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존 할럽 지음, 최윤정 옮김 / 삼성출판사 / 2004년 11월
절판


반 고흐는 아마 내 생각에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화가들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로빙화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주인공인 아명이는 살아있을 때 자신의 그림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자마자 전화가 걸려와 사람들이 아명의 그림이 세계권 그림대회의 특상을 받은 것을 알고서 그가 얼마나 엄청난 화가였는가를 깨닫게 된다.

반 고흐도 아명과 같이 죽고 나서야 그의 작품들이 비싸게 팔린 비극의 화가이다. 그는 스물일곱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서른일곱 살에 권총으로 자살을 할 때까지 10년동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1700여점에 이른다고 하니, 이틀이 한 점 꼴의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가 생애 판 그림이 딱 한 점이었다고 하니, 바로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이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기 전의 자화상을 보면서, 그의 강인해보이면서도 무엇인가를 꿰둟어 보고 있는 듯한 두 눈과 짧고 정리되지 않은 붉은 수염속에서 그의 작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를 자르고 나서의 자화상과 비교를 한다면, 그의 눈은 조금 더 누그러들어져 있었다. 아마 그는 광기를 가짐으로써 거의 거침없는 감정을 오히려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소용돌이로 가득차있어 혼란스럽다. 그러나 어둠속에서도 작은 촛불과 같은 따스함, 곧 열기를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은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처음에 보면 아무리 봐도 촛불과 같은 열기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잘 보면, 작은 등잔불 겨우 켜고 오직 감자와 커피만으로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반 고흐는, 그림속에 언제나 자신의 따스함을 불어넣었던 그런 화가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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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년 1월 9일 화요일
날씨: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
같이 간 사람: 어머니, 박 병호, 강 우영, 병호어머니, 병철이형

생 레미의 포플러 (빈센트 반고흐, 1853-1860년)

빈센트 반고흐에게는 유명한 화가 고갱을 친구로 두었다. 그 둘은 같은 작업실에서 일했었지만 그들의 성격이 너무 안맞아 자주 싸웠다. 결국 고갱은 이 작업실에 더이상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갔다. 고흐는 충격이 심한 나머지 자신의 귀 한쪽을 잘라 이웃집에 보냈다. 그 후로 고흐는 정신병원에 있기 되었는데, 이 그림이 바로 그당시에 그렸던 그림이다. 그림에서 보면 그림들은 전부 흐릿하고 물결무늬로 요동치는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포플러 나무도 매우 구불구불하다. 많은 사람들의 예측은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얼마나 불안했으면 이런 그림을 그렸을 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흐의 눈에는 모든 세상이 물결같아 보였을 것이다.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화 (에두아르 마네, 1832-1883년)
베르트 모리조는 몇안되는 여성화가중에 한명이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그림에서 재주가 뛰어나 여성 대화가로 성장했다. 마네는 그녀를 만난 후에 그녀의 초상화를 주로 많이 그렸다고 한다.

생각하는 사람(오귀스트 로뎅, 1840- 1917년)
생각하는 사람은 오귀스트 로댕의 청동조각 작품이다. 벌거벗은 남자가 나무에 걸터앉아 팔을 괴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보면 나는 목욕하려다가 수건이 없어 고민하는 남자가 떠오른다. 이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어떠한 상황에 처한 사람일까? 하고 각자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놀란점은 오귀스트 로댕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성이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 대를 이은 자손사이란 것인가란 생각도 든다.

아프리카 밀림(?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 까닭으로)(앙리 루소, 1844-1910년)
앙리 루소는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는 프랑스 토박이다. 하지만 그는 식물원에 여러번 같다온 후에 잎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중앙에는 호랑이가 물소를 사냥하고 있다. 이상한 점은 호랑이의 줄줄무니의 배열도 이상하고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나있다는 것이다. 또한 밀림에는 그런 동물이 사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조류와 곤충들이 살고있다. 한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않았으니 그런 오류를 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채롭고 밝은 색상과 자연의 모습을 매우 잘 표현하였다. 우영이와 난 그 그림을 보며 독일이 프랑스를 괴롭히던 1차 대전이 떠올라 한참 이야기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큐레이터의 설명이 없었다면 이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픈 초기에는 자제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우리가족이었다.




