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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토라 :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
W. 데이비드 막스 지음, 박세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0년 12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건 <미스테리아> 35권 덕분이다. 편집자 서문(editor's letter)에 이 책과 함께 이 책에 나오는 '미유키족'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데, 오랫동안 일본 문화를 공부하고 연구해 왔지만 '미유키족'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건 처음이라 정확히 무슨 뜻이고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말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서둘러 이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가슴이 뛰었다. 놓쳤으면 땅을 치며 후회했을 뻔!!!
이 책을 쓴 W. 데이비드 막스는 일본 패션, 음악, 문화 연구자다. 저자는 우연히 최근 글로벌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본 디자이너들이나 유니클로의 성공이 60년대를 풍미한 아이비 패션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패전 직후 일본에선 승전국인 미국의 제도, 사상, 문물 등을 전폭적으로 도입했고 이는 패션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복에 비해 남성복은 미국화가 더디게 진행되었는데, 이 속도를 크게 앞당긴 인물이 VAN의 창업자 이시즈 겐스케다. (이 시절 VAN 재킷을 입고 긴자 미유키 거리에 모였던 젊은이들을 '미유키족'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유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성세대와 충돌하기도 하고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미국식 스타일은 결국 일본의 주류 패션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다양한 스타일이 도입되었다. 90년대에는 우라 하라주쿠에서 출발한 일본 스트리트 패션이 'A Bathing Ape' 같은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꼼데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등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자리 잡으며 미국 패션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일본 패션이 미국을 넘어 세계 패션의 중심에 섰음을 보여줬다.
일본의 패션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출판, 영화, 광고 산업이 함께 성장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패션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옷 잘 입는 사람들을 촬영해 잡지에 게재한 것이 오늘날의 스트리트 패션모델, 독자 모델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60년대만 해도 미국 사진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일러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탄생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 일본 잡지 POPEYE의 역사도 알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