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콥 자매 시리즈
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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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읽은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 남녀 통틀어 가장 멋있는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 <밀레니엄> 시리즈의 주인공 리스벳 살란데르인데,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의 주인공 콘스턴스 콥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멋있다.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아버지와 오빠에게 의존해 살지 않으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총을 겨누는 여성이라니. 게다가 실존 인물이 모델이라는 점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 모자라 쥐고 흔든다.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총 8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콥 자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1914년 7월 헨리 코프먼의 자동차가 콘스턴스, 노마, 플러렛 콥 자매가 탄 마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한다. 콥 자매의 막내 플러렛이 큰 부상을 입은 걸 안 장녀 콘스턴스는 사고를 일으킨 헨리 코프먼에게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지만, 헨리 코프먼은 콥 자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기는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자리를 빠져나간다. 


이튿날 동생들이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콘스턴스는 헨리 코프먼의 사무실에 찾아가 보상을 요구한다. 헨리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동생들은 안 데리고 왔나? 막내 이름이 뭐더라? 플러렛?", "좀 알려주지 그래, 어느 창문으로 들어가야 미스 플러렛의 침실이 나올까?" 같은 막말을 시전하며 콘스턴스의 속을 뒤집는다. 물론 잠자코 듣고 있을 콘스턴스가 아니다. 곧바로 코프먼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고, 급기야 피를 보고 만다(참고로 콘스턴스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80킬로그램이 넘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다). 


친구들 앞에서 여자한테 들어올려져 피 흘리는 꼴을 보이다니. 화가 난 코프먼은 그날부터 부하들과 함께 콥 자매의 집을 향해 벽돌과 술병을 던지거나, 콥 자매의 집 주변을 돌면서 콥 자매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내용의 고성을 지르거나, 콥 자매의 집을 불태워 없애려고 하는 등 각종 위협 행위를 한다. 콘스턴스는 보안관을 찾아가 코프먼을 쫓아내달라고 부탁하지만, 보안관은 신고를 하려면 여자 혼자 오지 말고 아버지나 오빠, 남편을 데려오라는 황당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참다못한 콘스턴스는 악당으로부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총을 드는 편을 택한다. 


콘스턴스 콥은 1878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미혼인 채로 스무 살만 넘어도 노처녀 소리를 듣던 시대에 콘스턴스 콥은 서른다섯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았고, 아버지와 오빠에게 기대지 않고 자매들을 부양하며 독립적으로 살았다. 소설에 나오는 교통사고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콘스턴스 콥에게 총을 주는 히스 보안관도 실존 인물이다. 콘스턴스 콥이 헨리 코프먼의 악행을 사회에 고발하고 재판에서 승소한 것을 높이 사 미국 뉴저지의 여성 보안관보 1호가 된 것도 사실(史實)이다. 


날 위협하는 것으로 모자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건드릴 때 가만있지 못하고 어떻게든 되갚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여성이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주저앉아 울거나 남자에게 의존하는 모습만 그린다. 나라도 누가 내 여동생을 위협하면 멱살이 뭐냐, 평생 목을 못 가누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소설(뿐 아니라 콘텐츠 전반)은 자매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며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서사를 강화할까. 여자는 여자의 적이 아니라 여자의 친구이고 동지인데. 


이 소설엔 스포일러가 될까 봐 말할 수 없는 반전이 있다. 반전을 알면 콥 자매의 관계가 더욱 애틋하고 각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조만간 시리즈 2부가 출간된다던데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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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9-2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베트 살란데르만큼 멋지다구요? 저도 읽겠습니다^^

키치 2017-09-27 21:56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치를 너무 높인 게 아닌가 급 걱정이 됩니다 ㄷㄷㄷ 살란데르 언니가 최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