▲ 반고흐 ‘큰 플라터너스’(1889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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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화재 박물관 1 - 유형문화재.사적
문화재청 엮음 / 사계절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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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 아이의 바쁜일정으로 인해 좀처럼 못하고 있던 체험학습.  사계절 출판사 덕분에 모처럼 체험학습을 하기 위해 수원 화성으로 나섰다.  2월말에 다녀오며 이미 읽었던 책이 있었지만, 여러 출판사의 책을 읽으며 산지식을 위해 다시 한 번 나선 이번 수원화성 체험학습도 아이에게 참으로 의미있는 나들이였다. 
 


정조 18년(1794년) 봄에 시작하여 2년 반 뒤인 정조 20년(1796년) 가을에 완성되었다는 수원 화성.  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 손실 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해서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752년에 나신 정조.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다.1762년 5월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광경을 지켜봐야 했으니 어린나이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던 것인지...이후 왕권이 정비되고나서 나선 화성행차(을묘원행, 화성원행) 그 회한에 대해 다시 한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정조시대에 많은 일들을 했던 실학자들(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등) 할아버지 영조시대와 더불어 조선시대에 있어서 사회, 경제, 문화면에서 대부흥기로 여러 문인들과 뛰어난 화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던 때였다고 한다.

수원 화성 체험을 하며 다시 한번 그 시기를 깊게 깊게 체험하며 이해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날짜: 2007년 4월 28일, 토요일

장소: 수원 화성

같이간 사람: 엄마,나,사계절 출판사분들, 독서도우미클럽 분들

보고자: 최 상철  

2월달에 갔던 수원 화성 답사에 이어 이번엔 사계절 출판사에서 초대받아 화성으로 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저번과 비슷한 장소 사당역 부근에서 차를 탔다. 선생님은 이부영 선생님이셨는데, 수원에서 태어나셔서 수원 화성의 옛 모습에 대해 잘 아셨다고 한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수원 화성을 보수하였는데, 선생님은 화성의 부서진 모습과 보수한 모습을 다 기억하고 계셨다. 버스에서 가면서 선생님이 본 과거 수원의 모습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후 선생님 바로 뒤를 따라 화성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저번 답사에서 먹었던 연포갈비집에서 또다시 점심을 먹었다! 넓고 맛있어 보여서 택했다는데 과연 다른 단체 손님들도 많이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은 화성 옆의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지며 열심히 놀고 다시 화성을 돌아다녔다.




  
2월말에 돌아봤었던 방화수류정 모습       4월말 현재의 방화수류정 모습  




화성을 돌아다니는 도중에 아직도 성벽을 보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흰 돌을 가득히 쌓아두고 있던데, 그래도 성은 전부 다 보수를 끝낸듯 했다. 하지만 바닥은 다 파헤쳐져 있었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달리 문 가운데에 세워져 있던 주춧돌도 사라져있었다. 관광객이 그곳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나도 그 주춧돌로 인해 넘어져 입술이 터졌다. 어쨌든 이번에도 화성 곳곳을 힘들더라도 직접 돌아다녀보니 정말 신났다. 화성을 다니다보면 우리 조상들이 벽을 어떻게 지을지 계산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우리조상이 이룩한 자랑스러운 문화, 화성.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그 화성을 앞으로도 아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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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왕자 책읽는 가족 2
강숙인 지음, 한병호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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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 중에서 들렀던 곳 중 하나인 중원 미륵리사지. 나는 마지막 왕자를 들고 가서 읽으며 그 숨결을 새기고자 했다. 다양한 석탑들과 넓은 터와 풍경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이 곳이 바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첫째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지나가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덕성공주와 마주보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 불상을 세우고, 그 사이로 석등을 세운 곳이라고 전해진다. 물론 그 출처는 정확하지 않으며, 제작된 년도는 고려 초기로 생각된다. 이 중원미륵리사지속에서, 마의태자의 소나무와 같은 신라를 향한 굳건한 그 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듯 했다.

마지막 왕자는 신라 제 56대 왕 경순왕의 태자, 선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후삼국 시대에 대한 역사책을 읽으면서, 내가 주로 보아온 시점들은 모두 당시 백성들에게 칭송받던 왕건이었다. 견훤이 왕이 되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나온 적도 없고,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이 떠오르는 해가 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조차도 그 이야기가 소개돠지 않았다. 오직 왕건의 이야기로, 고려의 건국자였던 그가 어땠는지만 나와서 한때는 잘못된 관점만을 옳은 것이라 여기고 믿고 지내왔다. 하지만, 이번에 마지막 왕자를 읽으면서 후삼국 시대에 서기때부터 내려져온 신라의 역사가 무너지는, 그런 엄청난 순간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는가에 대하여 이 이야기가 나왔다.


