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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세계 - 청소년 성장 만화 단편선 창비만화도서관 4
라일라 외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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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이동은+정이용, 글피, 김소희 작가가 참여한 청소년 성장 만화 앤솔로지북이다. 청소년 성장 만화라는 주제는 동일하지만 작가마다 선택한 주제나 표현하는 방식이 저마다 달라서 흥미롭고 유익했다. 


라일라 작가는 청각장애인으로서 지나온 청소년 시절을 소개한다. 청각장애인의 세계에도 비장애인의 세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해서 고민하던 때,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큰 감명과 위안을 받았던 이야기는 나에게도 큰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 


지난여름에 읽은 창비 만화책 <진, 진>의 작가이기도 한 이동은, 정이용 작가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혈육에게조차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해받지 못하고 교회 캠프를 통해 '교정' 받기를 강요당하는 남성 청소년은 바로 그 캠프에서 한여름의 사랑을 한다. 최근에 본 사랑 이야기 중에 가장 가슴 설레고 아름다웠던 이야기. 


글피 작가는 중, 고등학교 합쳐서 전교생이 세 명뿐인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도시 아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4컷 만화 형식인 점이 신선했고, 시골 학교의 일상과 장단점을 발랄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로 잘 표현했다. 


김소희 작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면서 자란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분노와 우울을 배출할 통로를 찾고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만화 중에서 분위기는 가장 어둡고 묵직하지만 그만큼 감동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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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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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의 에세이 3부작 중 마지막 책이다. 앞서 나온 두 권의 책 중에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읽었고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는 다 읽기도 전에 이 책이 나왔다. 어슐러 르 귄의 책은 소설도 그렇고 에세이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지적, 정신적 성찰이 많이 담겨 있는 높은 함량의 책이 대부분이라서 한 호흡에 후루룩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직 다 읽지 않은 책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읽은 건, 그만큼 배울 점이 많고 돌이켜 생각해 볼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 책은 저자가 1976년부터 1988년까지 집필한 강연록, 에세이, 가끔 쓴 조각글,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각각의 글은 주된 성격이나 집필 목적에 따라 여성(페미니즘), 세계(사회적 책임), 책(문학, 글쓰기), 방향(여행) 등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분류표가 이 책 맨 앞에 실려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특정 경향에 동조하지 않는 독자들이 피해 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목적으로 실었다는데, 나는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으려는 독자"에 가깝기 때문에 분류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저자가 1988년에 쓴 '여자 어부의 딸'이다. 오랫동안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와 가사 외의 일을 허락받지 못했다. 심지어 여성이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서 가정을 부양하는 경우에도 가욋일을 한다는 시선을 받았고 이는 이름난 여성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예가 루이자 메이 올콧,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등이다. 루이자 올콧은 대표작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 조와 마찬가지로 작가로 대성해 가족들을 부양했지만, 조처럼 결혼해 아이를 낳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산 합병증으로 죽은 동생을 대신해 조카를 키웠고, 그동안 작가로서의 이력을 멈춰야 했다. <작은 아씨들>의 후속편 <조의 아이들>에서 조가 아이들을 다 키운 후 다시 작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하는 모습은 올콧 자신의 소망 혹은 현실이 반영된 장면일지 모른다. 


