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듣습니다.. - 그렇게 말해도 이해할 줄 알았어!
김윤정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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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외모만큼이나 말투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굴만 봤을 때는 취향 저격이었던 사람인데 말하는 걸 듣고 호감이 확 식었던 적도 많고, 반대로 얼굴은 내 취향이 아닌데 직접 만나보고 대화를 나눠 보니 목소리도 너무 좋고 말투가 다정해서 호감이 확 생겼던 적도 있다. 상담가 김윤정의 책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듣습니다>에는 말 한마디로 연인, 부부, 가족, 자녀, 친구 관계가 가까워지거나 멀어진 사례가 다수 나온다.


오래 사귄 커플 또는 부부인데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는 대체로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가 말다툼이 생겨서 돌이킬 수 없게 되거나 관계가 망가질까 봐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다. 저자의 솔루션은 이렇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가 힘든 사이일수록 일부러라도 자리를 마련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 애인이라면 앞으로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부부라면 결혼에 만족하는지 틈틈이 확인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만약 상대의 생각과 가치관, 삶의 방식이 나의 그것과 다르고, 그것을 인정하거나 존중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재고해보는 것이 좋겠다.


결혼 후 배우자가 변했다고 느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배우자에게 속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한 여자의 사례가 나온다. 여자는 남편이 명문대를 나와 회계사라는 좋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천박한 말을 일삼고 무례한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실이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이렇다. 결혼 전 여자의 눈에는 남편의 학력이나 직업만 보이고 단점들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단점들을 보았더라도 못 본 척 넘어갔을 것이다. 이제 결혼을 하고 남편의 학력과 직업이 당연해지니 단점들만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은 배우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말들은 진실이 아니며 현실과도 다르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라도 그 사랑을 지속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자식 또한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가까운 관계로부터 상처받고 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상대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쉽고 편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말이다. 이 책은 이 밖에도 관계를 회복하는 바람직한 말 습관을 자세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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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과 신호 - 당신은 어느 흔적에 머물러 사라지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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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정신분석 상담을 하는 사람은 정신분석학 또는 심리학만 제대로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다. 24년 경력의 정신분석 상담가 윤정의 책 <흔적과 신호>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정신분석 상담가가 정신분석학 또는 심리학만 제대로 공부하면 상담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철학, 사회학, 윤리학 분야는 물론 물리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면역학 등의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정신분석상담가 또한 이러한 변화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29명의 물리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온 문명을 성찰하고 이성과 현상이 만나는 지점을 관찰한다. 제1부 '상상의 질서'에서는 아낙시만드로스, 데모크리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 같은 사상가 또는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이 활약했던 시기에는 학문의 구분이 없었다. 철학자들이 과학을 연구하고, 과학자들이 철학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들은 특히 우주의 원리와 자연현상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원자, 분자 같은 자연과학의 기본 개념이 탄생했고, 지구와 태양의 관계, 시간의 흐름 등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사상이 발달했다.


제2부 '상징의 질서'에서는 마르틴 루터, 데카르트,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라이프니츠, 데이비드 흄, 칸트, 헤겔, 마르크스 같은 근대 사상가 또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종교가 만사를 좌우했던 중세의 끝 무렵에는 신이 아닌 인간, 궁극적으로는 자아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답했다.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어도 지금 여기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칸트는 인간이 경험을 통해 인식을 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경험이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


제3부 '현상의 무질서'에서는 마이클 패러데이, 맥스웰, 니체,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하이데거,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자크 라캉, 존 휠러, 자크 데리다, 스티븐 호킹, 들뢰즈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근대가 의식을 발견한 시대였다면 현대는 무의식을 발견한 시대다. 프로이트는 자아와 대결하는 '초자아'라는 개념을 선보인다.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초자아와 대결하며 그 결과로서 사고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학과 철학을 결합하며, 심지어 양자역학과의 관련성도 찾아낸다.