선과 막내 아들은 경순왕이 신라를 왕건에게 넘기자,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는 신라가 떠나는 것을 보며 선은 마의만을 입고 다니며 떠돌아다녔고, 막내 아들은 세상의 속리에서 벗어나 불교의 도를 깨우치기 위하여 스님이 되어 떠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내일,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중국에 병합한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식민지로 넘긴다고 한다면 그 때의 내 심정은 어떨까? 아마도 애통하다못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말 것이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아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우리나라를 구하려고 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그 장렬한 혼을 빼닮고 싶었던 나였다. 그리고 선도 똑같았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견훤보다도 더 무섭다고 생각했던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그 순간, 그의 마음은 찢어지는듯 아팠었을 거라는게 내 마음까지 전해졌다.

경순왕이 선에게 물었다.

"너에게 약혼자가 있다. 비록 아름다우나 죽을 병에 걸려 곧 있으면 죽을 참이다. 또 다른 여인이 있다. 귀족집안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너의 선택은 무엇이냐?"

나는 그 질문의 의도조차도 파악 못하고, 책을 읽으면서 당장 '당연히 귀족 집안 여자를 선택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선은 그것이 신라와 고려의 이야기에 해당하냐고 물으며, 그는 약혼자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나라를 위해 투지를 살리겠다고 앞서 말한 것과, 당장에 귀족 집안을 택하겠다는 책을 읽으면서 나의 심리변화에 참 놀랬다. 결국 나 또한 선처럼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도전을 하면 더 행복할 것을 알면서도, 안전하면서 불행하지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길을 택하려 한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일반인이고, 의지가 약해 인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쪽일까? 마지막 왕자를 읽으면서 선과 같은 사람이 되고 프나. 그렇지 않은 나 또한 1000년의 아름다운 신라를 보존하려 했던 것과 같이 이 대한민국을 보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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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대회
게으른 고양이의 결심 -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45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임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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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 ]나도 이랬던가? 한없이 늘어질 때가 많았지... 가끔 하루종일 이 게으른 고양이처럼 뒹굴거리기만 하는 일이 공휴일이면 생긴다. 그런 날의 느낌은 마치 하루가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속으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쉬는 느낌이라고 우기면서~~~ 이 고양이는 그래도 집안에서의 생활이 무척 계획적이고, 단지 외부 활동만을 싫어할 뿐이라 여겨져서 무작정 게으르다고 할 수 있을까? 호~

갇혀 사는 듯한 아이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게으른 고양이의 결심'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라고는 공부에 허덕이며 만족도 불만도 어쩡쩡하게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만 떠올랐다. 축구도 하고 노래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보며 취미를 즐길 시간 정말 있었던가 하고 말이다. 적절한 계획과 함께 의욕으로 충만되려면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도 공부와 친구들 관계 적당한 운동 시간의 계획을 세울줄 안다면 하는 바람이었다.
(일요일이면 한번씩 나가보는 집에서는 꽤 먼 중랑천 공원. 오늘 일요일의 장미내음이 물씬나는 꽃길은 최고의 보너스였다~)

무언가를 해내더라도 하루 아침에 한꺼번에 해내는 것은 무리일 뿐 아니라 성과도 없다. 꾸준히 열심히 조끔씩~ 쉰다고 해서 하루 종일 확실하게 노는 것보다 할 일이 있다면 적게라도 꼭 해두고 논다면 하루가 정말 행복하고 만족스럽지 않을까 한다.
(의욕적인 삶~ 운동도 여행도 정말 활기를 넣어주는 듯 하다. 일요일이면 탁구, 배드민턴, 이렇게 함께 활동 해주는 아빠도 아이에게는 신의 선물 아닐까? ^^* )

고양이의 벼룩 없애기 작전에서 시작되었으나, 차례 차례 다양하고 전문가적인 여러 모습들을 살펴보며 우리집의 최고 게으른 고양이인 내 살들을 좀 우째야겠다는 생각은 들더라~ 끄응 ^^;;;

4학년 진성이는 이렇게 읽었고~
독후활동<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기>하며...