여성 작가들이 마주해야 했던 차별과 편견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가 있든 없든 자유롭게 활동했던 남성 작가들의 경우와 대비할 때 더욱 분명하다. 심지어 어떤 남성 작가들은 창작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여성 작가들을 앞서서 공격하거나 조롱하기까지 했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황폐한 집>이라는 작품에서 글 쓰는 아내이자 엄마인 젤리비 부인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책상 앞에 앉아서 펜끝의 깃털을 깨물면서 우리를 노려보는,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하면서도 지치고 병약해 보이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385-386쪽) 참고로 젤리비 부인은 마흔에서 쉰 사이의 나이로, 결코 '소녀'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남자 일'과 '여자 일'을 구분하고 '남자 일'을 하는 여자를 정상적으로 보지 않는 남자를 과연 '대문호'로 우러러볼 까닭이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작가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한 가지는 배짱이나 불알이 아니야. 아이가 없는 공간도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자기만의 방조차 아니지. (중략) 작가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한 가지는 연필과 종이야. 그거면 충분해. 그 연필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작가 본인에게만 있고, 그 종이에 쓰는 내용도 오직 작가 본인 책임이라는 점만 알면 돼. 다시 말해서,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만 알면 돼." (420쪽) 나는 자유로운가. 자유롭게 살고 자유롭게 쓰고 있는가.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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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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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별이 얼마나 떨어져 있든 도착할 빛은 결국 도착하듯이, 사람과 사람도 얼마나 떨어져 있든 전해져야 할 사랑은 결국 전해지기 마련이다. 최은영의 소설 <밝은 밤>은 증조할머니에게서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사랑의 내력을 전한다. 


삼십 대 여성 지연은 이혼 후 할머니가 살고 있는 희령으로 직장을 옮긴다. 어릴 때 잠시 할머니 댁에 묵었던 기억을 좋게 간직하고 있는 지연은, 이후 할머니와 어머니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할머니와 소원하게 지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우연히 할머니와 마주친 지연은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겸 할머니와 종종 만난다. 그러다 할머니를 통해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연은 할머니와 어머니,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깊은 골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백정의 딸이었던 증조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양민 남자와 개성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대구로 갔다가 희령에 정착해 그곳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소개해 준 남자와 결혼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이미 아내와 아들이 있는 상태였고, 졸지에 두 번째 부인이 된 할머니는 딸을 남자의 호적에 올려주는 조건으로 양육비 한 푼 못 받고 혼자서 딸을 키우게 된다. 그렇게 평생 아버지가 있어도 없는 상태로 살아야 했던 어머니는 여자에게 반드시 남편과 자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런 어머니의 눈에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이혼하고 자식도 없는 지연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그렇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서, 지연은 엄마와 화해하고 싶지만 화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희령에서의 한 시절을 보낸다. 


엄마와 딸 사이는 왜 이럴까. 개인의 성격이나 상황 또는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 엄마와 딸 사이가 번번이 잘 풀리지 않은 데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 내지는 제도적 차별 문제가 분명히 있다. 소설 속 엄마들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남편일지라도 이들이 꼭 필요했다. 이때만 해도 호주제가 존재했기 때문에 여성은 호주가 될 수 없었고, 남편이 없으면 자기 자식이 '아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 없이는 온전히 제 자식을 품을 수 없었던 엄마는,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차별받고 무시당한 딸을 더욱 강하고 모진 사람으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처받기보다 상처 주는 사람이 되길 기대받으며 성장한 딸들이 제 엄마와도 충돌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문제는 그렇게 강하고 모진 태도가 딸 자신에게 상처를 줄 때조차 엄마에게 기대거나 위로받길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엄마와 딸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환상처럼 느껴지는 내게는 <밝은 밤> 속 모녀들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소설에는 새비, 희자, 명숙처럼 혈연은 아니지만 피보다 진한 우애를 나눈 여자들도 등장한다. 전쟁 때문에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고 가난 때문에 제 식구 먹고 살 것도 없던 시기에,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잠자리를 기꺼이 내주고 먹을거리도 나눴다. 아버지가 외면하고 남편이 무시해도 함께 손잡고 어깨를 두드리며 힘든 세월을 버텼다. 친할머니, 친엄마, 친딸, 친손녀가 아니어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으면 기뻐하고, 이를 우연이 아니라 천운처럼 느끼고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스스로 별이 되어 주위를 밝혔다. 별처럼 빛난 여자들이 있어서 내가 있고 오늘이 있다. 마침내 도착한 이 사랑 이야기가 오늘의 여자들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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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클래식 이야기
손열음 (Yeoleum Son)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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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유튜브다. 물론 그전에도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존재를 알았지만 클래식에 큰 관심이 없어서 일부러 연주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손열음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는데, 연주하는 모습도 좋았지만 자신의 소지품이나 평소에 일하는 모습, 악보를 보관하는 책장 등을 소탈하고 친근한 태도로 소개해 주는 모습이 좋았다. 그 후로 손열음의 연주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이제는 일할 때 주로 손열음의 앨범을 듣는다. 


