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에 선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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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과연 계속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1960년대에 집필된 소설임을 감안하면 소재가 참신하고 전개가 기발하지만, 어차피 이후 나타난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각색되었다면 차라리 각색된 작품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제3권 <발코니에 선 남자>와 제4권 <웃는 경관>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구입할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생전에 열렬한 추리 소설 애독자였던 故 물만두 님이 <웃는 경관>을 강력 추천했다는 글만 읽지 않았어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물만두 님을 믿고 구입하길 잘 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계속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은퇴한 노인이 개를 산책시키러 나왔다가 강도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돈을 도둑맞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사건을 수사하던 마르틴 베크는 얼마 후 스톡홀름 공원에서 여자아이가 성폭행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떠맡게 된다. 잇달아 벌어진 범죄 사건으로 인해 스톡홀름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더욱 빨리 범인을 찾으라는 압박을 받는다. 밀려드는 제보 전화 속에서 사건을 해결할 단서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범인이 다음 피해자를 노리는 낌새는 점점 강해진다. 


줄거리 자체는 평이하다. 범죄의 내용도 익숙하고, 범인이 사용한 트릭 자체도 대단치 않다. 이 작품의 재미는 범인이 아니라 범인을 추적하는 살인 수사국 소속 형사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 있다. 마르틴 베크는 물론이고 그의 동료인 군발드 라르손, 콜베리, 뢴, 멜란데르 등의 캐릭터가 저마다 특색 있고 강렬하다. 마르틴 베크는 말수는 적지만 생각이 많고, 라르손은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마르틴 베크와 가장 친한 동료인 콜베리는 합리적이고 계획적이다. 뢴은 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오히려 그 평범함 때문에 경찰 업무에 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들은 같은 형사인데도 사건에 임하는 자세가 전혀 다르다. 마르틴 베크는 곰곰이 생각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타입이고, 라르손은 일단 몸으로 부딪치는 타입이다. 콜베리는 운으로 범인을 잡아선 안 된다고 믿고, 뢴은 남들이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움직인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수사한들 이들의 뜻대로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마르틴 베크는 시리즈의 주인공이고 소설의 중심인물인데도 수사를 주도하거나 강력한 단서를 찾는 등의 활약을 보이지 않는다(그에 반해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해리 홀레 원맨쇼나 마찬가지다). 


소설의 결말은 이제까지 읽은 범죄 소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페이지가 하도 빨리 넘어가서 일부러 숨을 고르면서 읽었을 정도다. 결말이 독자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배신하는 점도 이 시리즈가 괜히 명작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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