이 책은 서양 문명의 발달 과정을 저자 고유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수많은 학자들의 사상으로부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고,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열정이 놀랍다. 인물의 생애나 사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 스스로 해당 인물의 사상에 대해 고찰하고 여러 방면으로 사유한 과정도 담겨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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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이수형 지음 / 북퀘이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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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컬러링북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무채색 도안 위에 색연필이나 물감을 이용해 알록달록한 색을 입히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도 몇 번인가 컬러링북에 색칠을 해본 적이 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색을 골라 칠하는 단순한 행위인데도 나도 모르게 푹 빠졌고 시간이 금방 갔다. 그동안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생각이나 감정들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사람들이 왜 컬러링북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술심리 전문가 이수형의 책 <직장인 마음을 읽다>에 따르면, 미술은 실제로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좋아하는 재료로 형태를 만들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남아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고 평소에 느끼지 못한 즐거움 또는 흥분을 느끼게 된다.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진정되는 것 역시 비슷한 원리다.


저자와 같은 미술심리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내담자와 상담한다. 첫째는 내담자가 몇 시간이고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스트레스 해소를 더하면 완성한 그림을 찢거나 여태 작업한 작품을 부수는 퍼포먼스가 더해진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는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가족이나 친구, 애인, 직장 상사, 동료, 고객에 대한 원망이나 불만을 풀게 된다. 둘째는 내담자가 그린 그림을 보고 내담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집(Home)이나 나무(Tree), 사람(Person) 그림을 보고 내담자의 내면을 유추하는 이른바 'HTP'검사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기업의 최고경영자, 중간관리자, 사원 등을 대상으로 직접 미술심리 상담을 진행한 사례 해석 부분이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그림들 속에서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저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일례로 어떤 CEO가 높은 산을 그렸다. 산 자체만 보면 그 CEO는 높은 목표를 지닌 진취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 산에 나무 한 그루도 안 보이고 그 산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개성 없이 비슷비슷한 모습이라면 목표를 추구하느라 주변은 살피지 못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저자는 이 CEO에게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세부적인 사항을 잘 챙기라는 조언을 남겼다.


책에는 청년창업자, 감정노동자, 워킹맘, 원가족의 문제를 지닌 직장인을 위한 미술심리 상담 내용도 나온다. 어떤 워킹맘은 남편과 아들이 밝게 웃으며 손 흔드는 그림을 그렸다. 남편 옆에는 '00아내', 아들 옆에는 '**엄마'라고 적혀 있었다. 이 그림을 보면 내담자의 눈에 남편과 아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이지만 정작 내담자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분명 가정과 직장 양쪽에서 최선을 다하는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겠지만, 내담자 개인의 삶은 없다고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내밀한 감정들을 그림 한 장으로 읽어낼 수 있다니 놀랍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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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문학 경영의 지혜 - 인문학에서 경영의 길을 찾다
선호상 지음 / 미래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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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중국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을 실제 경영 현장에 도입하는 방법이 없을까. <CEO에게 길을 묻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학> 등 베스트셀러 책을 다수 집필한 선호상의 신간 <신인문학 경영의 지혜>는 중국 고전을 비롯한 인문학 고전을 통해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안목과 지혜,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관리를 등용할 때 '신언서판'을 중시했다. 신언서판은 인물의 용모, 말솜씨, 글솜씨, 판단력을 일컫는 말이다.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널드의 인재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맥도널드는 '고객을 우선시하고, 변화 및 혁신을 주도하고, 효과적이고 솔직하게 소통하며, 인재를 육성하고 활용해 팀워크를 달성하고, 영향력으로 이끌어 결과 달성을 위해 실행하고, 전략적으로 계획하고 행동할 것'을 이른바 '8가지 인재상'으로 확립해 인사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나라 강희제는 지금도 많은 중국 지도자들이 롤모델로 삼는 인물이다. 강희제가 위인으로 칭송받는 이유 중 하나는 만주족 출신 왕으로서, 만주족의 천 배가 넘는 한족을 다스리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희제가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는 강희제가 인재를 유치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든다. 강희제는 명망 있고 유능한 인재가 있으면 손수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족 선비 이곽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무려 7번이나 이곽의 집을 찾기도 했다. 강희제는 또한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데에도 열중했다. 이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에 소홀한 사람들이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삼국지의 영웅 유비에게서 배울 덕목은 무엇일까. 저자는 유비가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다는 것을 든다. 더욱 대단한 것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유비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을 대접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잘난 사람이 잘난 줄 모르고 소박하고 겸손하게 굴고, 낮은 자리에 있을 때나 높은 자리에 있을 때나 주변을 챙기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니 사람이 점점 모일 수밖에. 이 밖에도 인문학과 경영의 비결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유용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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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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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갑자기 '여성'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화장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안 한 듯한 얼굴로 다녔던 친구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화장을 하지 않은 채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김세희의 소설 <항구의 사랑>을 읽으니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발버둥 쳤던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혹시 그들에게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소설의 배경은 항구의 도시 목포다. 준희는 힐러리 클린턴이 우상인, 똑소리 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다. 목포에서 제일 가는 여자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준희는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목표다. 그런 준희의 유일한 낙은 조성모의 팬픽을 쓰는 정도다. 10대 시절 내내 조성모를 좋아한 준희는 특기인 글재주를 발휘해 팬픽 사이트에 조성모의 팬픽을 연재하고 있다. 학교에선 학생들이 팬픽을 읽는 걸 금지하지만 준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준희는 언젠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조성모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한다.


