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가 없다는 것 - 무지가 무지를 끌어가는 시대,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질문
천정근 지음 / 포이에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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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설교는 많지 않다. 곱씹고, 되씹으며 읽어낼 설교집은 더더욱 희소하다. 천정근의 설교집은 그 희소한 몇 사례에 해당한다. 그는 20대에는 불가지론과 회의주의를 오가는 문학청년이었다. 유학 간 러시아에서 회심을 경험하고, 20대 후반부터 설교했다. 그러다 교회와 신앙의 현실에 좌절하며 제도 교회를 떠났고, 톨스토이 작품 속의 종교성에 관해 공부하면서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한국으로 건너와 신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하여 스무 명 남짓 성도들을 섬기고 있다. 그의 이력을 알지 못한 채 글을 먼저 접하며 느꼈던 모종의 낯선 반가움이 뒤늦게 납득이 되었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다 제도교회의 수호자인가 했는데, 교회 이름마저 ‘자유인교회’라고 지어놓고, 구도자이자 예언자 전통에 서고자 한 이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연민이 없는 시대’의 풍경을 담은 에세이 <연민이 없다는 것>(케포이북스)을 출간한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이 책에는 21편의 설교가 담겨있다. ‘무지가 무지를 끌어가는 시대,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질문’이 부제다. 첫 장의 제목은 ‘다시, 평신도를 깨운다’이고, 11장의 부제는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인 걸로 보아, 사랑의교회 사태가 그의 고뇌를 촉발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설교에서는 스치듯 언급될 뿐이다. 그의 파토스는 무지하고 무정한, 그래서 도무지 기독교적 진리를 담아낼 수 없는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 강력한 질타와 극복 의지로 충천하다. 이와 같은 때에, 이런 책이 나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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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길 위에서 길을 묻다 - 열흘간의 다크 투어리즘
장수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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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은 앞으로 일 년 동안 마르고 닳도록 쓰게 될 캐치프레이즈다. 그러나 정작 이 계기를 통해 어떤 참신한 질문을 꺼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침신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는 장수한 교수는 그동안 사회사 혹은 문화사적 풍미가 강한 역사서를 몇 권 선보여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는 ‘열흘간의 다크 투어리즘’이란 부제를 달고 유럽의 종교개혁지 탐방기를 출간하며 기발하게 중세와 현대의 만남을 주선했다. 종교개혁이 중세라는 어두움을 뚫어내고자 했던 분투라는 사실과 동시에 그 개혁자들에게도 그늘이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다루어 역사학자로서 소명감과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루터의 주요 궤적을 좇아 보름스, 아이제나흐, 뮐하우젠, 비텐베르크에 이르는 독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코스, 체코 프라하에서 뉘른베르크, 아우구스부르크, 취리히, 바젤로 이어지는 남부 코스, 제네바, 스트라스부르, 에슬링겐, 뮌스터, 스톡홀름으로 이어지는 박해와 학살의 현장 코스를 각 열흘 일정으로 볼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안내하는 역할도 자처한다. 각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 이야기는 충실하게 정리되었고, 문학적 묘사로 생동감이 완연하게 전달된다. 종교개혁을 기리며 유럽여행을 예정하고 있거나 시간 축이 아니라 공간 축을 따라 실재감을 느끼며 종교개혁의 전모를 파악하고 싶었던 독자에게는 이보다 나은 선택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림과 사진 자료가 꽤 많이 사용된 편인데 흑백으로만 처리된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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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일보 - 육필일기에 담긴 삶과 시대, 고뇌와 꿈
김교신 지음,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엮음 / 홍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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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선생(1901-1945)의 미간행 일기가 해역 작업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열 살 때부터 일기를 써왔던 선생은 어떤 계기로 30여 권에 이르는 일기를 소각해버렸는데, 1932년 1월부터 1934년 8월까지의 일기를 기록한 공책 두 권이 따로 보존되어 제자들에게 전해졌다. 최근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가 이를 2년간 현대어로 고치고 내용을 대조해서 바로잡는 해역과정을 거쳐 출판한 것이 이 책이다.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겠지만, 대중적으로 더 의미 있는 것은 ‘일보’ 즉, ‘하루의 걸음’을 기록한 한 세대 전 신앙인 김교신의 생활세계를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김교신 선생은 한편으로는 우치무라 간조의 맥을 잇는 무교회주의자로 그려지지만, 그의 글과 삶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이들에게 김교신이란 이름은 ‘한국 개신교 신앙의 가보지 않은 길’을 오롯이 대표하는 돋보이는 상징이다. 새벽 산기도로 단련된 개인의 단단한 경건 생활과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 위에’로 집약되는 성경에 관한 치열한 연구, 일제치하 민족의식을 끝까지 관철해낸 지사적 면모 등에서 비루하지 않은 강골의 기독인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신앙인의 한 표상으로 그를 기억하게 된다. 뜻밖에 최근 몇 년 사이에 김교신 선생에 대한 책들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연구자들의 저술 외에 그의 일차 자료가 이렇게 실하게 나왔으니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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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으로의 부르심 - 총체적 구원을 위한 선교적 교회론
