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아르떼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 행복을 그리는 화가
한경arte 특별취재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 개최 중인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에 다녀왔다. 사실 전시를 보고 오기 전까지 미셸 들라크루아라는 화가의 존재조차 몰랐다. 들라크루아라는 이름을 듣고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를 떠올렸을 정도로 무지했다. 결론을 말하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로 전시가 정말 좋았고, 전시의 주인공인 미셸 들라크루아의 작품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 


관심을 이어가기 위해 미셸 들라크루아를 다룬 책도 구입했다. 한경arte 특별취재팀이 만든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는 미셸 들라크루아의 대표 작품과 특징, 그의 생애와 인터뷰, 프랑스 파리 '벨 에포크' 시대의 역사와 문화, 작품에 등장하는 명소 등이 실려 있는 매거진 형식의 책이다. 전시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아트 굿즈 교환권이 포함되어 있어서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구입해서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 파리 14구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나고 자란 '파리지앵'인 그는 40대 무렵 불현듯 머릿속에서 파리의 풍경들이 뒤섞이는 경험을 했고, 그 때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주로 유년 시절에 본 파리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다. 파리를 대표하는 명물인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대성당, 물랭 루주, 센 강의 다리들이 그가 주로 그리는 소재들이다. 특이한 건 눈에 보이는 실제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억하는 풍경을 그린다는 점이다. 


들라크루아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30년대 후반의 파리 풍경을 주로 그린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인 이 시기를 서양에서는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전쟁과 전쟁 사이의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추억하는 화가의 마음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한,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의 작품이 더 애잔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신미리 큐레이터가 미셸 들라크루아를 직접 만나러 그가 사는 도빌로 가서 진행한 인터뷰도 실려 있다. 그가 어떤 집에 살고 있고, 작업실에서 어떻게 작업하는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해온 2448 아트스페이스 박미경 대표의 인터뷰와 전부터 들라크루아의 오랜 팬이었고 현재는 들라크루아 그림을 소장하고 있기도 한 KBS 양영은 기자의 글도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단 한 줄의 희망
한동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나 인문서, 사회과학서를 읽기 힘들 때, 나는 주로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최근에는 아포리즘 중심의 책도 종종 읽는데, 이 책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한국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교황청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를 지냈으며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 <로마법 수업> 등의 저자인 한동일의 신작인 이 책은 저자가 마음을 기대고 살았던 라틴어 문장들과 그에 관한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청 변호사로, 명문대 교수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은 저자인데 의외로 고통과 방황, 좌절의 연속인 인생을 보냈다고 해서 놀랐다. 학창 시절에는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마음속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든 시험을 치르고 나면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때문에 좌절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가난한 집안의 상처받은 아이라는 콤플렉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 관계 때문에 힘든 적도 많았다. 저자는 거의 20년 넘게 남성만이 있는 집단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 함께하는 초밀착형 기숙 생활을 했다. '딱 저 사람만 없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어디에나 있었고,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자책하는 시간도 길었다. 최근에는 사제직을 내려놓고 홀로서기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고백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저자가 겪은 인생의 고비들과 그 때마다 힘이 된 문장들이 함께 제시되어 위로와 용기를 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문장들은 운명, 희망, 꿈, 변화, 공부, 치유, 인간다움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De studio adulti(어른의 공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저는 어른의 공부란, 살아가는 동안 자아와 경험이 굳은살처럼 박여 단단히 고착화된 통념을 깨는 과정이라 말합니다."(223쪽)이다. 공부는 통념을 깨는 과정이므로, 입시와 취업을 마친 후에도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18세기 인권의 발전은 당대 사람들이 남의 글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생각을 통해 그의 기쁨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이를 촉진한 대표적인 문학 장르가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은 독자를 타인과 동일시하게 하고 공감하게 만들어준 훌륭한 매개였습니다. 소설은 인식하지 못하던 계층의 괴로움과 고통을 광범위한 독자들이 공감하게 함으로써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불러왔습니다."(175쪽) 


소설 읽기의 효용에 대해 설명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소설 읽기를 통해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타인의 어려운 환경을 바꿔내고자 하는 개인적 차원의 혁명이 자선이다. 자선이 타인을 돕는 개인적 차원의 혁명이라면, 정치는 타인을 돕는 사회적 차원의 혁명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이해하여 개인적으로는 자선을 실천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치에 더 활발히 참여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은 한 편의 단편 영화 같은 소설이다. 우리네 일상을 다룬 평범한 이야기인데,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여운은 오래간다. 


홀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칠십 대 노인 루이스 워터스의 집에 이웃에 사는 칠십 대 노인 애디 무어가 찾아와서는 대뜸 말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루이스와 애디는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한 지 오래고 혼자 사는 처지다. 그러니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제안이지만, 사십 년 넘게 이웃으로 지낸 두 사람을 그들의 자식들과 다른 이웃들이 어떻게 볼지 불확실하다. 걱정하는 루이스에게 애디가 말한다. 남은 시간이 없다고. 하고 싶은 걸 하자고. 


그날 이후로 루이스는 매일 밤 애디의 집으로 간다. 두 사람은 섹스 없이 그저 곁에 누워서 잠을 잔다. 이보다 더 순수할 수 없는 관계인데, 사람들은 이들을 불순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랫동안 배우자도 연인도 없이 혼자 살다가 마침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내었느냐며 축복하기는커녕, 나이 들어서 뭐 하는 짓이냐며 비난하고 조롱한다(주변 사람들이 너무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옛날 소설인가 했는데 2015년 작이라고 해서 놀랐다). 