2학년이 된 준희는 친구의 소개로 학교 연극부에 들어간다. 학교 축제에 올릴 연극의 대본 작업에 투입된 준희는 생애 처음으로 청춘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그리고 한 선배를 알게 된다. 연극의 주연을 맡은 민선 선배다. 민선 선배의 연기를 보면서 준희는 '배우란 저런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소심한 자신과 달리 항상 활기 넘치고 씩씩한 태도가 멋있어 보이고,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외모도 점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준희는 용기를 내 민선 선배에게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쓴다. 준희의 편지에 민선 선배가 답장을 하면서 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준희처럼 동성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내 취향이 아닌 이성보다는 내 취향인 동성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자니 동성애자니 하는 구분이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애자가 모든 이성에게 끌리는가? 동성애자가 모든 동성에게 끌리는가? 결국 특정한 성별이 아니라 끌리는 '사람'에게 끌릴 뿐이다). 준희 또한 동성애자였다가 이성애자가 되었다거나 양성애자였다기 보다는(어느 쪽이든 맞을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타입이 있고 우연히 좋아하는 타입인 사람을 자신이 다니던 여고에서 만났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고에서 자신이 여성임을 인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며 지냈던 준희가 대학에 입학한 후 '여성'이 되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숨겨야 했다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준희는 남자 선배들의 마음에 들고 여자 동기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 입던 치마를 사 입고, 익숙지 않은 구두를 신고, 머리를 길러야 했다. 10대 시절 내내 조성모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고, '여자답지 않게' 국제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 있다는 사실도 감춰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아왔던 친구 인희가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짧은 머리에 헐렁한 바지 차림으로 준희의 대학으로 찾아왔을 때는 행여 같은 과 사람들이 인희를 볼까 봐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준희가 인희가 얼마나 다를까. 준희는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인희가 남자처럼 옷을 입고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이 '역할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 부담스러웠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계속 그렇게 옷을 입고 행동하는 게 못마땅하고 창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준희 역시 대학에 들어간 후 '여자처럼' 옷을 입고 '여자처럼' 행동했다. 이것은 왜 부담스럽고 창피한 '역할 놀이'가 아니란 말인가. 소설 속에서 준희는 묻는다. "가상의 기대와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살게 될까". "언제부터 남자가 이렇게 중요했지".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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