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된다. 2부는 중국의 외교와 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74년만 해도 지금의 중국은 '중공', 대만은 '국부'라고 불렸다. 저자는 이 '명칭'에 관해 언급하며 중국 외교론, 중국 정치론의 포문을 연다.


옛날 공부자(孔夫子)는 그가 만약 제왕이 되면 맨 처음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대해서 "세상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도록 가르치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중략)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해서 중공문제를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것은 용어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 자주 쓰이게 될 중공(中共)이라는 낱말과 중화(中華)인민공화국이 라는 말은 하나의 존재와 대상을 지칭한다. 그러나 중공이라는 표현과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개념은 아주 다르다. 그 내용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은 개개인의 교육, 의식 수준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51~52쪽) 

70년대 중국(중공) 하면 문화대혁명이 떠오르는데, 대내적으로는 혼란스러웠어도 대외적으로는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고 대체적으로 성공했다. 대표적인 것이 1970년 4월 24일 최초의 인공내성 발사 성공이다. 이로써 중공이 경제, 과학, 군사 및 정치면에서 착실하게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 중공은 유엔에 가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1971년 마침내 유엔에 가입한다. 


중국(중공)의 부상은 대만(국부)에는 위기다. 1971년 중국이 유엔에 가입함과 동시에 대만은 유엔에서 축출되었으며, 많은 나라들이 대만과의 국교를 끊었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지 않고 대만과 국교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2년 8월 노태우 정부 때 중국과 수교를 맺고 대만과 단교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실을 다지며 때를 보는 중국의 외교술은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의 주역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대외원조를 멈추지 않고, 정치적 마찰이 있어도 경제적 관계는 지속하지만 대만과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오늘날과 같다. 


저자는 중국에 대해 "전형적인 수정주의라고 규탄하는 유고슬라비아와도 통상협정을 갱신할 만큼, 중공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일삼지 않는 국가와는 이데올로기와 사회체제의 차에 구애됨이 없이 적극적으로 무역의 확대에 힘쓰는 신축성 있는 자세이다." 라고 평가한다. 저자가 살아계셨다면 현재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를 두고 무역 보복을 하는 것을 두고 어떤 평을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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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이백 여 권의 책을 읽었다. 읽은 책의 목록을 보니 어려운 책, 깊이 사유하며 읽어야 할 책보다는 쉬운 책, 금방 읽을 수 가벼운 책이 대부분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해 목표는 책 '느리게 읽기'로 정했다. 천천히, 깊이 사유하며 읽고 싶은 책을 선별해 일정 분량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따로 서재에 적어두고 코멘트를 달 셈이다.


첫 번째 책으로 리영희 선생의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를 골랐다. 오래 전에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이 책의 초판은 1974년에 나왔다. 책에 실린 글은 대부분 베트남 전쟁 직후, 닉슨 대통령 방중 전후에 쓰였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주는 의미는 크다. 특히 맨 처음에 실린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라는 제목의 글은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리영희 선생이 한참 전에 내다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의적절하다.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그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략) 그 보이지 않는 비단옷이라는 것을 팔러온 형제 상인은 어째서 그토록 맹랑한 술책이 먹혀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임금에게 있지도 않은 옷을 입혀놓고 아름답다고 한 임금 측근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해 있던 것일까. 임금이란 으레 아첨배에 속게 마련인 것일까. 그리고 옷을 걸치지 않고서도 입었다고 우기는 '통치자의 진리와 권위'는 임금의 것인가 측근 아첨배의 것일까. 이와 같은 '허구와 허위'는 통치자들의 속성이어야 하는가. 허위가 진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와 풍토는 어떤 것일까. 그 많은 백성들 가운데 임금의 알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왜 모두들 입을 다물고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또는 못했을까. (13~14쪽)


'옷을 걸치지 않고서도 입었다고 우기는 임금', '보이지 않는 비단옷이라는 것을 팔러온 형제 상인', '임금에게 있지도 않은 옷을 입혀놓고 아름답다고 한 임금 측근자'와 같은 비유를 보고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다. 저자는 이들이 만들어낸 '허구와 허위'를 규탄하는 동시에 그 '허구와 허위'를 보고도 못 본 척한 수많은 백성들의 잘못도 질책한다. 백성들의 눈에 임금님의 알몸이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왜 백성들은 소년이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저자는 알렉시스 토크빌이 남긴 "문제는 법적 구조보다도 정치의 내면정신에 있다"라는 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와같이 위기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의 내면적 자질에 관해서 또끄빌은 "문제는 법적 구조보다도 정치의 내면정신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월남전쟁 비밀문서를 에워싸고 일어난 미국 내의 사태는 법적 구조의 굳건함과 아울러 정치의 내적 정신의 건전함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국가나 국민의 생활원리가 되어주는 일반적 정치의 내적 정신이 건전하지 못할 때 법적 구조의 건전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17쪽)

