로수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풍경들이 근원적인 풍경이 아닐까?

 

  천오백년 전에 고분이 완성되었을 때 능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고, 일부러 나무를 심었을까? 그런 것들이 없었을 것 같다. 길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두손 모으고 허리를 조아리지 않았을까?

 

  고분 30기가 모여있는 대릉원을 산책하며, 고분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곳곳의 조경수들이 망치고 있었다.

  대릉원을 관람객을 받기 위해 공원으로 만들면서 심은 것이라면,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치울 수없다면 몇 그루라도 뽑아내면 좋겠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할 수 없지만......나만의 생각인가?

 

 

 

 

 

 

 

 

    이 나무 세 그루의 사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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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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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으로 시작해서 빅스톤갭의 사랑방이 되어가는 과정을 재밌게 들려준다. 책이 사람의 이야기이듯, 책방도 사람으로 인해 훈기가 가득해진다. 책으로 시작했지만 사람으로 끝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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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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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마술. 읽는 것만으로도 마술에 걸린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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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오거리에서 내려 순천향병원을 지나서 이태원으로 간다. 병원을 지나니 길이 꺾이면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경사가 심하다. 오르막의 꼭대기는 아래로 지하차도를, 양 옆으로 계단

    을 만들었다.계단을 다 오르니, 정면에 알록달록한 외관의 호텔이 보인다.  이태원으로 내

    려가다 커피숍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앉았는데, 뒤에 히잡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인이

    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이래서 이태원인가.....

 

 

     92.

       이태원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놀랄 만큼 참혹하다. 이태원梨泰院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

    이곳에 큰 배나무 숲은 만들었다는 이유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원래는 조선 시대 공무 여행자

    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여관이 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에서 왜군

    에 의한 치욕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또다른 이름이 이태원異胎圓이라는 믿기 힘든 이름이

    었다는 것은 참혹한 역사를 암시한다. 왜군들이 이 지역에 있었던 절 운종사에서 비구니들에

    게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 근대 초기에는 일본인 전용 거주 지역이 조성되어 異他人이라

    는 이름도 갖게 되었으니, 이방의 문화라는 특색은 일찍감치 시작되었다.

 

      너의 이름은 뼈아픈 비밀과 같고, 나는 결코 '너'라는 단 하나의 이름에 닿을 수 없

    다. 너의 영혼과 삶을 정확하게 요약하는 이름은 없다. 이름은 불가능하지만, 또한 불

    가피하다. 너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

   

      

 

   "이태원터"라는 표지석은 이태원이 아니라 해방촌 끝자락 용산고등학교 정문에 있었다. 이태

   원터가 그렇게 넓지는 않았을 것 같고, 나중에 옮겨진 것이 아닌가싶다.  

 

   96.

       국가의 안과 밖이 전도된 이 장소에서 한국인은 다만 여행객일 뿐이다. 한국인을 여행객으

     로 만드는 이 기이한 공간을 소비하려는 한국인들로 이곳은 언제나 넘쳐난다.

 

   98.  

        이곳의 식당들이 주는 매혹의 핵심은 '오리지널'의 맛과 스타일에 유사하다는 것, 한국화되

     지 않은 본토의 맛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오리지널 이전에 있거나 오리지널 이후에 있

     는곳. 그 기이한 활기, 다양성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뉴욕이나 홍콩이 될 수 없다.

 

 

    여행의 끝이 슬픈 이유? "다른 삶의 기미를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삶은 결코 시작되지 않는다.

 

 

 

      109.

           이런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의 사원이 이태원 언덕 높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상

         징이 될 수 있다.

 

 

   81.

         미군 기지의 북쪽, 가파른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해방촌. 이 곳은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이곳

      은 인가가 드문 솔밭이었고, 갑오개혁 때까지 왕실과 문묘의 제사에 쓸 황소, 양, 돼지를 키

      우던 전생서가 있었다고 한다. 1908년경 용산 일대 군사기지를 완성한 일본은 주둔군과 군속

      가족 들을 이 일대에 거주하게 했다. 일본군 육군과 관사와 사격장이 이 부근에 있었다. 해방

      후 일본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집 없는 월남 피난민들이 들어와 자리잡게 되었다.

 

 

 

    

  

 

     해방촌 입구. 여기에서 해방촌 언덕꼭대기까지는 이국 

   적인 장소가 눈에 띈다. 아기자기한 작은 가게들이 나란

   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자그마한 가게 안에 삼삼오오 모

   여 브 런치를 즐기는 외국인들.

 

 

     해방촌 꼭대기에서 내려가는 길은 비탈길.. 가파른 길을 내려가며 여기가 남산자락이라는 것

   을 새삼 느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버스를 탓다. 그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는데 긴장되는 곳도

   있었다.       

  

 

      

      이동네 어디에서든 보이는 건 남산 N타워. 높고 우뚝하게 서있는 것이 강압적이다. 금방이라

    도 들킬 것 같아 다른 짓은 못 할거 같다.

 

       보성학교 앞 길가에서 오른쪽 경사진 계단을 내려가면 어둑어둑한 신흥시장이다. 계단 말

     고 파출소 앞까지 와서 시장 입구쪽으로 내려간다. 시끌벅적은 커녕 흥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몇몇 아주머니가 시장 가운데 평상에 앉아 두러두런 이야기를 나누신다. 물건들을 내

     놓은 걸보면 물건을 파는 시장은 맞지만 너무 고요하고 어두워서 무섭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

     누시는 아주머니들 빼고는 구경하는 사람도 없었다. 가게도 몇개 되지 않는다. 시장이라는 말

     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장이다. 왜 찍냐고 물어볼까봐 카메라들기가 무서웠다.

        

 

                                        

 

      한남동, 이태원, 해방촌 모두 이질적인 것들이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숨을 쉬고 있다.

    그런 것들을 이질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더 이상해 질것이다. 그래서인가 남산 3호 터널앞

    '소월길'이라고 써놓은  이정표가 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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