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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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는 다른 작가들의 글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유의 느낌이 있다. 땡볕에 있다가 쾌적한 실내에 막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랄까. 고급 호텔 객실 안의 매끈하게 잘 펴진 침대 시트를 볼 때의 느낌이랄까. 단정하게 차려진 일식 정식(定食)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이미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고 치밀하게 조립되어 있어서, 뭔가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거나 감상을 늘어놓는 게 작품에 해가 되는 일 같다. 쓸데없는 짓 같다. 


그래도 작품을 읽었으니 뭐라도 감상을 남겨야겠지.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소설이다. 삼십 대 중반의 '나'는 아내에게서 돌연 "이혼하자"라는 통보를 받고 집을 나온다. 차를 타고 하염없이 운전해 일본 동북부 지방을 지나 홋카이도까지 갔다가 다시 도쿄로 돌아온 '나'는 대학 친구 아마다로부터 아버지가 살던 아틀리에가 비었으니 그곳에서 지내도 좋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아마다의 아버지가 살던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 것이 예사롭지 않은 징조임을 직감한다. 그도 그럴 게 아마다의 아버지는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 미대를 졸업하자마자 초상 화가가 되어 유력 정치가나 기업인의 집무실 또는 응접실에 걸릴 법한 고가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해온 '나'는 최근 초상화 그리는 일에 슬슬 질리고 있던 참이었다. 


돈은 되지만 화가로서의 만족감은 덜한 초상화 말고, 돈은 되지 않아도 화가로서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순수미술을 해보고 싶었던 '나'에게 어쩌면 지금은 인생에 둘도 없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는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천장 위에 올라갔다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발견한다. 이게 정말 다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필연'일까? '운명'일까? 


소설 초반은 '나'가 산속 아틀리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나'는 처음에 낯선 도시, 그것도 외따로 떨어진 산속에서 살게 되어 당황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점차 새 집 살림에도 익숙해지고 성생활도 완벽하게 해내며 잘 지낸다. 남는 시간은 문화센터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거나, 아틀리에의 원래 주인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생애를 조사를 하면서 보낸다. 


문제는 딱 하나, 그림이 전처럼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인데, 그것도 '멘시키'라는 이웃 남자가 등장하면서 순조롭게 해결된다.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것은 물론, 그림 잘 그리라고 거액의 돈까지 쥐여주니 붓질이 멈출 리가(돈은 예술가도 춤추게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멘시키라는 남자한테는 남들한테 쉽게 밝힐 수 없는 '꿍꿍이'가 있고, 이미 제법 친해진 데다가 거액의 돈까지 받아버린 '나'는 멘시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소설 후반은 '나'가 멘시키의 부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일은 결국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는 드물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는데... 그 결말이 나는 결코 싫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변화를 보일지가 기대될 뿐. 다음 작품을 읽으려면 앞으로 3,4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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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9-2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추석명절 즐겁게 보내세요~