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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1 ㅣ 창비세계문학 79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평점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36)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대표작 <염소의 축제>는 권력 구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개인의 저항과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는 권력과 욕망을 치밀하게 그려낸 정치색이 짙은 작품이다. 요사는 "만약 불구덩이 속에서 내 작품 중 하나만 구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작품을 택할 것이다."라고 할 만큼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소설은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상황이 복층적으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A와 B의 대화에서 A와 C, 혹은 C와 D의 이야기가 행간 구분 없이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사건과 등장인물들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서술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맥락을 놓치게 된다.
시대 배경은 1950년 전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페루의 '마누엘 오드리아' 체제에서 일어난 정치적 탄압과 성적 타락, 부정부패가 만연한 암울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
두 권에 걸친 길고 복잡한 줄거리를 요약하면,
언론사 기자 싸발리따는 과거 아버지 운전기사였던 암부로시아를 우연히 만나 까떼드랄 주점에서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싸발리따는 부유한 중산층 출신으로 대학에서 반독재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하다가 체포된다. 사업가인 아버지 페르민은 오드리아 정권과 결탁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싸발리따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다. 이후 아버지와 정치노선이 다른 싸발리따는 기회주의적인 아버지의 정치 행보에 반기를 들어 집을 나온다. 대학을 그만두고 언론사에 취직하여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인 삶을 살아간다.
오드리아 최측근 까요는 보안 총국 책임자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반체재 세력들이 일으킨 혁명 진압 실패로 쫓겨난다. 싸발리따는 까요의 정부 라무사 살해 사건 취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암부로시아의 은밀한 관계, 라무사가 아버지를 협박한 이유 등 라무사의 죽음과 관련된 숨겨진 사실이 드러난다.
독재자 오드리아 정권의 권력 내부 실상과 싸발리따 주변 인물들 이야기를 통해 당시 페루의 정치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다채로운 서사와 일관된 이야기의 흐름은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한다.
정치적인 소설을 유머러스하게 쓰면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요사는 이 작품(1969)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썼다. 그러나 이후 작품들을 보면 분위기를 전환하여 농담과 익살로 가득하다.
요사의 주요 작품들 중, 페루 국경지역에 주둔한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설치한 '성 위안부'와 군부를 교묘하게 조롱하며 유머러스하게 쓴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 14살 연상인 친척 아주머니와 두 번째 결혼한 자전적인 이야기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염소라는 별명을 가진 도미니크 공화국 독재자의 최후를 그린 <염소의 축제> 모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지리적 위치와 인종, 문화가 다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는 국경을 초월한다. 남미 문학의 특수성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은근한 중독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