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평점 :
'희망을 가져도 시원찮을 판에 희망을 버리라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의 신간 제목이 <희망 버리기 기술>임을 안 순간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다. 저자는 대체 무슨 이유로 희망을 가져도 잘 될까 말까 한 판국에 희망을 버리라고 하는 걸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자는 의문을 품었다.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전 세계가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은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데,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불안하다. 이는 저자의 어림짐작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대체 왜 그럴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역사, 과학, 철학, 종교 등 여러 방면을 살펴보았다.
희망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희망 그 자체는 좋지만도 않고 나쁘지만도 않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학살을 견디고 살아남게 만든 힘은 희망이지만, 애초에 나치가 유대인을 멸종시키고 전 유럽을 지배하는 꿈을 꾸게 만든 것 역시 희망이다. 희망은 사실 '파괴적'이다. 희망의 속성은 '현재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힘도 희망이지만, 평화를 깨고 전쟁을 일으키고 갈등상태로 돌입하는 힘 역시 희망이다. 결국 중요한 건 희망 그 자체가 아니라 희망의 근본 동력이 되는 가치관이다.
그렇다면 희망 대신 마음의 지표로 삼을 만한 가치관은 무엇이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칸트의 사상을 제시한다. 칸트는 인간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의미는 '의미를 형성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인식하는 일들의 의미를 선택하고. 목적을 만들고, 중요성을 결정하는 것이 인간의 유일한 존재 의의이자 가치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내가 체중을 감량해서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한다면 체중을 감량하는 것은 수단이 되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은 목적이 된다. 그런데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은 나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수단이 되고, 내가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 역시 수단으로 전락한다.
칸트는 이렇게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목적은 바람직하지 않은 목적, 추구해선 안 되는 가치관이라고 보았다.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목적은 엄청난 절제를 요구한다. 나의 자유가 최대치인 상태에서는 타인의 자유가 성립하지 못하고, 타인의 자유가 최대치인 상태에서는 나의 자유가 성립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결국 인간은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이 누릴 자유의 한계를 정하고 그러한 상태에 만족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데, 어디까지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계인지 알 수 있는 인간은 드물고, 딱 그만큼만 욕망하고 그 상태에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은 더욱 드물다.
"더 나은 것을 희망하지 마라. 그냥 더 나아져라." 결국 인간은 욕망하는 대로 살면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 욕망을 채울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실패라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진리를 부정하고 희망을 주입하는 그 어떤 역사, 과학, 철학, 종교도 거부하고, 부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결론은 저자의 전작인 <신경 끄기의 기술>과 비슷하지만, 그 근거는 훨씬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다. 이런저런 불안과 걱정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엉덩이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