루이스의 딸 홀리도 아버지의 새로운 관계에 호의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애디의 아들 진은 거의 빌런급으로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를 반대하고 루이스에게 적대적인 자세를 취한다. 애디와 루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인데, 애디와 루이스의 과거를 알고 나면 이들의 자식으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홀리가 루이스를 원망하는 건 이해해도 진이 애디를 원망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나쁜 건 아버지 아닌가. 


노년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가 떠오르기도 했다.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엄마인 올리브에 대한 아들의 입장을 서술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소설에도 루이스의 딸과 애디의 아들의 입장을 서술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제이미의 미래도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다메 칸타빌레 신장판 12
니노미야 토모코 저자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2년 12월부터 출간된 <노다메 칸타빌레 신장판>의 마지막 두 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신장판 12권은 슈트레제만과의 협연으로 깜짝 데뷔한 노다메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잠적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치아키는 노다메와 연락이 되지 않아 노심초사하는데, 노다메는 점점 더 치아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간다. 결국 노다메와 치아키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파리의 기숙사에서 재회하고, 마침내 노다메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12권 중반 이후부터는 번외편에 해당하는 <앙코르 오페라 편>이 나오는데, 번외편 치고는 분량도 많고 내용도 본편 못지않게 본격적이다. 어느 날 미네는 R☆S 오케스트라에 시민 오페라 연주 의뢰가 들어왔다며 치아키에게 지휘를 부탁한다. 그동안 남몰래 오페라에 대해 공부해온 것들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 치아키는 오랜만에 도쿄로 돌아온다. 하지만 무대에 오를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오디션부터 난항을 겪는데... 


한편 콩세르 바투아르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된 노다메는 금의환향한 자신을 사람들이 얼마나 환영해 줄까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돌아와보니 사람들의 관심은 노다메가 아니라 외국인 여친을 데려온 쿠로키에게 쏠려 실망한다. 설상가상으로 치아키가 지휘를 맡은 오페라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여자 성악가와 '핑크빛 기류'를 보인다고 생각해 절망한다. 여자의 외모가 아닌 실력만 보는 치아키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다메가 웃기면서도 귀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냥 믿어주는 일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프시케의숲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야모토 테루의 산문집 정말 좋다. <생의 실루엣>도 좋아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읽었는데, <그냥 믿어주는 일> 역시 좋은 문장에 밑줄을 계속 긋다가 포기했다(가끔 밑줄을 그어야 의미가 있지, 전부 밑줄을 긋는 건 의미가 없다). 1947년 일본 고베 출신인 미야모토 테루는 1949년 일본 교토 출신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출생연도와 고향이 비슷한데, 가정 환경과 성장 과정이 달라서 그런지 에세이의 내용이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나는 미야모토 테루 쪽이 더 좋다. 


<그냥 믿어주는 일>은 미야모토 테루가 30대 후반이었던 1983년에 발표한 산문집이다. 1977년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환상의 빛>, <금수> 등의 초기작들을 발표하며 문단의 기대주로 주목받던 시절에 낸 책이다. <생의 실루엣>보다 훨씬 전에 쓴 책이지만, 두 책 모두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서 내용은 비슷하다. 야반도주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집안 사정과 부모의 불화, 장래에 대한 불안,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자기 의심의 반복 등. 


물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있다. 저자는 어릴 때 가난해서 책을 읽고 싶어도 실컷 읽을 수 없었다. 딱 한 번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파는 중고책을 여러 권 사준 적이 있는데, 그때 산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글쓰기 훈련을 했다. 열여덟 살 때는 수험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도서관에 드나들며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을 160여 편 넘게 읽었다. 덕분에 입시 준비를 할 때 애를 먹었지만, 훗날 작가가 되는 데 있어 그때 읽은 책들이 자양분이 된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십 대 시절에 지독한 신경 불안 증세를 겪었다. 사람 많은 전철을 타면 증세가 심해져서 출퇴근을 못할 정도였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그때 이미 두 아이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에 매진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만 했더니 거짓말처럼 신경 불안 증세가 사라졌다. 그렇게 완성한 소설로 다자이 오사무 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이듬해 발표한 소설로는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 병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린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금보다 훨씬 젊을 때 쓴 책이라서 그런지, <생의 실루엣>과 달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때 즐거우면 되는 것, 순간적으로 폭소가 터져 나오는 것밖에 추구하지 않게 되어 인간의 영혼과 인생의 거대함을 전하는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53쪽)라고 한탄하는 문장을 읽으며 80년대의 젊은이들도 지금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도파민 중독이었나 생각했다. 


'인간 줏대 제거 계획'이라는 글도 재미있다. "(어른들의) 목적은 하나. 다음 세대를 담당할 아이들을 결코 지적 수준이 높은 어른으로 성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똑똑해지면 곤란하다. 자기네 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먼저 사치와 쾌락을 부여한다. 실로 저급하기 짝이 없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온갖 매체를 이용해 그 안에 푹 잠겨 있게 한다. 학력 편중 사회를 만들고 어릴 때부터 가혹한 수험 공부로 내모는 등등."(101쪽) 상상이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