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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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지긋지긋한 소설이 드디어 끝났다. 마지막 권쯤 되면 덜 재미있어도 되는데 재미 없어질 때 되면 상상도 하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두 주인공 레누와 릴라의 중년기와 노년기를 그린다. 피에트로와 결혼해 두 딸을 낳은 레누는 남편 몰래 니노를 만나다가 이제는 대놓고 니노와 데이트를 즐긴다. 한때 니노와 사귀었지만 이제는 컴퓨터 회사를 운영하며 아들 젠나로를 키우는 릴라는 그런 레누를 비난하며 얼른 니노와 헤어지라고 경고한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레누에게 릴라의 경고가 들릴 리 없다. 


결국 피에트로와 이혼한 레누는 두 딸을 데리고 니노가 살고 있는 나폴리로 돌아온다. 대학 진학을 계기로 나폴리를 떠나, 나폴리가 아닌 곳에서 화려하게 성공하기를 꿈꿨던 레누로서는 탐탁지 않은 귀향이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가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쓴다는 구상이 당시 출판계의 방향과 맞아떨어져서 레누는 뜻밖의 성공을 하게 되고 작가로서 점차 자리를 잡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릴라와도 사이가 다시 좋아져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게 된다. 


레누는 위층, 릴라는 아래층에 살면서 레누가 일하면 릴라가 아이들을 돌보고, 릴라가 일하면 레누가 아이들을 돌보는 환상적인 나날도 잠시. 어느 날 갑자기 릴라에게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레누와 릴라 사이에는 다시 메울 수 없는 깊은 골이 생긴다. 레누는 릴라가 자신에게 냉랭하게 구는 까닭이 언제나처럼 사소한 오해와 애증, 질투심과 열등감 때문이라고 짐작하지만, 릴라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등돌린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중년이 되고 노년을 맞는다. 


이렇게 지독한 인연이 또 있을까. 동네에선 여왕처럼 지냈지만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릴라보다도, 평생 릴라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릴라를 뛰어넘는 것이 소원이었던 레누가 참 안타깝다. 릴라보다 더 똑똑해지고, 더 유명한 사람이 되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했던 레누가, 막상 그 소원을 이룰 때마다 곁에 릴라가 없어서 허전해하던 장면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레누와 릴라, 두 여자의 애증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 당대의 이탈리아 사회상을 녹여낸 작가의 필력도 대단하다. 살해와 폭력, 마약과 뇌물수수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당시 나폴리 사회상은 물론, 학생 운동 세력의 몰락과 출판계에 만연해 있던 권력 남용, 가부장제의 모순과 페미니즘 운동, 동성애 문제까지 폭넓게 다뤘다. 이토록 재미있는 소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엘레나 페란테의 다른 작품이 국내에서 출간되고 신작 또한 어서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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