14살 철이는 요렇게 읽었다고 한다~

<책 먹는 여우>의 저자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또 다른 동물의 이야기. 책 먹는 여우는 책을 매우 좋아하고, 다 읽으면 그 책을 먹어서 식사를 하는 여우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번엔, 한 없이 뒹굴기를 좋아하는 뒹굴이의 이야기였다. 뒹굴이의 하루 일과는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먹고, 소화시키기 위해 자고, 몸을 다듬고, TV를 시청하고, 유일하게 움직이는 시간인 화장실 가기, 소파에 누워서 공부하기... 거의 모든 일을 소파 위에서 해낸다. 이런 게으른 고양이가 결심을 했다면 도대체 어떤 결심을 했다는 것일까?

사건의 시작은 옆집에 사는 개 루디가 시끄럽게 축구를 하고 있을 때 하필 뒹굴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게 되어서였다. 뒹굴이는 최대한 참아보려 했으나 결국 화장실로 향했고, 그러다가 헤딩 각도를 잘 못 조준하고 달려온 루디와 쾅! 하고 부디졌다. 그 때 뒹굴이는 루디에게 매서운 벼룩을 옮았다. 이제 어쩌지? 뒹굴이는 벼룩이 무는 것을 정말 싫어했고, 이 벼룩이 다른 동물과 접촉하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벼룩을 없애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예쁜이 기니피그를 만나서 미용을 해주고, 젖소에게 달려드는 파리들을 쫓아내주고, 루디의 축구 코치가 되어주고 또순이 고양이의 노래 강습사가 되어 준 뒹굴이는 어느새 벼룩이 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우 기뻐하며 다시 소파로 돌아온 뒹굴이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느낀다. 몸이 계속 근질근질하다! 가려워서가 아니다. 계속 돌아다니는 게 적응이 되어 이제 다시 뒹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한없이 뒹굴다가 한 번 움직이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 다음부터는 다시 침대에 눕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게으른 고양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정말 새로운 삶을 원한다면, 몸을 직접 움직여 보라는 좋은 교훈을 가져다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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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대회
동굴 : 작은 물방울이 만든 깊고 넓은 세계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55
손희정 지음 / 스쿨김영사 / 2007년 6월
구판절판


2009. 05. 09 토요일 그럴 수 없이 맑은 날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의 친구들의 가족들과 함께 (총 5가족이었다.) 수안보 리조트로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이 책을 읽고 키워온 동굴에 대한 위대한 야망을 품에 안고서, 마침 그 근처에 있던 고수동굴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고수동굴은 과연 사람이 많이 오는가보다. 그 주변으로 다양한 기념품 가게들과 물건, 식사를 팔기 위한 가게들이 쫘르륵 줄을 서 있었다. 말이 보여서 체험을 잠깐~ 물건을 사라는 장사꾼들의 외침을 애써 무시하고 고수동굴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가파른 계단, 어두운 연출에 신비하게 형성된 온갖 것들... 거기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도 자연이 만들어진 예술이라는 것에 감탄할 따름이다. 특히 제일 신기했던 것은 계단식 논 모양을 형성했던 것이고, 제일 아름다웠던 것은 창현궁이다. 하나의 궁전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 이름은 말그대로 이 엄청난 것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 색다른 궁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맛이 있다.


가끔 가다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마치 영화 에일리언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섭고 징그럽게 형성된 것들이 있어서 갑자기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모양도 꽤 신기했었고, 매우 깊이 파인 용식공들 속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중간에 푯말에서 "여기서 뒤를 돌아보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우와! 창현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왕국이 펼쳐졌다. 이건 인간이 만든 황금 궁전보다도 훨씬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중한 동굴이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습기가 많아도 빛이 있어야 자라는 이끼들이 사람들이 비추는 전등으로 인해서 자라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그 깨끗한 색깔도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이런 소중한 동굴을 보호할 줄 모르는 관광객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종유석이나 석순들을 떼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심각한 동굴 오염, 빨리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지면서 만든 아름다운 세계. 그런데 짧은 관람 시간으로 인해서 미탐사 구역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것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동굴 보호 차원에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만두기로 했다. 비록 동굴속의 생물들은 보지 못했지만,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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