한 작품의 해피 엔딩은 과정의 줄거리가 가열찰수록 더욱 행복하게 느껴진다. 고뇌와 비참과 과오가 아무리 처절했어도 종말이 행복하면 그 과정은 그것으로 잊혀진다. (중략) 그러나 해피 엔딩으로써 슬펐던 과정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관객의 경우다. 슬픔을 겪은 주인공은 종말의 행복보다도 불행했던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그 차이는 불행을 체험한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위치의 차이이다. (19쪽)


저자는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려면 '관객'의 입장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가장 크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당사자'였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하루에 몇 개씩 알바를 뛰고 치열하게 공부해서 학점을 따는 대학생들이 학교 행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학점 문제를 들춰낸 것이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수감되고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이 이들에게 '해피엔딩'일까. 그야 '새드엔딩'보다는 낫겠지만, 교수에게 속고 학교에 배신당한 상처는 학생들의 마음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태를 바라보는 관객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가 당사자임을 깨달은 것,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밝힌 것 또한 그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억이 하나둘 쌓이고 합해질 때 비로소 정치의 내적 정신이 건전해지고 법적 구조도 굳건해진다.


소위 국가기밀이나 국가이익이라는 것이 민주사회의 국민을 시종일관 기만하는 정부체제와 세력에 의해서 이용될 때 그 집권자와 집권세력의 기만을 폭로하는 것 이상으로 애국적인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지성인의 최고의 덕성은 인식과 실천을 결부시킨다는 것이다. (26쪽)

비난받아야 할 일은 엘즈버그 박사가 허위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극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비난받아야 할 것은 그 장막의 뒤에서 이루어져온 일들, 음모에 관한 모든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치를 살피거나 그에 방조하거나 갈피를 못 잡거나 침묵했을 뿐 그것을 밝혀내려 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이다. 진실로 놀라운 것은 엘즈버그와 같은 고위관료들 속에서 더 많은 엘즈버그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즈 위클리> 7월 18일) (27쪽)


당사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관객에 머무른 죄는 그 주체가 관료, 언론인, 지식인일 때 더욱 무겁다. 저자는 월남정책의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를 시작으로 정책수급과정에서는 핵심적 지위에 올랐다가 기밀문서를 전 세계에 폭로한 다니엘 엘즈버그의 공을 높이 치하한다. 엘즈버그의 행동에 대해 미국 내 우익적 여론과 군부에서는 비난과 인신공격, 중상이 쏟아졌지만, 저자는 그의 폭로가 국가기밀이나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일이었다고 평가한다. 


누가 문제를 폭로하면 폭로한 문제를 보지 않고 폭로 자체의 선정성과 유해성에만 집중한 예는 너무나 많다. 폭로한 자가 관료, 언론인, 지식인일 때는 공무원의 의무, 언론인의 윤리, 지식인의 소명을 들먹이며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개별 사건만 보면 찬성측과 반대측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난제로 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너무나 쉬운 문제다. 이를테면 잘못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잘못을 묻는 행위 자체를 죄로 만드는 사람들. 이런 방식으로 몇십 년에 걸쳐 권력을 농단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한 사람들. 그들의 이름과 민낯을 뻔히 알면서도 입을 닫고 있는 사람들. 


미국의 반지성, 반이성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대의 반공 활동을 한 사람도 안전할 수가 없었다. 1953년 10월 당시의 검찰총장(법무장관)은 전 대통령 트루먼이 소련의 간첩을 은닉했다고 주장, 정식으로 고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로즈벨트, 아이젠하워, 케네디 등에 대해서도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이 나왔고 얼마 전까지도 미국의 지적 풍토 속에서 웬만한 학자, 작가, 교수, 기자들은 추방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어용으로 화했다. 이것이 <뉴욕타임즈>와 같이 훌륭한 언론기관을 가지면서도 미국 내에 진정한 사상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게 됐던 경위의 일부다. 위대한 반공주의자 매카시는 10년 후 미국사회의 분해를 초래한 셈이다. (36쪽)

정부의 독선과 비밀주의는 국민 전반의 성격과 지식을 변칙적일 만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독선과 비밀주의는 본래 사회를 위해서 이용될 수 있을 국민의 정력과 능력의 광범한 해방을 저해한다. 또 모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을 때 당연한 결과로서 다수의 욕구, 견해, 필요, 복지가 버림을 받는다. 이 두가지 결과는 사회의 손실일 수밖에 없다. (46쪽)


'웬만한 학자, 작가, 교수, 기자들은 추방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어용으로 화했다.' 국정 교과서, 문화예술인 블랙 리스트 사건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오르자 관련 지원 사업들을 아예 폐지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생각난다. '모든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을 때 당연한 결과로서 다수의 욕구, 견해, 필요, 복지가 버림을 받는다.' 지난 두 정권 동안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의 생활 수준과 복지 혜택은 얼마나 저하되었던가. 그것은 과연 우리의 '노오력'이 부족해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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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장에 있는 창비 책들을 모아봤습니다. 읽은 책은 더 많은데 현재 가지고 있는 책은 이것뿐이네요. 