<하노버에서 온 편지>는 2015년에 출간된 손열음의 책이다. 5년 동안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것인데, 내용도 좋고 문장도 훌륭하다. 책에는 손열음이 사랑하는 피아노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손열음이 애정하는 클래식 작곡가와 연주자 이야기, 손열음이 세계 정상급 연주자가 되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옥수수 먹고 썰매 타는 게 낙이었던 강원도 소녀가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 눈물겨운 노력을 한 이야기, 유학 경험 없이 국내에서만 교습을 받은 '순 국산'으로는 최초로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저자가 들려주는 클래식과 음악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음악 애호가가 쓴 음악 이야기도 좋지만, 음악을 업으로 삼은 사람,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 쓴 음악 이야기는 역시 다르다. (리스너에 불과한)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주로 선율에 집중하는데, 프로 연주자인 저자는 선율 외에도 리듬, 화성, 음정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늘 같은 음인 줄 알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조율에 따라 '가온 도'가 A 440Hz일 때도 있고 442Hz나 444Hz 등으로 달라질 때도 있다고. 고도의 예술성을 지닌 만큼 아무나 쉽게 범접할 수 없도록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을 줄 알았던 베토벤의 악보가 실은 '하논'을 연상케 할 만큼 단순하고 합리적이라는 것도 저자 덕분에 처음 알았다.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브람스, 리스트 등 위대한 작곡가들은 모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는 것도 이 책에서 배웠다. 예외적으로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비롯한 어떤 악기에도 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기발하고 신선하지만 연주자들이 연주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많다고. "마음에 드는 피아노를 만나는 것이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도 훨씬 희박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문장도 마음에 남는다. 숙련된 연주자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피아노를 만날 경우를 대비해 열심히 연습한다면, '비숙련 인간'인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날 경우를 대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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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랑 (리커버)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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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슬아가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만난 아이들, 청소년들, 어른들에 관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글쓰기 교사 일을 시작한 해에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셋. 글쓰기 교사로서의 능력을 증명할 '스펙'이라고는 신문방송학 전공, 잡지사 근무, 작은 문학 공모에서의 수상 이력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글을 써왔고 진지하게 글쓰기에 임해 왔다. 그는 그에게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에게 바로 그 태도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글쓰기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를 바꿀 수는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책에는 저자가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경험한 것, 생각한 것, 느낀 것 외에 저자가 만난 학생들의 면면과 변화가 담겨 있다. 심지어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의 일부와 육필 원고까지 실려 있어 이들의 글쓰기 수업 현장을 엿본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저자에게 글감을 받은 후 눈앞의 백지를 채우기 위해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며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씨는 삐뚤빼뚤하고 맞춤법 틀린 곳이 눈에 띄지만, 중요한 건 글의 완성도가 아니라 이들이 잠깐이라도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열심히 썼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아는 저자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그들의 글을 읽고 첨삭해 준다. 지금의 저자처럼, 초등학생 시절 저자가 쓴 일기를 읽고 길게 코멘트를 써주고 때로는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던 선생님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저자는 그 시절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웠고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종이와 연필만으로 남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일. 재능이 없어도 꾸준히 쓰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아지는 일. 글쓰기는 바로 그런 일이다. 한동안 읽고 쓰는 일이 지겨웠는데 이 책을 읽으니 다시 읽고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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