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후지사키 사오리 지음, 이소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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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마음을 나는 ‘슬픔’이라고 불렀다. 누군가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비참함을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여겨지고 싶어서 나는 울었다. (22p)

우리는 적어도 주변의 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관계의 망 속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외롭다거나 고립되었다고 느낀다. 이 글의 서술자는 열네 살로부터 출발하는 ‘나쓰코’이다. 이 소설은 나쓰코의 감정선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나쓰코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받는 괴로움과 슬픔이 그대로 나에게 이입되었다. 그렇기에 솔직히 읽는 내내 답답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나쓰코는 어쩐지 주변에 친구가 없고 열네 살에 만난 한 학년 선배 쓰키시마에게 이끌리듯 곁에 머무른다. 쓰키시마는 나쓰코가 원했던 말을 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직설적인 언행으로 나쓰코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는 내 인생의 파괴자인 동시에 창조자였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이토록 괴로울 줄이야.” 이 말처럼 나쓰코는 언제나 쓰키시마에게 휘둘리며 그 언저리에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한다. 아무래도 나쓰코 입장에서 사건을 대하다보니 쓰키시마가 나쓰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가족? 친구? 연인?

쓰키시마는 나쓰코를 ‘쌍둥이’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남남이니 생물학적 의미로서의 쌍둥이가 아니고, 정신적인 연대를 의미할 것이다. 주변에 자신과 가치관이 거의 흡사하거나 생각하는 것들이 비슷하면 쌍둥이 같다고 쓰일 테니까. 쓰키시마는 나쓰코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쓰코는 쓰키시마와 쌍둥이였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결코 그럴 수 없다.

나쓰코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 없어 피아노를 매개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이었는데, 쓰키시마를 만나 수많은 감정을 맛보고, 그 끝에 밴드를 결성하여 자신이 있을 곳을 찾게 된다.

쓰키시마와 쌍둥이가 아니어서 괴로워했지만 대학생이 되고 밴드를 결성하여 소정의 성과를 얻은 후, 나쓰코는 결국 쓰키시마와 쌍둥이가 아니었기에 이런 날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을 보며 나쓰코는 조금은 쓰키시마로부터 독립하고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나쓰코는 완벽하게 앞으로의 나날이 희망차다고 마냥 낙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쓰코의 정신적인 성장이 조금은 반가웠다.

이 소설은 밴드 ‘SEKAI NO OWARI’의 피아니스트 후지사키 사오리가 오년 여에 걸쳐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사오리의 성장 과정이 나쓰코와 비슷하다고 하니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나쓰코를 어떻게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볼 수 있었을까. 학창시절에 느낄 수 있는 불안과 고민들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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