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쪽.

 

  물이 흐르는 도시.

 

  내 고향 도시의 한복판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강안에서 오랫동안 놀기도 했다. 몇 초 전에 나를 지나간 물이 지금 내가 바라보는 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의 흐름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건 세월에 대한 감각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과 같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로 보이는 강의 흐름을 아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흐름이 동일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잦아지다가 다시 몰려가기도 하고 물결이 싣고 가는 햇빛, 구름, 바람도 그때그때 달랐다. 나는 같아 보이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너무나 개별적인 시간의 이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그후로 나는 물이 흐르는 도시를 좋아했다. 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스러지는 것과 탄생하는 것이 하나의 몸을 이루면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물가에서 맞는 바람도 좋았다. 강풍은 강풍이라서 미풍은 미풍이라서 좋았다. 물 근처에서 해가 떴다 지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내 마음이 간직한 고향의 가장 아래 놓인 그림은 어쩌면 평화로운 물가였는지도 모른다.

 

  덮쳤던 물이 빠져나갈 때 모든 것을 다 잃은 망연자실을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물가에 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물이 가져다 주는 이익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그만큼 물이 가져다 주는 정서적 위안도 한몫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이익만을 챙기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 세계에는 자신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게 많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내가 물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다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된다해도 하루를 물과 같이 동행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이다. 그리고 물 옆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을 최적화시킨다. 내게 그리움을 가르쳐준 스승이 있다면 그건 물일 것이다.

 

 

   작가의 고향 한 복판을 흐르고 있는 남강이다.

   몇해 전, 언니와 함께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에 들렀었다. 강물에 반짝거리는 봄빛이 많이 따뜻했다. 다음해 늦가을에도 갔었다. 봄 풍경도, 늦가을 풍경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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