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기쁨 - 로이스 로리 『더 기버 : 기억 전달자』

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뭘 입을지 고민할 때마다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것처럼 회사원도 유니폼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작 학창 시절에는 멋도 없고 개성도 없는 교복을 누구보다 싫어했으면서 말이다. 

로이스 로리의 소설 <더 기버 : 기억 전달자>를 읽고 교복에 대한 양가감정과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소설의 배경은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특성이나 개성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미래사회의 어느 커뮤니티이다. 이곳에는 성이나 인종, 민족, 장애 등에 의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따른 격차 또한 없다. 모든 사람이 똑같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얼핏 보기에 이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는 없다. 

조너스도 그런 줄 알았다. 보육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법무부에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열두 살 소년 조너스는, 얼마 전 기억 보유자라는 직위를 부여받고 커뮤니티에서 단 한 사람뿐인 선임 기억 보유자에게 과거의 기억을 전달받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조너스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완벽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이 희생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를테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의 즐거움,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갈 때의 스릴, 사랑에 빠질 때의 기쁨과 흥분... 

기억을 전달받은 조너스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가족,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만, 조너스의 가족과 친구들은 조너스를 이상한 아이로 취급할 뿐이다. 급기야 커뮤니티의 관리자들이 조너스의 달라진 행동거지를 수상하게 여기고 조너스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가족과 친구들은 조너스에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통해 몰랐던 감정을 알게 된 조너스는 이제 다시 예전처럼 살 수가 없다. 

조너스는 자신이 전달받은 기억을 모든 인류에게 전달하는 편을 택한다. 조너스의 시도는 결국 성공하지만, 그것이 마냥 해피 엔딩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전쟁, 가난, 질병, 차별 같은 고통을 알지도 못한 채 살다가 한순간에 이 모든 고통을 알게 된 인류가 그런 상황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커뮤니티가 학교, 직업, 가족 등을 모두 정해주는 시스템 속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선택의 자유를 가지게 되었을 때 과연 그것을 '자유'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전쟁, 가난, 질병, 차별 같은 고통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러한 고통을 막기 위해 인간성을 말살하는 소설 속 세상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처럼 고통과 인간성이 같이 증가하고 같이 감소하는 정(+)의 관계라면 최적의 상태는 어디쯤일까. 인간들 중에 누가 고통을 받고 누가 인간성을 누릴지는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어제 입은 옷과 별로 다르지 않은, 유니폼이나 다름없는 사복을 입고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