이중에서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전권은 제 책장에 있는 책들 중 가장 아낍니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본 여행할 때도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줬습니다. 유홍준 선생님 팬으로서 일본의 다른 지역이나 일본 아닌 중국 등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에 관해 알려주시는 책도 써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공부의 시대> 시리즈 전권은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에 유시민 작가님 나오셨을 때 듣고 구입했습니다. 한권도 빠짐없이 내용이 알차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리즈 많이많이 만들어주세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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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신간 도서 『수면 혁명』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왜 잘 자는 사람이 성공하는가?


시도 때도 없이 잠을 깨우는 과로 사회에서 
최상의 컨디션과 집중력을 유지하고
내면의 힘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 숙면!


2007년 4월 6일, 아라아나 허핑턴은 갑자기 사무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사고의 원인은 수면 부족과 피로로 인한 탈진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병원을 다니며 수면 부족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정밀검사를 받아보았지만 별 다른 원인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 많은 의문을 품고 본인의 생활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수면 전도사’입니다. “숙면이 행복과 성공의 필수 요건”이라는 게 그의 한결같은 주장이지요. 
 
이 책에서 그녀는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수면 부족이 개인의 삶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 정치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꼼꼼히 따져봅니다. 






• “살면서 내가 저지른 모든 중대한 실수는 피곤으로 인한 것이었다.” ―빌 클린턴
• “나는 단 하룻밤의 잠도 추가 이익을 올릴 기회와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워런 버핏
• “하루 8시간을 나고 자면 머리 회전이 빨라지고 생각이 명료해진다. 하루 종일 기분이 훨씬 좋다.” ―제프 베저스
• “수면과 휴식, 행복, 그리고 건강한 생활이 당신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 ―바비 브라운
• “아름다움이란 평화와 행복, 건강을 누리는 것이다. 잠 없이는 그중 어느 것도 가질 수 없다.” ―비욘세
• “내게는 잠이 매우 중요하다. 훈련을 몸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 ―우사인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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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9월 12일 (월) ~ 9월 19일 (월)

   당첨자 발표  :  9월 20일(화)

   발송  :  9월 23일(금) (예정)

 

2. 모집인원  :  5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 (필수)

- 스크랩한 이벤트 페이지를 홍보해주세요. (SNS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개인블로그'와 '알라딘' 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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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인생은 짧다. 그러나 '시'라는 형식을 빌리면 21세기의 일본 사회를 살고 있는 나라는 인간이 80년 전의 루쉰, 60년 전의 나카노 시게하루, 그리고 조국의 과거 시인들과 교감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50년 전에 쓴 시(비슷한 것)까지 되살아나 나를 채찍질한다. 이러한 정신적 영위는 모든 것을 천박하게 만들고 파편화하여 흘려버리려 드는 물길에 대항하여,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이다. '저항'은 자주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패배로 끝난 저항이 시가 되었을 때, 그것은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장소의 '저항'을 격려한다.


p.55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일본과는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답답한 벽을 느끼는 일이 간혹 있다. 나는 그것을 일단, 한국과 일본의 메이저리티(majority)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국민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국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면서 자신이 '국민'으로서 국가의 비호 - 그것은 동시에 구속이기도 하다 - 를 받는 것을 당연시하며 의심치 않는 심성을 가리킨다. 이런 심성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국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p.209 <증언불가능성>

(프리모 레비 저)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수용소에서 밤마다 꾸었던 악몽에 관한 글이 나온다. 석방되어 돌아온 후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니 가족들조차 무관심하고 누이동생은 슬쩍 일어나 옆방으로 가버린다는 악몽이었다. 한 40년 후, 죽기 바로 전해에 출간한 에세이집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는, 아무리 증언해봤자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데 대한 허탈감이 배어 있다.


p.216

요컨대 '홀로코스트' (책에선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말함) 경험을 '유대인의 경험'으로서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 등의 '다른 고난'과 연결하여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자신의 고난'을 철저하게 응시하는 것이 '타자의 고난'을 향한 상상으로 열릴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 작품이 '세계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을 지니는지 판단하는 분기점이리라.


p. 253

'I was born'이라 말하듯, 태어난 아이는 절대적 무방비 상태라 부모나 가족(넓게 말해 어른)의 보호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아이를 만든다는 행위에는 (굳이 그의 직접적 부모라는 의미에 한정하지 않고) 아이를 보호할 어른들의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낱말로 표상되지만, 실은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를 구성하는 존재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 하지만 아이는 무방비하기 때문에, 성장할 때까지는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 여기서 권력관계가 생긴다. 원래는 사회적 단위의 구성원 전원에게 필요해서 생겼을 가족적 유대가 권력관계라는 형태를 띠는 것이다. 아이, 노인, 여성 등 가족 안의 약자에게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탈하기가 극히 어려운 구속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일가의 '가장'에게 가족이란 자신이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는 집단인 것이다. 가정 내 폭력이나 아동학대 사례는 이런 면의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국민은 하나의 가족'이라거나 '피를 나눈 우리'와 같은 식으로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족관계나 혈연관계에 비유하는 것은, 구성원 각자의 자발적인 참가를 전제로 해야 할 사회조직을 마치 '운명 공동체'인 양 묘사하여 구성원들을 권력관계로 묶어둘 위험을 내포한다.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것이 각 개인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적 단위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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