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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다. 이렇게 푹 빠질 줄 모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서 순서가 뒤죽박죽인 점이 아쉽다(<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올리브 키터리지>, <무엇이든 가능하다> 순으로 읽었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이다. 배경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 늘 그렇듯이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모녀 사이다. 14년 전, 이저벨은 에이미와 단둘이 연고가 없는 셜리폴스로 왔다. 얼마 안 있어 남편감으로 적당한 남자가 나타날 거라고 믿었기에, 이저벨은 '임시 거처'로 적당한 집을 구했고 아무런 흥미 없는 구두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 한 번 사귀지 못한 채 14년이 흘렀고, 그동안 에이미는 열여섯 살이 되고 이저벨은 구두공장의 사장 비서로 승진했다. 이저벨은 남몰래 사장인 에이버리를 짝사랑하고 있지만, 아내도 있고 장성한 아들들도 있는 에이버리는 이저벨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저벨은 에이미를 순진하게만 보지만, 사실 에이미는 엄마한테 숨기는 것이 아주 많다. 엄마는 에이미가 교사가 되길 바라지만, 에이미는 시 쓰기에 관심이 있다. 엄마는 에이미가 남자를 전혀 모르는 줄 알지만, 에이미는 남몰래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에이미는 가족이라고는 하나뿐인 엄마를 무척 아끼지만, 때로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엄마 말고 다른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떨어지면 엄마가 보고 싶고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막상 집에 가서 엄마를 보면 짜증이 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저벨보다는 에이미의 감정에 더 이입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저벨의 나이가 겨우 서른넷. 나보다도 젊다. 사실은 가족도 있고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도 다녔던 이저벨이 고향을 떠나 혼자서 아이를 키운 건, 사랑해선 안 될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인데, 그 남자는 아이의 존재도 모르는데 이저벨 홀로 그 모든 고통과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지고 화가 난다. 자신의 과거를 딸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저벨이, 그동안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나한테 친구가 별로 없는 건 비밀을 잘 털어놓지 않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숨기는 것도 없지만...).
에이미의 경우, 에이미의 머릿속을 휘젓는 남자들보다도 절친인 스테이시와의 관계가 더 흥미로웠다. 에이미와 스테이시는 소위 말하는 '노는 물'은 다르지만, 점심시간마다 남들 눈을 피해 숲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떠는 사이다. 에이미도 스테이시도 가족이나 연인에게서는 얻지 못하는 공감이나 안정을 서로에게서 얻는데, 이런 관계가 참 귀하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