대럴 L. 구더 지음, 허성식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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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논의에 ‘진짜’가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대안적 교회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이들은 이 주제로 적지 않은 책들이 나온 것을 안다. 그러나 비슷한 주제와 내용의 반복에 머무르거나 뭔가 과녁에 제대로 맞은 느낌이 아닌 상태로 논의만 길어지는 양상이 아닌가 의구심이 일던 차에 등장한 대럴 구더 <증인으로의 부르심>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위상이나 내용의 중량감 측면에서 제대로 이 논의를 곱씹을 저술로 손색이 없다. ‘선교적 교회’란 이제 서구가 ‘후기 기독교시대(post-Christendom)’로 접어들었으며, 기독교는 자신들이 알고 행하던 모든 것을 더 이상 자명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선교적’으로 새롭게 재검토/재구성해야 한다는 각성에 동의하는 흐름을 말한다. 이 책이 잘 보여주듯 이 논의는 칼 바르트, 데이빗 보쉬, 존 맥케이, 레슬리 뉴비긴 등의 저술에 깊이 빚지고 있다. 최근 ‘선교적 교회’ 논의가 복음주의권의 트렌드처럼 간주되면서 에큐메니컬 학자들의 기여와 맥락이 제대로 음미 되지 않았던 점은 유감스러운데 대럴 구더는 프린스턴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가르치며 학문적이면서 운동적 측면에서 그간의 논의를 제대로 아우르는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기독론, 교회론, 선교론, 조직신학, 성경, 리더십 등을 차례로 한 챕터씩 다루고 있는데 꽤 밀도 높은 선교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신학에 대한 선이해가 있는 이들이라면 오랜만에 작정하고 읽을 묵직한 책을 만나게 될 것이다. 혹은 ‘선교적 교회’에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이라면 에둘러가지 말고 이런 책을 심호흡하고 읽어내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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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 예배.세계관.문화적 형성 문화적 예전 시리즈 1
제임스 K. A. 스미스 지음, 박세혁 옮김 / IVP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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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임박해서 나오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갈 상황이었으나, 출판사 측에서도 자신하듯 이 책은 올해의 기대주다. 칼빈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는 제임스 스미스는 아마 현재 미국 복음주의, 개혁주의 영역에서 가장 핫한 학자일 것이다. 존 카푸토 아래서 자크 데리다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고, 최근에는 사회사상의 대가 찰스 테일러를 기독교권에 소개하느라 힘쓰고 있는 한편,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듯 아우구스티누스부터 타협 없이 기독교 전통을 훑어내는 급진정통주의(Radical Orthodoxy)를 적극적으로 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그는 결코 만만치 않은 철학과 신학의 최근 조류를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보란 듯이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모색의 결과물로, 문화적 예전(Cultural Liturgy)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우리는 향후 몇 년간 그의 책이 줄줄이 번역되어 소개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기존의 기독교 세계관 논의가 ‘생각하는 인간’ 혹은 ‘믿는 인간’을 전제하면서 합리주의적, 인지주의적 관심에 경도되었다면, 이제는 인간의 욕망 형성구조(desire formation)에 더 주목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하는 인간’이란 통찰이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고 본다. 제임스 스미스는 이렇게 세계관 논의를 인식의 문제에서 욕망의 형성 문제로 전환하면서, 예배야말로 무엇을 사랑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왜 사랑하는지에 관한 가장 근원적 형성이란 주장을 들고나온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뚫고나갈 기독교적 대안은 욕망의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예배이며, 이를 문화적 예전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집약된다. 그의 기획은 상당히 많은 주제의 논의구조를 바꿀 야심찬 것이며, 성공한다면 기념비적 작업이 될 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머리와 가슴을 풀 스케일로 가동하게끔 도발하는 책이 나왔으니, 잘 읽고 우리는 어떤 문화적 예전을 시전 해야 할지 고민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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